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도 맛있는 음식이 넘쳐난다. 너무나 그 종류가 많아서, 웬만한 호텔 뷔페에 가면 그 종류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다. 세계 각국의 음식들이 핵융합을 일으킨 듯 이름도 모를 퓨전 요리가 많아졌다. 음식의 모양과 때깔은 물론 저마다 고유하고 독특한 냄새는 미각 보다 먼저 풍미로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다. 대체 무슨 음식을 먼저 먹어야 할까?

호텔은 그렇다 치고, 요즘은 코로나19로 갈 수 없는 공항 라운지는 얘기가 좀 다르다. 호텔급은 아니더라도 몇가지 맛있는 요리가 있는 진열장 보다 더 인기 있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컵라면과 함께 뜨거운 물을 공급하는 곳이다. ‘좀 맛없는 음식이라도 컵라면보다 나을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 듯하다.

그러고 보면 외국을 찾는 우리는 물론 외국인조차도 컵라면을 찾는 것은 참으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신간 <라면의 재발견 ― 후루룩 맛보는 라면 연대기>(따비)는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가난의 음식에서 취향의 음식으로 진화해온 라면을,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추적하고 있다.

신간 ‘라면의 재발견 ― 후루룩 맛보는 라면 연대기’(따비)는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가난의 음식에서 취향의 음식으로 진화해온 라면을,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추적하고 있다.
신간 ‘라면의 재발견 ― 후루룩 맛보는 라면 연대기’(따비)는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가난의 음식에서 취향의 음식으로 진화해온 라면을,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추적하고 있다.

여자는 물론 남자들조차도 ‘잘하는 요리’를 묻는 질문에 “라면”이라고 답하던 시기도 있다. 지금은 좀 다를 것 같아도 결국 양파, 파, 오뎅, 떡, 치즈 등의 첨가물이나 끓이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일주일에 여러 번 라면을 먹는 것은 어쩌면 서민으로 사는 우리에게 다반사가 아닐까 싶다. 나이가 50을 넘어서도 먹고 싶은 탓에 일주일에 한 번씩으로만 제한하고 있는 지인들을 보면 라면의 위력은 새삼 커 보인다. 그러고 보니, 외국에서 돌아온 친척이 오자마자 집에서 라면에 김치를 듬뿍 넣어 먹은 것도 우연이 아닌 듯 싶다.

어렸을 적, 밥이 없어서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 인기척도 없었던 형제들이 갑자기 젓가락을 들고 모여든 경험이 있다. 어떤 날에는 한 솥을 끓여 다 퍼질 때까지 배터지게 먹으면서 만복의 행복을 경험한 적도 있었던 것을 보면 식탐에는 라면에 식은 밥이 천적과 같은 호적수가 아니었나 싶다. 이 모든 라면에는 그 누구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경국지색을 능가하는 매력적인 냄새가 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이 어쩌면 성인이고 도인이고 영웅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우리 한국인의 소울푸드 목록에서 라면을 뺄 수는 없다. 이런 라면이 한국에서 처음 나온 지 60년 가까이 흘렀다. 라면이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를 잡는 데에는 어디에도 없는 한국 라면만의 맛이 있었다. 빨간 국물의 매운맛 라면은 한국 라면의 대세이자 베스트셀러다. 라면 스프의 가장 중요한 성분은 (고깃국물 엑기스를 제외하면) 고추, 마늘 등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인만의 라면 먹는 법이 있다. 라면 하나를 끓이면서 소면, 칼국수 등을 넣어 양을 늘렸고 김칫국물이나 고추장을 풀어 간을 맞췄다. 그런 애틋함을 간직한 라면은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까? 라면은 재난현장에 구호품으로 가장 먼저 달려가기도 했지만, 우주로도 진출했다. 그렇게 라면의 변신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라면의 재발견>을 가까운 책방, 아니 더 가까운 인터넷서점을 통해서 만나야겠다.

한종수 :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저서로는 『강남의 탄생』 (공저)을 비롯해, 『2차 대전의 마이너리그』 , 『제갈량과 한니발, 두 남자 이야기』 , 『세상을 만든 여행자들』 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영락제: 화이질서의 완성』 , 『환관 이야기』, 『제국은 어떻게 망가지는가』 (공역)이 있다.

김정현 : 서울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 학사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SBS 기획실, 금강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홍보학회 회장, 서울브랜드위원회 부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이해와 활용』, 『브랜드 자산관리』가 있고, 옮긴 책으로 『미디어 방정식』, 『서구민주주의와 정치광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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