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가 경자년 초부터 대외 악재에 휘말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항공업계가 경자년 내내 대외 악재에 휘말려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 뉴시스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올해 항공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연초부터 유례없는 위기에 봉착했다. 해외 여러 국가들은 외국인 입국을 제한하는 등 코로나19 확산 억제에 총력을 기울였다. 사실상 해외여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자 여행객은 급감했다. 항공사들 역시 세계 각국의 입국제한 조치에 국제선 운항을 대폭 감축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연말까지 지속됐다. 항공업계는 주요 수익원인 국제선 운항 제한 조치가 길어지자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버티기 위해 자구책을 강구했다. 그 일환으로 유·무급 순환휴직, 구조조정 등을 통해 비용절감에 나섰다. 더불어 화물운송 집중, 국내선 노선 확대, 관광비행 등 수익창출을 위해서도 다분히 노력했다.

일부 항공사는 회사를 매각하고 나섰으나, 이마저도 미끄러지면서 험난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이다. 두 항공사 모두 인수합병(M&A)을 추진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그나마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 합병이라는 ‘빅딜’이 진행 중이며, 양사의 계열사인 저비용항공사(LCC)의 합병도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여행업계가 코로나19로 고사 직전인 상황에 트래블 버블을 정부 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3일 한산한 인천국제공항 카운터. / 뉴시스
코로나19로 인해 국제선 이용객이 급감했다. 이로 인해 항공사는 경영난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 3일 한산한 인천국제공항 카운터. / 뉴시스

◇ 코로나19로 해외여행 올스톱, M&A도 주춤… 뒤숭숭한 항공업계

30일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올해 1~11월 누적 항공여객은 3,771만8,030명으로 전년 대비 66.87% 감소했다. 국내선은 22.77% 줄어든 2,363만3,333명으로 소폭 감소에 그쳤으나, 코로나19 여파로 국제선은 무려 83.09% 감소한 1,408만4,697명에 그쳤다. 이마저도 그나마 정상운항을 행하던 지난 1~2월을 제외하면 국제선 여객 감소폭은 96.8%까지 치솟는다. 이는 국내항공사와 외국항공사 가릴 것 없이 동일하게 나타난 여객 감소 현상이다.

사실상 비즈니스 목적으로 해외를 오가는 인력과 해외에서 국내로 돌아온 유학생 등을 제외하면 국제선 이용객은 없는 셈이다.

주요 수익원인 국제선 운항이 멈춰버린 상황에 국적항공사들은 줄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나마 대형 화물기를 보유한 대형항공사(FSC)는 코로나19로 인한 항공화물 운임 상승에 적게나마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지만, 상장 LCC 4개사는 올해 1~3분기 내내 200~600억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항공업계가 적자의 늪에 빠져 수익 창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자 일각에서는 항공사 인수를 포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당장 항공사를 인수하더라도 수익 창출이 불가능하고 손실만 커질 것이라는 판단으로 보인다.

먼저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M&A가 지난 7월말 무산됐다. 앞서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M&A 소식은 2강 구도의 국내 항공업계가 3강 구도로 재편될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스타항공 실사 단계에서 회사의 재무상태가 직원 임금과 고용보험금마저 지급하지 못하는 정도의 최악의 상태인 것이 확인되면서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했다.

또 이스타항공은 창업주 이상직 의원(무소속·전주시을)의 논란과 각종 법정 분쟁에 휘말렸고, 정치적으로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M&A가 무산된 이스타항공은 결국 직원 600여명을 정리해고 했으며, 현재 재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스타항공 재매각 수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명확한 내용은 아직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타항공 매각 무산에 이어 지난 9월에는 HDC현대산업개발과 아시아나항공 M&A마저 ‘노딜’로 마무리됐다. M&A 해지는 아시아나항공 측에서 HDC현대산업개발 측으로 통보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측에 12주의 재실사를 재차 요구한 것을 두고 인수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 빠른 조치에 나선 것이다.

