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성찰배경: 매년 연말이 되면 교수들이 한 해를 돌아보며 그 해의 사회상이 투영된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선정해 오고 있는데, 올해의 사자성어는 신조어인 ‘나는 늘 옳고 나와 다른 견해를 갖는 남은 무조건 그르다’는 뜻의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비관(是非觀)’은 획일적인 확증편향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이번 글에서는 사자성어로 구성된 일화들을 소개 드리며 ‘시비(是非)’에 대하여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두루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

진시황(秦始皇) 때 재상을 지낸 여불위(呂不韋, ?-235 B.C.)가 논객들로 하여금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을 엮게 한, <여씨춘수(呂氏春秋)>의 진수편(盡數篇)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아니하고[유수불부(流水不腐)] (여닫이문의 문짝을 지탱하는 돌쩌귀인) 문지도리는 좀먹지 않는다.[호추불두(戶樞不蠹)] 왜냐하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중독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대체로 썩어서 냄새가 진동해야 비로소 허둥대며 해결방안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 말을 ‘흐르지 않는 물은 반드시 썩는다’란 뜻의 ‘불류필란(不流必爛)’으로 바꾸어, 확증편향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틈날 때마다 필자에 대해 보다 철저하게 반성하곤 합니다.

한편 물론 각계각층에 다 해당되겠지만 구체적인 보기로 특히 올해의 사자성어가 통렬하게 꾸짖고 있는 정치계를 보기로 들면,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 끊임없이 안목(眼目)을 넓혀가며 당리당략을 뛰어넘어 시비의 늪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소통과 협치가 가능한 신진보와 신보수로 거듭나면서, 부차적인 문제는 뒤로 하고 어려운 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온힘을 다해야 할 시급한 때라고 사료됩니다.

◇ 남전 선사, 고양이를 베다

선종(禪宗)의 정석(定石)이라고 할 수 있는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 선사가 지은 <무문관(無門關)> 가운데 시비(是非)의 원천을 단칼에 끊어버리게 한, ‘남전참묘(南泉斬猫)’란 화두가 다음과 같이 들어있습니다.

“어느 날 동당(東堂)과 서당(西堂) 승려들 사이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놓고 서로 우리 고양이라며 시비가 벌어지자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 선사께서 고양이를 치켜들고 ‘대중들이여, 도(道)에 합당한 한마디를 바르게 이르면 이 고양이를 살리고 그렇지 못하면 목을 베리라!’ 하셨다. 그런데 무소유(無所有)의 출가 정신을 망각하고 소유욕에 눈먼 대중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 승려도 대꾸가 없자 남선 선사께서 드디어 고양이 목을 베어버리셨다.

한편 그날 밤늦게 수제자인 조주(趙州, 778-897) 스님이 외출했다가 돌아오자 남전 선사께서 낮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셨다. 그러자 조주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신고 있던 짚신을 벗어 머리 위에 얹고 스승 방을 나갔다. 그러자 남전 선사께서 혼잣말로 ‘만일 그때 네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고양이의 목숨을 구했을 터인데....’라고 하시며 애석해하셨다.”

사실 이 선문답은 <무문관>과 쌍벽을 이루는 <벽암록(碧巖錄)>에서는 두 화두로 분리해서 다루고 있듯이 둘로 나누어 참구해야 합니다. 즉 하나는 ‘만일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진리[道]에 부합하게 응대해야 고양이를 살릴 수 있겠는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미 죄 없는 고양이는 죽고 저녁 때 돌아온 조주 스님에게 남전 선사가 낮의 일을 들려주자, 조주 스님이 짚신을 머리에 얹고 나간 까닭은 무엇인가?’ 입니다.

참고로 선의 스승들은 한 사람이라도 깨우치게 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얼핏 이 문답을 보면 남전 선사께서 불살생(不殺生)의 계율(戒律)을 어겨가면서까지 애를 썼으나 이미 인가(印可, 학문의 세계에서의 박사학위에 해당)를 받은 조주 스님의 경지를 재확인하는 정도일 뿐 거의 아무 소득이 없는 것 같지만, 선 수행을 하는 후학(後學)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온몸을 던져 참구하게 하는 난투(難透)의 공안으로 활용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 입실해 점검받다

필자의 경우 먼저 학문적으로는 비록 박사학위를 받고 1983년 3월부터 교수로 재직하면서 비록 독립적이기는 하지만 박사학위 주제에 국한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987년 9월부터 1988년 8월까지 일 년 간 초중력이론의 창시자 가운데 한 분인, 피터 반 니우벤후이젠(Peter van Niewenhuizen, 1938-현재) 교수가 재직하고 있던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캠퍼스) 이론물리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 직을 수행하며 연구에 대한 좁았던 안목을 크게 넓혔습니다.

