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5 04:09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소의 해에 생각하는 ‘자연과 인간’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소의 해에 생각하는 ‘자연과 인간’
  • 김재필 사회학 박사
  • 승인 2021.01.0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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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신축년 새해일세. 올해는 소의 해, 그것도 흰 소의 해라고 하는군. 어렸을 때 우리 집 외양간에 항상 소가 있었고, 여름이면 소를 몰고 제방에 나가 풀을 뜯기다가 강물에 목욕을 시켜 돌아오곤 했던 추억 때문인지 지금도 소를 보면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네. 넓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거나 깊은 산중 비탈밭에서 쟁기를 끌고 있는 소를 보면 예전에 함께 살았던 소 생각에 그냥 지나치지 못해. 아무리 바빠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 바라보다가 발을 떼지.

오늘은 소띠 해를 맞아 소가 등장하는 시들을 몇 개 골랐네. 지금은 보기 드문 풍경들이니 옛 생각하면서 찬찬히 읽어보게나. 먼저 윤희상 시인의 <소를 웃긴 꽃>일세.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뻔한/ 것이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서 이 시를 선택했네. 시인의 상상력이 대단하지 않는가? 소가 꽃을 보고 웃고, 꽃이 소를 들어올려서 소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니… 누구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지. 생태학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풍경이야. 시인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붙이들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보고 있어. 동시에 아름다운 꽃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질타하고 있는 거지. 꽃을 보고 웃는 소보다 못한 죽은 감성을 빨리 회복하라고. 올해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행복을 찾는 한 해가 되길 바라네.

다음은 정현종 시인의 <그 굽은 곡선>이야.

내 그지없이 사랑하느니/ 풀 뜯고 있는 소들/ 풀 뜯고 있는 말들의 그 굽은 곡선!// 생명의 모습/ 그 곡선/ 평화의 노다지/ 그 곡선// 왜 그렇게 못 견디게/ 좋을까/ 그 굽은 곡선!

지난 한 해 인류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고통을 겼었네. 물론 이 시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 왜 우리는 지금 이런 재난을 감당해야 할까? 효율과 실용을 중시하는 근대문명이 생명의 선인 곡선보다 직선을 좋아했기 때문일세. 살아 있는 생명체들 중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것들이 있는가? 아마 없을 걸세. 아직 산업화가 시작되기 전 우리가 농촌에서 보았던 것들은 대부분 곡선이었네. 자연의 선은 곡선이거든. 하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곡선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네. 곡선을 직선으로 만들면서 ‘발전’이라고 우겼지. 그게 우리들의 몸과 삶을 망가뜨리는 반생태적인 폭력이라는 걸 그땐 알지 못했어. 교만하고 어리석었지. 종말로 나아가는 고속도로를 만들면서 이전보다 더 문명화된 세상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으니…

힘이 든다/ 소를 몰고 밭을 갈기란/ 비탈밭 중간 대목 쯤 이르러/ 다리를 벌리고 오줌을 솰솰 싸면서/ 소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바뀌면/ 내가 몰고 너희가 끌리라/ 그런 날 밤/ 콩 섞인 여물을 주고 곤히 자는 밖에서/ 아무개야 아무개에 불러 나가보니/ 그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이상국 시인의 <천우지변>이야. “세상이 바뀌면/ 내가 몰고 너희가 끌리라”는 소의 말이 무섭지 않는가? 누차 강조하지만, 코로나19 펜데믹은 인간의 교만에 대한 자연의 보복이야.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바꾸지 않는 한 지구의 파멸을 막을 수 없다고 많은 과학자들이 오래 전에 경고했어. 하지만 아직도 더 많이 생산해야 ‘성장’한다는 사람들 목소리만 들리니 인간이 참 한심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드네. 앞으로 본격화될 자연의 앙갚음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지…

마지막으로 김종삼 시인의 <묵화(墨畫)> 일세. 하루 일과를 끝낸 후, 함께 고생한 소 목덜미에 손을 얹고, 고맙다고 소에게 인사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조용히 읽어보길 바라네. 자연과의 감응이란 이런 것일세.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냈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