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산처럼 늙으시게!” 지난주 도봉산에서 찍은 내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옛 직장 선배가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보통의 댓글과는 무게가 달리 느껴지는지라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처음에는 잘 안 보이던 주름과 처진 피부가 여실했습니다. “산처럼 늙으라”는 충고에 담긴 선배의 뜻을 헤아리다가 산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동행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9월 하순부터 세 달째 매주 한 번씩 고향 후배인 ‘절친’과 함께 서울 부근 산에 오르는데, 우리도 남들처럼 무척 많은 사진을 찍습니다. 경치가 좋으면 경치를 찍다가, 경치를 배경으로 서로 서로를 찍어주기도 하고, 다른 등산객에게 부탁해서 둘이 서 있는 것도 찍고, 가지고 간 김밥, 라면, 과일 따위도 찍습니다. 남들 다 찍는 이런 것 말고 ‘우리만의 사진’도 있습니다. 커피 좋아하는 절친이 산꼭대기에 도구 일습을 꺼내놓고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리는 모습, 그걸 마시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지나가면서 “커피향이 참 좋습니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산에 함께 오르는 절친은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학자입니다. 젊을 때 사진이 취미였던 사람답게 휴대폰 사진도 잘 찍습니다. 내가 그를 찍은 것보다 그가 나를 찍은 사진이 훨씬 더 선명하고 배경과도 잘 어울립니다. 어느 날 경기도 동쪽의 한 산꼭대기에 올라 절친의 휴대폰 앞에서 ‘포즈’를 취하다가 문득 “우리는 왜 사진을 이렇게 많이 찍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은 “휴대폰에 담긴 우리 사진, 우리나 보는 거지, 우리 죽고 나면 누가 본다고 어디만 가면 찍어대냐? 이거 다 무용지물이야. 우리끼리는 낄낄대며 좋아하지만 죽으면 다 헛것이 되고 말 걸?”이라는 넋두리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는지 아세요? 올 초, 사진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한 외국 기업이 자기네 홈페이지에 이런 통계를 올려놓았습니다. “지구인들은 2020년 한 해에 1조4,363억장의 사진을 찍을 것이다. 1초에 한 장씩 찍으려면 4만5,544년 걸린다. 아이들을 이 숫자만큼 잇달아 눕혀 놓으면 지구에서 12억7,700㎞ 떨어진 토성을 지나간다. 지구 인구 77억5,000만 명으로 나누면 한 사람 당 185장 꼴이다. 그동안 추이로 보면 2021년에는 1조4,400억장, 2002년에는 1조5,600억장이 찍힐 것이다. ….”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천마산 꼭대기(810m)에서 내려 마신 원두커피. 멀리 화도읍이 내려다보인다. / 정숭호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천마산 꼭대기(810m)에서 내려 마신 원두커피. 멀리 화도읍이 내려다보인다. / 정숭호

절친도 나와 같은 생각을 여러 번 했던지 금방 “사진은 시간의 방부제라는 말이 있다”면서 “예전 사진은 수직으로 전파하기 위해 찍었지만, 디지털 시대인 요즘 사진은 수평으로 전파하기 위해 찍는 것이다. 그러니 사진으로 존재하는 시간도 짧아졌다”라고 처음 들어본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의 인화된 사진은 아래로 물려주기 위해, 현재의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찍은 것이라면, 요즘의 디지털 사진은 옆 사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같은 시대적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찍는다는 것이지요. 같은 취미를 가졌거나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돌려보기 위해 찍지만 그 취미나 생각이 퇴색하면 사진도 용도가 폐기되고 마는 것, 그게 디지털 시대의 사진이라는 거지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는 게 모두 사진을 수평적으로 전파하는 행위라는 거지요. 사진을 쉽게 싸게 찍고, 돌려볼 수 있게 만든 디지털 기술이 그 바탕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만.

사진이 대량 생산·소비되는 현상에 대한 절친의 분석은 더 있었습니다. 남이 찍은 것이든 자신이 찍은 것이든, 자신의 사진을 쉴 새 없이 SNS에 올리는 ‘21세기적 현상’을 그는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거울 렌즈 카메라 디지털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더욱 가속, 확산됐다”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고요한 호숫가에서만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었던 인류는 14세기 이탈리아 베니스 무라노 섬의 장인들이 투명유리를 발명한 이후 언제 어디서든 거울만 있으면 자신의 모습에 반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유리로 렌즈를 만들고 그 렌즈로 현미경과 망원경, 그리고 카메라를 만드는 기술이 발명된 후에는 자신의 모습을 더 자세히, 더 멋지게 기록할 수 있게 돼 더더욱 나르시시스트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는 외국 학자들의 이론도 있다는 거지요. 또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장소와 풍경, 사물 등 피사체를 이미지로나마 소유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이론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산처럼 늙으라!”는 충고가 무슨 뜻일까 생각하다가 쓰기 시작한 글이 중구난방, 횡설수설, 맥락 없이 이것저것 늘어놓기만 한 글이 됐습니다. 멋지지는 않아도 그럴듯한 결론으로 글을 맺지 못하고 계속 절친 이야기만 옮겨 쓰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산처럼 늙지 못한 게 분명합니다. “아, 어떻게 늙어야 산처럼 늙는단 말인가, 산엘 몇 번이나 올라가야 답을 얻으려나!” 나 자신에게 한 번 더 외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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