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행정안전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의하면 작년 12월 말 기준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는 모두 5,182만9,023명으로 1년 전보다 2만838명이 감소했네. 작년에 태어난 사람이 27만5,815명이고 죽은 사람이 30만7,764명이어서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이른바 ‘데드 크로스(dead cross)’가 발생했다는 거야. 인구를 현상유지하기 위해서는 임신 가능한 여성이 평생 2.1명을 낳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이미 2018년 1명 미만으로 내려갔고, 작년 2분기와 3분기에는 0.84명에 그쳤으니 전체 인구가 줄어든 거지.

한국의 합계출산울이 세계 최저 수준이고, 세계 평균인 2.4명이나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의 평균 1.60명보다 훨씬 낮은 것은 사실이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구재앙이라고 걱정하지. 작년 7월 한국경제연구원은 지금 추세라면 40년 뒤인 2060년에는 인구가 지금의 절반 수준인 2,500만명 이하로 줄어든다는 암울한 전망도 내놓았네. 생산가능인구는 48.1%, 현역병 입영대상자는 38.7%, 학령인구(6∼21세)는 42.8% 수준으로 감소한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은 생산가능 인구 다섯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하고 있지만 40년 뒤에는 생산가능 인구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한다는군. 물론 경제 성장률도 낮아지고.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2006년부터 작년까지 200조원에 가까운 돈을 썼고, 앞으로도 2025년까지 총 196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라네. 돈을 많이 쓴다고 저출산 흐름이 멈출까? 저렇게 많은 돈을 투입하고도 합계출산율이 1.0 이만으로 계속 떨어지는 걸 보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네. 세계로 눈을 돌려보아도 마찬가지야. 부자 국가들 모임인 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2.0에 가까운 나라들은 이스라엘, 멕시코, 터키뿐이네. 반면에 개도국의 합계출산율 평균은 2.6이고, 최빈국 평균은 3.9로 높아. 그 결과 세계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 작년 6월 30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유엔인구기금(UNFPA)과 함께 발간한 '2020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를 보면 세계 총인구수는 77억9,500만명으로, 지난해보다 8,000만명 증가했네. 개도국과 최빈국의 합계출산율이 높은 결과이지.

사회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누구나 부모 노릇하기 쉽고, 청년들이 미래에 큰 희망을 갖고, 양극화와 불평등이 줄어들고, 경쟁보다는 연대를 더 중요시하고, 남녀가 실질적으로 평등한,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은 정부의 의무야. 그러면 출산율이 지금보다는 높아질 걸세. 하지만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펜데믹은 많은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네. 세계보건기구(WHO)도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펜데믹이 앞으로 계속 나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고.

그래서 물어보는 매우 논쟁적인 질문이네만, 한 나라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인구가 계속 증가해야만 할까? 조금씩 줄어들면 안 되나? 실제로 이웃 일본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들의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거든.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도 합계출산율이 2.1 이하야. 앞으로 인류가 맞이하게 될 최악의 재앙인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지구에 사는 인간의 숫자부터 줄여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경제성장, 국력, 민족주의 같은 이념이나 가치에 매몰된 사람들에게 인구 감소는 분명 재앙이고 절벽일 수밖에 없네. 하지만 이제 우리도 인구 문제를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네만… 세상 물정 모르는 팔자 좋은 늙은이의 한가한 소리인가?

『장자』의 「즉양」편에 나오는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이라는 고사성어를 알지?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다는 뜻이야. 달팽이 뿔 위에서 사는 미물들에게야 달팽이 뿔 위의 영토가 중요하겠지. 미물들에게는 그곳이 “쓰러져 죽은 시체가 수만이고 도망가는 적군을 쫓다가 보름이 지나서야 돌아올 정도”로 넓은 땅이거든. 하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면 달팽이 뿔 위에서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미물들이 우습게 보일뿐이지.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일 거야. 인간들이 아주 작은 지구에 이리저리 선을 긋고 서로 아옹다옹 다투는 모습이 꽤 우습게 보일 거야. 광활한 어둠 속에 한 점으로만 보이는 지구에서 아옹다옹 다투는 인간들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까. 실제로 미국 우주선 보이저 1호가 지구에서 60억km 이상 떨어진 우주에서 찍은 태양계 행성들 속의 지구 사진을 보면 지구는 너무나 작아서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찾아봐야 보이는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일 뿐일세.

『코스모스』라는 책으로 우리들에게 친숙한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에서 그 사진을 보면서 쓴 글을 함께 읽으면서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은 어떠해야 되는지 숙고해보세.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 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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