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인수, 실사 없이 진행하는 것은 주주 가치 훼손 우려”
기금운용본부·수탁위, 심도 있는 논의 거쳐 ‘반대’ 입장 결정
향후 인수 과정 면밀히 분석, 주주로써 추가 입장 밝힐 수도

대한항공이 지난 2013년 이후 6년만에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사진은 대한항공 서울 강서구 본사 전경. /제갈민 기자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정관 일부 변경안을 가결했다. 사진은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대한항공 사옥 전경. /제갈민 기자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 중인 대한항공이 6일 오전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유상증자를 위한 정관 변경을 가결했다. 이번 정관 변경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그러나 임시주총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5일, NPS국민연금공단 측이 돌연 이에 반대되는 의견을 들고 나와 이목이 집중됐다.

6일 오전 9시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대한항공 임시주총은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의결권 있는 주식 총수 중 69.98%가 정관 일부개정 안건에 찬성하면서 가결됐다. 정관 변경은 특별 결의 사항으로 주총에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로써 대한항공은 발행 주식 총수를 기존 2억5,000만주에서 7억주로 늘리는 정관 변경 안건을 통과시켰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등을 위해 2조5,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추진한다.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발행 주식 총수를 늘리는 정관 변경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의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대한항공 지분은 최대주주인 한진칼과 특수관계인이 31.13%,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8.11%를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 대한항공 우리사주(6.39%), 스위스크레딧(3.75%)이 주요 주주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유증을 위한 정관 일부 변경안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가장 큰 이유는 ‘주주가치 훼손 우려’ 때문이다. 대한항공 유증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초석이다. 그런데 대한항공 측이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 체결과정에서 실사를 진행하지도 않은 채 인수를 결정한 것은 주주들의 알권리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나항공의 귀책사유를 계약해제사유로 규정하지 않은 점은 향후 계약 내용이 대한항공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실사를 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모든 것을 대한항공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게 국민연금 측 지적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임직원들의 잇단 비위 사건들로 심란한 처지에 내몰렸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정관을 일부 변경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것이라는 결정이 내려지고 주총 일정이 공시된 후부터 내부적으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절차는 투자 기업의 주총이 공시되면 의안을 분석, 준법감시 검토, 투자위원회 의결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판단하기 곤란한 사안은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이하 수탁위)에 요청하거나,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이 장기적인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해 전문위원회에 회부할 것을 요구하는 사안의 경우 수탁위에서 의결권 행사방향을 결정한다.

대한항공의 이번 임시주총 공시는 지난해 12월 18일 이뤄졌다. 국민연금은 약 보름간의 검토를 진행하고 지난 5일 수탁위를 통해 제1차 전문위원회를 열고 이번 의결권을 행사방향을 심의했다.

대한항공의 정관 일부 변경의 내용은 발행예정주식수를 확대하는 것이나, 결국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된 것이다. 때문에 수탁위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따른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수익증대, 비용 효율성 등 시너지 효과, 국내 항공서비스의 독점적 지위 확보를 통한 국제적 경쟁력 강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제시된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여러 방면에서 검토했을 시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는 부정적 의견이 다수를 차지해 최종적으로 대한항공 정관 일부 변경안에 대해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지분율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대한항공은 50% 이상(50.62%)이 소액주주들로 구성돼 있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 유상증자의 1주당 예정 발행가가 1만4,400원으로, 5일 종가(2만8,350원) 기준 절반 수준에 불과해 소액주주 다수가 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대로 3분의 2 이상(69.98%)이 찬성 입장을 밝혀 대한항공의 정관 일부 변경은 이뤄졌고, 유증 및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진행될 예정이다. 유상증자 납입일은 3월 12일이다. 한진칼도 유증에 참여해 7,300억원을 투입한다.

이어 대한항공은 오는 14일까지 국내외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신고를 제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외에 전담 법무법인을 선정하고, 대한항공 내에서도 팀을 갖춰 준비 중이다. 또한 3월 17일 전까지 아시아나항공과 계열사에 대한 실사를 이어가는 한편 통합 계획안을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양사의 비용 구조, 계약 관계 등 상황을 살필 예정이다. 

이후 대한항공은 6월 30일, 아시아나항공의 1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 계약금과 중도금을 뺀 8,000억원을 납입해 아시아나항공 지분 63.9%를 가진 최대주주가 된다.

대한항공은 이러한 인수 과정을 상반기 내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며, 한진그룹은 향후 적절한 시점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통합할 계획이다.

국민연금 측은 이 과정도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다. 국민연금 측 관계자는 “결정이 난 사안에 대해서는 되돌릴 수 없는 만큼 대한항공 2대주주로써 유증의 참여 필요성을 투자자 필요성에서 실익을 따지게 될 것인데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무엇인가를 예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우며, 향후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 입장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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