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최근 쌍용자동차 노조를 향해 강도 높은 주문을 내놓았다. /뉴시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최근 쌍용자동차 노조를 향해 강도 높은 주문을 내놓았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최근 중대위기를 마주한 쌍용자동차 관련 발언으로 뒷말을 낳고 있다. 구조조정 중인 기업의 노사가 갈등을 표출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는데, 그동안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온 쌍용차 노조에게 다소 가혹한 다그침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 ‘모범생’ 노조에 쟁의권 포기 각서 요구

이동걸 산은 회장의 문제의 발언은 지난 12일 신년 온라인 간담회에서 나왔다. 이날 최근 주요 이슈 중 하나인 쌍용자동차 문제를 언급하던 그는 노사관계와 관련해 두 가지 지원 조건을 제시했다. 1년 단위의 단체협약을 3년 단위로 늘리고, 흑자가 날 때까지 쟁의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구조조정 기업이 매년 노사협상으로 파업하고 자해행위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앞으로 이런 일은 용납될 수 없다”면서 각서까지 요구했다. 또한 해당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단돈 1원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동걸 회장은 “일방적으로 노조를 핍박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쌍용차를 살리는 마지막 각오에서 부탁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지만, 노조를 향한 압박의 수위는 상당히 높았다.

이동걸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이내 거센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쌍용차의 위기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지나친 발언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파업 등 쟁의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이고 합법적 절차를 따르도록 돼있는데, 국책은행의 수장이 지원을 빌미로 이를 묵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쌍용차 노조는 2009년 이른바 ‘쌍용차 사태’를 겪은 이후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이어오며 쟁의행위에 나선 적이 없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고통분담에 적극 나서면서 협력적 노사관계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에도 국내 완성차 업계 중 가장 먼저 임단협을 마무리 지었고, 2019년에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복지 중단 및 축소, 전 직원 임금 및 상여금 반납 등에 합의한 바 있다. 최근에도 투쟁이 아닌 사측과의 상생·협력을 통한 위기 탈출에 무게를 두고 있는 쌍용차 노조다.

또한 현재 쌍용차가 겪고 있는 위기상황이 노사갈등에 따른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위기를 마주한 최대주주 마힌드라가 투자 및 지원을 중단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며, 외국계 자본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도 근본적인 배경으로 꼽힌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의 지적도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쌍용차 노조가 그동안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가혹한 다그침으로 비쳐진다”고 말했다.

쌍용차 노조는 지난해에도 업계에서 가장 빨리 임단협을 마무리 짓는 등 무분규 노사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쌍용차
쌍용차 노조는 지난해에도 업계에서 가장 빨리 임단협을 마무리 짓는 등 무분규 노사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쌍용차

◇ 금속노조 “노조에 책임 전가”

이동걸 회장의 이 같은 발언에 당사자인 쌍용차 노조는 말을 아끼고 있다. 생존을 위한 지원 확보가 시급한 상황임을 고려해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쌍용차 노조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의 발언과 관련해 별도로 밝힐 입장은 없다. 특별한 내부 논의도 계획된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면,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이동걸 회장의 발언을 ‘노조혐오’로 규정하고 맹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금속노조는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쌍용차 회생의 각오나 방안 없이 엉뚱한 노조혐오만 늘어놓았다”며 “지금 쌍용차가 처한 위기는 노사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대주주 마힌드라의 약속 어기기와 산업 당국의 외투기업 정책부재가 만든 비극이다. 그런데 노조를 끌어내 당신들 탓이라며 당신들 하는 것 봐서 지원도 생각해보겠다고 겁박하는 건 아무리 봐도 책임 떠넘기기”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동걸 회장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을 부정하는데 부끄러움이 없다. 쟁의권을 자해행위라고 보는 반헌법의식을 드러냈다”면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3년으로 늘리라고 사실상 통보한 건은 개악 노조법의 독소조항을 산업은행이 제일 먼저 꺼내든 것으로, 많은 자본가들에게 용기를 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 노동계 관계자 역시 “구조조정 중엔 어떤 부당한 처사에도 침묵하란 것인가”라며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강조한 문재인 정부의 기조를 국책은행장이 훼손한 모양새”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