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서민들의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사회 양극화 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 불평등과 경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악화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에 있는 저소득층, 중소상공인, 청년, 노동자 등을 생존 위기로 내몰고 있다. 내수 부진으로 소상공인들의 수입엔 빨간불이 커졌고 고용 시장 축소로 청년과 노동자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계층 간 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어떻게 해법을 찾아야 할까. 물론 이들에 대한 직접 지원 정책을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처방일 뿐,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서민과 중소상공인, 중소기업들을 짓누르는 불평등한 경제 구조를 개혁하고 국민의 기본 소득을 늘리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경제민주화’부터 실현돼야 한다는 게 안 소장의 생각이다. 

◇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 정책 도입은 거북이걸음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헌법 119조 2항에 적시된 문구다. 해당 조항에는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경제민주화는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빈부격차를 보다 평등하게 조정하자는 취지를 품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도한 부의 편중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가 규제에 나설 수 있음을 헌법 조항에 명시했다. 

이런 경제민주화는 2012년 대선을 치르면서 주요 사회 아젠다로 부각되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침해와 하도급 업체에 대한 갑질,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등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경제민주화 정책 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일감몰아주기 방지와 재벌개혁 등 경제민주화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대선에 승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경제민주화 정책은 힘을 잃었다. 당초 목표보다 규제 수준이 완화돼 도입되거나 국회에 문턱을 넘지 못해 폐기 처분된 법안도 상당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면서 경제민주화 정책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소위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입법화를 밀어붙이면서 경제민주화 논의의 불씨를 지폈다. 하지만 경제계 일각에서 반발하면서 경제민주화 법안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운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 노동조합, 중소상공인, 소비자단체 등 200여개 단체들이 경제민주화 정책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경제민주화5법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 공동 행동에 나섰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전국가맹점주협의회,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200여개 단체들은 지난 9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경제민주화의 날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민주화5법 도입을 촉구했다. /이미정 기자

민주노총, 한국노총,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전국가맹점주협의회,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전국중소유통상인협회,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200여개 단체들은 경제민주화의 의미가 담긴 헌법 제119조를 내세워 ‘경제민주화119 선포단’을 구성했다. 이들은 지난 9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경제민주화의 날 선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재벌 위주 경제구조 개혁 필요, 경제민주화5법 도입돼야”  

이들은 이날을 ‘경제민주화의 날’로 선포하고 사회 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를 위해 경제민주화5법의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제시한 경제민주화 5법은 △재벌총수 일가의 황제경영방지와 지배구조개선을 위한 ‘상법’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일감몰아주기·불공정행위 방지를 위한 ‘공정거래법’ △가습기살균제 사건 등 집단적인 소비자피해의 구제와 재발방지를 위한 ‘집단소송법’ △유통재벌과 중소상인·서비스노동자 상생을 위한 ‘유통산업발전법’ △대기업과 중소·하청기업의 상생과 갑질 근절을 위한 ‘하도급법’ 등이다. 

기자는 이날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은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이들 단체는 이날 “우리나라는 재벌중심의 경제구조 속에서 외형적으로는 성장을 해왔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경제양극화와 불평등 심화, 불공정한 시장 환경이 조성됐다”며 “재벌과 대기업에게 쏠린 경제구조를 바꾸고, 99%가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헌법 제119조 2항에 명시돼 있듯이 국가의 책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우리경제는 지속되는 코로나19와 내수부진 등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며 “국민들 대다수가 일하고 있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고,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곳도 다수다.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노동자들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9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경제민주화의 날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경제민주화5법 도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미정 기자 

또 “정부에서는 수차례에 걸친 추경과 한국판뉴딜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중소기업 이하 자영업자들을 지원한다고 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상생 기반의 경제구조개혁안은 빠져 있어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다”면서 “아울러 재벌을 지원하는 과거정책들을 답습까지 하고 있고, 재벌들의 횡포와 불공정행위는 방관하고 있어 우려감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우리경제는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들이 많다. 따라서 재벌에게 쏠린 경제구조와 불공정한 시장 환경을 바로잡아 경제주체들 사이의 조화와 상생이 가능한 기반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민주노총 엄미경 부위원장은 “한국 사회의 재벌 독점은 여전히 건재한 상황”이라며 “이런 구조 속에서 많은 중소 영세 자영업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동네 문방구까지 침탈한 재벌 경제 체제 속에서 공정사회 실현이 가능하냐”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렵지만 재벌 대기업은 어렵지 않다”며 “1,000조에 육박하는 사내보유금을 쟁여놓고 있으면서 경제 위기를 빌미로 재벌경제 체제를 완강히 고수하고 있고 경제위기 책임을 노동자 서민에게 돌리면서 노동법 개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공정경제3법을 입법하겠다고 하나, 그것만으로 사회 양극화를 극복하기는 부족하다. 경제민주화5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중소상인 자영업자들은 경제민주화의 주체이자 대상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며 “대리점주 갑질 피해, 편의점주들의 사망 사건, 건물주 갑질,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문제 등이 순차적으로 수면 위에 오른 뒤에야 우리도 경제민주화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사회적으로 부각된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안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상공인들이 요구해온 유통산업발전법은 오랫동안 국회에 잠들어 있다”며 “코로나 때문에 중소상인들은 어려워서 죽을 지경이다. 케케묵은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경제민주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생존 위기 몰린 중소상공인… “유통산업발전법 등 입법 절실”  

중소상공인들은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직격탄을 맞고 있다. 소비자들이 대면 접촉을 기피하면서 영업상의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여기에 유통 대기업과 온라인 플랫폼 기업, 건물주 등의 갑질까지 더해져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9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이 국회 앞에서 5대 민생입법 과제 통과를 촉구하는 중소상공인 단체들의 농성 현장을 찾았다. /이미정 기자 

현재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10개 중소상공인 단체들은 5대 민생입법 과제 통과를 주장하며 국회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계약 갱신권을 보호하는 가맹사업법 개정 △온라인플랫폼 갑질을 근절하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의무휴업 대상을 확대하고 대형 유통점을 규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차임감액청구권을 현실화라는 상가임대차 보호법 △영업구역 보호하는 대리점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경제민주화의 날 선포’ 기자회견 이후에 안 소장과 이들의 시위 현장도 함께 찾았다. 안 소장은 “경제라는 단어는 경세제민의 의미에서 따왔다”며 “소득 하위 계층인 노동자, 서민, 중소상인, 빈민, 청년 등의 일자리를 늘려주고 소득을 증대시키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것이고 민주화다. 정치적 주권뿐만 아니라, 경제적 주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선 대기업의 탐욕도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안 소장의 생각이다. 안 소장은 “서민들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며 “그렇게 해야만 소비력이 회복돼 내수가 활성화되고, 고용도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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