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비서 성폭행 의혹으로 국민의힘을 탈당한 무소속 김병욱 의원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의원은 성폭행 의혹을 제기한 가세연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내일 고소장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인턴 비서 성폭행 의혹으로 국민의힘을 탈당한 무소속 김병욱 의원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 의원은 성폭행 의혹을 제기한 가세연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내일 고소장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국민의힘이 ‘탈당’ 악령에 시달리고 있다. 성폭행 의혹에 휘말린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일 탈당하면서 또 다시 악령이 되살아났다. 국민의힘 탈당 의원은 21대 국회 들어 3명이다. 국민의힘은 김 의원을 비롯해 박덕흠·전봉민 의원이 불미스러운 의혹 때문에 당을 스스로 떠났다.

하지만 탈당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은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당에 부담을 끼칠 수 없다며 당적을 내려놓는데, 당 지도부는 진상규명 과정 없이 ‘사직서’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어서다. 사실상 ‘꼬리자르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의혹 생기면 탈당·제명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초선·경북 포항남울릉)은 전날(7일)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김 의원이 지난 2018년 국회 보좌관 시절 다른 당 소속 인턴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휘말리면서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같은 날 긴급회의를 열고 김 의원 문제를 논의하려고 했지만 김 의원이 전격 탈당하면서 취소됐다. 김 의원은 탈당 관련 입장문을 통해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탈당한다”며 “결백을 밝히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날 별도 입장문을 내고 자신의 성폭행 의혹을 제기한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이하 가세연)’를 내일(9일)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저와 제 가족의 인격과 명예를 짓밟는 저열한 작태를 용납할 수 없다”며 “더는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반드시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했다.

김 의원의 탈당 및 반박과 별개로 긴급회의를 취소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처사도 도마에 올랐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간담회를 하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 다음에 하게 됐다”며 “자기(김 의원)가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밖에 나가 법적 투쟁을 하겠다는 의미로 탈당한 모양”이라고 했다.

당초 비대위는 김 의원의 행위를 부적절하다고 판단, 이날 회의에서 고강도 징계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우선 당 윤리위원회와 당무감사위원회 등의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관측됐다.

김 의원의 성폭행 여부와 관계없이 당시 국토위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의원 보좌진이 늦은 밤 술을 마시기 위해 여자 보좌진 숙소에 들어간 것 자체가 올바르지 못한 처신이라고 본 것이다. 다만 김 의원이 선제적으로 탈당 카드를 내밀면서 징계는 없던 일이 됐다.

김 의원 탈당과 지도부의 사전조율 여부에 대해 김 위원장은 “당에 부담을 준다고 생각하니까 스스로 탈당한 것”이라며 “(자초지종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은 생각도 없고 들은 바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별도 조율이 없었던 것으로 해석되는 지점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김 의원과 사전 논의한 바는 없었다”고 했다.

김 의원의 발빠른 탈당에는 지도부와 물밑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다.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당이 비상태세에 들어간 가운데 내부 성범죄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더불어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의 성범죄 연루에 의해 마련된 만큼, 국민의힘은 ‘성범죄 프레임’으로 선거 구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범죄 의혹이 지속될 경우 국민의힘의 ‘민주당 책임론’ 공세 동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어 재빨리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날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지도부와 교감 없이 탈당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그나마 가장 역풍이 덜할 것 같은 그림으로 내보낸 것이 아닌가 싶지만, 결국 선거 이해득실을 계산한 발상으로 보여진다”고 전했다.

이스타항공 임직원 대량해고 사태 책임자로 지목돼 당 윤리감찰단 조사를 받던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0년 9월 24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이스타항공 임직원 대량해고 사태 책임자로 지목돼 당 윤리감찰단 조사를 받던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0년 9월 24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 의혹 당사자 당 떠나면 유야무야

국민의힘은 김 의원에 앞서 박덕흠 의원과 전봉민 의원도 불명예스럽게 당을 떠났다.

박 의원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간사를 지낼 때 가족이 대주주로 있는 건설사가 피감기관에서 수천억원대 공사를 수주해 이해충돌 의혹을 받았다.

전 의원도 가족 회사의 일감 몰아주기·불법 증여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전 의원의 부친은 해당 의혹을 취재하던 기자에게 매수를 시도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들은 김 의원과 마찬가지로 당 차원의 진상조사가 예고되자 탈당을 강행했다.

사정은 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앞서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소속 양정숙 의원이 부동산실명제 위반·명의신탁 등 논란에 휩싸이자 제명 절차를 밟았다. 부동산 과다 보유·아파트 증여 등으로 논란을 빚은 김홍걸 의원도 당의 부동산 정책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유로 제명됐다.

비례대표 의원은 자진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는다. 때문에 비례대표인 양 의원과 김 의원의 의원직 유지를 위해 자진 탈당 형태가 아닌 당의 제명 절차를 거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도 대량해고·임금체불 문제가 불거지면서 민주당이 징계 절차에 나서자 자진 탈당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의원이 당적을 버리고, 당도 탈당을 허용하는 행태가 올바르다고 보여지지 않는다”며 “당과 의원 모두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제 의원이 탈당하면) 당 입장에서 부담을 더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당에서 진상조사를 한다고 해도 검찰처럼 할 수는 없으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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