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이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이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야당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전날(9일)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이어 연이틀 정부여당을 상대로 강력 투쟁에 나섰지만 압도석 의석 열세 속 손 쓸 방도가 없었다.

개정안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의결 정족수를 ‘7명 중 6명’에서 ‘5분의 3’(5명)으로 완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추천위원 7명 중 야당 몫은 2명이다. 국민의힘은 물론 향후 야당 의사와 관계없이 공수처장 후보를 선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법 개정으로 연내 출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공수처 정국이 새 국면으로 접어든 가운데 국민의힘의 향후 대응전략에 관심이 쏠린다.

◇ 공수처법 개정안 가볍게 통과

국회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쳤다. 국민의힘이 전날(9일) 저녁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로 견제에 나섰지만 회기가 종료되면서 이날 임시국회 본회의에 공수처법 개정안이 자동 상정됐기 때문이다.

176석 민주당에게 안건 표결은 식은 죽 먹기였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재석의원 287명 중 찬성 187명·반대 99명·기권 1명으로 가볍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개정안에는 야당 비토권 차단을 비롯해 공수처 검사 자격요건 개선안도 담겼다. 변호사 자격 10년 이상 및 재판·수사·조사 실무 경력 5년 이상이던 요건을 변호사 자격 7년 이상으로 대폭 완화했다.

민주당은 최대한 빨리 공수처 출범을 이루겠다는 계획인 만큼 즉각 추천위를 다시 소집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천할 후보 2명을 추릴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추천위가 선정한 2명의 후보 중 1명을 지명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초대 공수처장이 최종 임명된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공수처는 시대 요청에 따른 필연적 개혁”이라며 “공수처는 권력기관 그 이상의 시대적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공수처법 개정안 통과 직후 기자들과 만나 “참담하고 분노가 치솟는다”며 “국민을 개돼지로 보지 않고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강력 반발했다.

주 원내대표는 앞서 지도부 회의에서 문 대통령을 '문재인'이라고 칭하며 강력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문재인과 민주당 정권의 대한민국 헌정 파괴와 전체주의 독재국가 전환 시도가 점점 더 극성을 더해간다”며 “집권세력 획책으로 대한민국이 정말 전체주의 독재국가가 되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향후 인사청문회에 나서게 될 공수처장 후보를 향한 경고도 나왔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공수처가 지금은 낳아준 정권을 위해 충견 노릇을 할지 모르지만 정권 말기에는 생존 논리로 갈 것”이라며 “그래서 정부여당은 정권의 피붙이 수준의 공수처장을 찾는 것이다. 새로 임명되는 공수처장은 단단히 청문회를 준비하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는 공수처법 개정안 가결에 이어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청 산하 국가수사본부로 이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민의힘은 경찰이 국내정보를 독점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재차 필리버스터 카드를 꺼내 견제에 나섰다. 이철규 의원을 첫 주자로 조태용·하태경 의원 등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국민의힘은 국정원법 개정안 외에도 대북전단살포금지 내용이 담긴 남북관계발전법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범여권 의원들 협조를 통해 180석(5분의 3) 요건을 채워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24시간마다 강제 종결시킬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필리버스터 종료 안건에 대해서는 다시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장 ‘강제 종결’ 전략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정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필리버스터 법안에 대해 의사 표시를 보장해 달라는 야당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폭정종식을 위한 정당·시민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폭정종식을 위한 정당·시민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위헌심판청구’ 검토… 야권연대 급류 가능성도

공수처 출범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관측되면서 국민의힘은 곧바로 전열을 가다듬고 향후 정국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몫 추천위원들은 위원직 사퇴 및 법적 대응을 다각도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헌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에 보낸 문자를 통해 “절차·내용적으로 위헌적이고 부당한 공수처법 개정안 입법에 대해 항의하는 차원에서 즉각 사퇴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추천위에 참여하되 의결 무효 확인 및 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하고, 개정 공수처법에 대해 위헌심판청구를 제청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교착상태에 머물던 야권의 ‘반문(反문재인)연대’가 정부여당의 공수처법 개정을 촉매로 가시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민의힘·국민의당을 비롯한 보수진영 정당·단체 대표들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폭정 종식을 위한 정당·시민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야권연대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요즘 대한민국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참담한 일들을 겪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을 조기 퇴진시키고 폭정을 종식하는 데 다른 생각을 가진 분이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민의힘도 해야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도 “문 정권의 무능과 폭정에 우려하는 마음은 다 같다”며 “문 정권에서 떠난 민심이 범야권으로 모여 나라를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별도 성명서를 통해 “각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문재인 정권 퇴진과 국가 정상화라는 대의명분 아래 일치단결할 것”이라고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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