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감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수감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사과했다. 전날(14일) 더불어민주당과의 ‘필리버스터 대치’가 끝난 지 하루 만의 결정이다.

당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체제로 전환하기 앞서 전직 대통령 과오에 대한 사과 문제를 털어내고 가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보궐선거에 영향 미칠까

김 위원장은 15일 국회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사태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보수정당 당 대표격 인사가 두 전직 대통령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동시에 구속 상태”라며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국가를 잘 이끌어가라는 공동경영 책임과 의무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다. 대통령의 잘못은 곧 집권당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전직 대통령이 사법처리를 받은 혐의를 조목조목 거론했다. 김 위원장은 “두 전직 대통령 과오에는 정경유착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며 “특정 기업과 결탁해 부당이익을 취하거나 경영승계 과정 편의를 봐줬다. 공직책임을 부여받지 못한 자가 국정에 개입해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고 무엄하게 권력을 농단한 것도 있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당시 저희 당은 집권여당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했고 통치권력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제어하지 못한 무거운 잘못이 있다”며 “역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했다”고 반성했다. 이어 “과거 잘못과 허물을 통렬히 반성하며 정당을 뿌리부터 다시 만드는 개조와 인적쇄신을 통해 거듭나겠다”고 했다. 사과문에는 사과·사죄·반성·용서·잘못 등의 단어만 14회 등장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대국민 사과 시점을 스스로 판단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15일은 여야가 첨예한 대치를 이어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국가정보원법·남북관계발전법(대북전단살포금지법) 개정안 등이 모두 처리되고 야당 필리버스터도 마무리된 시점이다. 여당 인해전술 속 쟁점법안이 모두 통과된 데다 다음주부터 문재인 정부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가 이어지는 만큼 전직 대통령 과오 문제를 정리하기에 적절한 시기라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당의 명운이 걸린 내년 보궐선거와 사정권에 접어들 2022 대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등 돌린 중도·보수 민심을 재확보하기 위해 필요했던 수순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는 중도·보수 시민들도 많이 나갔다. 이들은 지금 문재인 정권도 싫어하지만 친박친이가 다수 포진했던 국민의힘을 지지하기도 어렵다”며 “김 위원장의 사과로 자신의 판단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 명분을 얻으면서 동시에 국민의힘을 지지할 수 있는 명분도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선거는 자기가 좋아하는 정당을 찍는 게 아니라 자신이 더 싫어하는 정당을 피하는 과정”이라며 “(대국민 사과는) ‘좋은 판단’이라기보다 ‘필요한 판단’이었다고 본다. 보궐선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중직을 맡아 총선 승리에 기여했고 문재인 정권 탄생의 포석을 깔았다고 지적받는 김 위원장이 자신의 사과는 등한시하고 보수정권 대통령 과오에 대한 사과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야권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문재인 정권 탄생 공신으로서 반성한다는 유감 표명도 했다면 그나마 진정성이 있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과오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내가 (국민의힘에) 오기 전 얘네들이 이렇게 잘못했다’고만 한다면, 과연 그 사과가 국민에 제대로 와닿을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과는 (선거에) 효과가 없을 것이고 이 때문에 선거 결과가 크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선거를 이겼을 때 자신의 성과로 크게 포장할 수 있다는 점 외에 이득은 없는 것 같다. 선거를 지면 어차피 떠나야 할 분이어서 잃을 것도 없다”고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11월 13일 오후 제주도청 탐라홀에서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단 업무보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11월 13일 오후 제주도청 탐라홀에서 열린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단 업무보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대국민 사과로 쪼개진 야당

당 안팎 보수진영에서는 김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모양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김 위원장 사과에 대해 “적극 공감한다”며 “어느 권력도 국민 위임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위임하지 않은 일을 저질렀다면 책임져야 한다. 국민께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찬성표를 던졌다.

원 지사는 “국민들께 고개를 숙이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며 “우리 당의 이번 사과가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4선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계기로 국민의힘은 수권정당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기 위한 작지만 의미있는 걸음을 내딛었다”며 “오늘 우리의 사과는 굴욕이 아니라 이 나라 미래를 위한 용기 있는 진심이었다”고 호평했다.

대국민 사과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5선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믿지만, (파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결정을 존중했다”며 “언제고 아스팔트 광풍이 잠잠해지면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 재평가받을 기회가 있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 의원은 “그런데 특정 기업과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취했고, 경영승계 과정 편의를 봐줬으며 권력을 농단했느니 재단해버리면 어쩌겠다는 건가”라며 “당 비대위원장이 사과할 게 있었다면 기업 자유를 틀어막고 국민 삶을 팽개친 입법 테러를 막아내지 못한 것에 국민을 뵐 면목이 없다는 통렬한 참회여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도 페이스북에서 “김 위원장의 사과는 개인적 정치욕망을 위장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며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상임고문은 “이명박 대통령을 암시한 부분은 없는 죄를 다시 만들었다”며 “이 대통령은 재임 중 어떠한 정경유착도 없고 그런 내용으로 기소되거나 사법처분을 받은 적이 없다. 특정기업과 결탁해 부당이익을 취한 일도 없다. 오히려 김종인 본인과 관계있는 내용”이라고 맹비판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사건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를 지낸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 홍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실컷 두들겨 맞고 맞은 놈이 팬 놈에게 사과한다? 참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세모 정국”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표성도 없고 뜬금없는 사과다. 사과하려면 지난 6개월 동안 야당을 2중대 정당으로 만든 것을 사과해야한다”며 “25년 정치를 했지만 이런 배알도 없는 야당은 처음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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