당초 예정된 양사의 M&A 거래 종결일은 4월 초순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항공업계가 위기에 봉착하고, 당장 정상적인 국제선 운항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자 HDC현대산업개발은 인수를 보류했다. 이후 HDC현대산업개발은 장고에 돌입했고, 5개월 이상 명확한 입장표명을 내놓지 못했다.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 측이 거래종결의무 이행을 기약 없이 지연한 것을 두고 인수 의지가 없다고 판단, 거래를 파기를 통보했다.

매각이 불발된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이하 산은)의 손에 맡겨졌다. 산은 측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불발 소식이 알려진 직후 즉시 유동성 지원을 발표했다. 산은으로부터 기간산업안정기금(이하 기안기금)을 지원받게 된 아시아나항공은 급한 자금을 확보해 근근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이 기안기금을 두고도 잡음이 일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으로 지원된 기안기금의 금리가 7%대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신용등급과 리스크를 감안한 가산금리가 복합적으로 계산된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항공업계에서는 7% 수준의 금리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아시아나항공은 최대 2조4,000억원의 기안기금을 지원받아 활용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이 비용을 모두 활용한다면, 가산금리를 배제한 채 연 7.5% 금리를 기준으로 따지더라도 매년 이자만 1,800억원을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자금이 필요했던 아시아나항공과 제주항공은 산은으로부터 기안기금을 지원받아 사용한 상황이다. 이러한 살인적인 금리에 대부분의 상장항공사는 유상증자를 추진해 자금 마련에 나섰고, 대부분 주주들의 투자를 이끌어 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의 M&A 소문이 무성하다. /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의 M&A에 속도가 붙고 있다. /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 대한항공·아시아나 M&A, 한진 경영권 분쟁 2차전 점화

항공업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가운데 지난달 초부터 대한항공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해당 소문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결국 사실로 판명 났다.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방법으로 산은을 상대로 한진칼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택했다. 그러자 KCGI(강성부펀드) 측이 거세게 반발했다. KCGI는 이전부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권홍사 반도건설 회장과 손을 잡고 조원태 회장과 대립해왔다.

조원태 회장 측과 경영권 다툼을 하고 있는 KCGI가 ‘산은 제3자 배정 유증’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로 인해 산은이 한진칼 지분을 확보할 경우 향후 조 회장의 우군으로 나설 우려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조원태 회장 측의 지주사 한진칼 지분은 우호지분 델타항공(3분기 말 기준 14.9%) 등을 포함해 41.4% 수준이다. 이번 제3자 배정 유증을 마무리할 경우 산은은 한진칼 지분을 약 6% 보유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KCGI와 조현아 전 부사장, 반도건설 등 3자연합의 한진칼 지분 46.71%(신주인수권포함)보다 소폭 앞설 수 있다.

이에 KCGI 측은 “대출과 의결권 없는 우선주 발행, 자산매각, KCGI 주주연합 등 기존 주주에게도 참여 기회를 주는 주주배정 방식의 유증(실권주 일반공모)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항공업 재편을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한진그룹 측은 KCGI 주장은 수용하기 힘들다면서 정관에 따라 제3자 배정 유증을 단행했다.

KCGI는 결국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 1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KCGI 측이 한진칼을 상대로 제기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한진칼의 신주발행은 정관상 이뤄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결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의 합병에 속도가 붙고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합병을 마무리할 수 있어 한진칼과 산은 측은 해외 경쟁당국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최종 승인된다면 이후 양사의 LCC인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도 합병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다. 

한편,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별개로 유동성 확보를 위해 유휴자산을 대거 처분하고 나섰다. 대한항공은 앞서 기내식·기내판매사업부를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에 매각했으며, 인천 영종도 레저시설 왕산마리나를 운영하는 왕산레저개발도 칸서스·미래에셋대우 측과 매각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왕산레저개발 매각은 내년 3월쯤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여기에 공항리무진사업, 종로구 송현동 부지 등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 가장 큰 화두인 종로구 송현동 부지는 서울시와 매각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