한편 스승인 종달의현(宗達義賢, 1905-1990) 선사 입적 직후 뒤를 이어 선도회(禪道會)의 제2대 지도법사로서 참선 모임을 이끌어가던 중, 마치 박사후연구원 과정처럼 한 스승 밑에서만 수행해 온 필자의 경계를 다시 확인받아 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마침 시절 인연이 도래해 1991년 8월 화계사에 주석하시던 숭산행원(崇山行願, 1927-2004) 선사께 입실점검(入室點檢)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침 8시에 시작해 거의 2시간 동안 독대(獨對)를 하며 20여 개의 화두에 대해 경계를 제시하며 점검을 받았는데, 선사께서는 필자의 견해에 관해 하나하나 아주 자상하게 답해 주셨습니다.

특히 나와 남이 둘이 아닌 ‘자타불이(自他不二)’를 바탕으로 삼아, 옳고 그름이 둘이 아닌 ‘시비불이(是非不二)’가 핵심인 ‘남전참묘’ 화두에 대한 재점검을 통해 필자는 선 수행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한 획을 긋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날 이후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선도회 회원들의 입실점검을 도우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체험은 비유컨대 박사학위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연구결과를 도출해 국제학술지에 연구결과를 게재했을 때와는 또 다르게, 주체적으로 국제적인 흐름에 부합하는 연구 주제를 새롭게 발굴하고 연구 수행을 완결지은 다음 그 결과를 상위 10%에 해당하는 국제저명학술지에 당당하게 게재했을 때의 느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이어서 <무문관> 가운데 선 수행자들로 하여금 중생이니 부처니 하는 시비를 철저히 끊어버리게 하는 ‘동산삼근(洞山三斤)’이란 화두를 소개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산수초(洞山守初, 910-990) 선사께 어느 때 한 승려가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동산 선사께서 ‘삼베[麻]의 무게는 서근이니라.[麻三斤]’라고 응답하셨다.”

한편 이 화두에 대해 무문 선사께서 ‘시비관’에 대해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동산 스님께서 툭 내뱉은 ‘마삼근!’[突出麻三斤]/ 그 말씀 참으로 친절한데, 뜻 또한 분명하구나.[言親意更親]/ 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가리려는 자가 있다면[來說是非者]/ 그가 바로 시비를 거는 장본인이라네.[便是是非人]”

참고로 당나라 때 가사 한 벌의 무게에 해당하는 마사(麻絲)의 기본단위는 삼근(三斤)이었다고 합니다. 한편 위의 3,4 구절로 구성된 선어(禪語)는 조선 시대에 청소년들의 윤리도덕지침서로 널리 쓰였던 <명심보감(明心寶鑑)> ‘성심편(省心篇)’에서 한 글자도 고침 없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공자, 노자, 장자 등의 글들뿐만 아니라, 소동파(蘇東坡, 1037-1101)를 포함해 간화선(看話禪)이 발달했던 송(宋) 나라 시대를 살았던 사대부들의 언행(言行)도 다수 남겨 있는데, 이 언행들과 <무문관>을 포함해 선어록에 담겨있는 내용들을 비교해 보면,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전문직 종사자에 해당하는 사대부들이 적지 않게 선불교에 영향을 받았음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지속적으로 사랑 받아오고 있는 <명심보감>을 21세기 다문화 대종교 사회를 맞이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포함해 모든 일반인들에게 좀 더 친근감을 갖고 다가갈 수 있는 성찰지침서로 삼는다면,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 우리 모두 어렵지 않게 시비를 뛰어넘는 경지를 체득하는 데에도 잘 활용할 수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결론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동양의 스승들이 평등적(平等的) 차원에 초점을 맞추어 출세간(出世問) 속에서 제자들로 하여금 세간(世間)에서 일으키는 온갖 득실시비(得失是非) 분별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의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자각하게 했다면, 앞에서 기고했던 글 ‘안목(眼目) 넓히기’에서 서양의 성인(聖人)인 프란치스코의 ‘아유대죄(我有大罪)’란 대목을 통해 소개드렸듯이, 그는 “누군가가 당신을 비난하고 있다는 말을 어떤 사람이 전할 때, 당신은 ‘나는 오히려 그 사람이 아직 알지 못하는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사실 나의 큰 죄를 인정하면, 진실로 그 지적하는 다른 과실을 말다툼하며 변론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응대하시며 ‘시비’를 원천봉쇄해 전하는 이의 말문을 닫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항상 자신에 대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서양의 스승들 역시 스스로를 겸허하게 가장 낮은 밑바닥까지 낮추면서 차별적(差別的) 차원에 초점을 맞추어 세간(世間) 속에서조차 무분별지(無分別智)의 대활약이 가능함을 몸소 보이셨음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자신의 허물을 부인하며 무조건 덮으려고 하다가 시비에 휘말려 더 큰 낭패를 당하기 전에, 잘못을 뼛속 깊이 뉘우치며 지은 죗값을 달게 받으려고 적극적으로 애쓰는 길이, 오히려 ‘크게 한 번 죽어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라는 뜻처럼 ‘대사일번(大死一番) 절후소생(絶後蘇生)’하며 ‘시비’의 한가운데를 뚫고 나와, 남은 여생 동안 뜻깊고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는 향상(向上)의 지름길이라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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