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청 “변이바이러스·백신공급 등 불확실성 존재, 가능성 열어둔 것”
백신 다양화 한다는 정부, 예방효과 92% 스푸트니크는 논외
스푸트니크V 3상 보고서, 의학저널 란셋 등재… 분위기 반전, EMA 허가신청

러시아는 지난해 8월11일(현지시간) ‘스푸트니크V(사진)’가 세계 최초 코로나19 백신으로 공식 등록됐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모스크바 소재 니콜라이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학 및 미생물학 센터에 백신이 진열돼있는 모습. / AP·뉴시스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한국 정부가 러시아에서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Ⅴ’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해외 여러나라에서 이미 스푸트니크V에 대해 긴급사용을 승인하는 백신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분주한 가운데, 우리 정부만 ‘또’ 뒷북을 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8일 열린 질병청 예방접종추진단 ‘시민참여형 특별 브리핑’에서 “러시아 스푸트니크V와 관련해 변이 바이러스나 공급(차질) 이슈 같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추가 백신 확보 필요성에 대해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다수의 매체에서는 ‘스푸트니크V 도입 검토’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이러한 보도가 이어지자 질병청은 “현재 스푸트니크V의 계약을 진행하거나 구체적으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보도설명자료를 배포했다.

결국 질병청의 공식 입장은 스푸트니크V를 비롯한 추가 백신 확보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가능성만 열어뒀을 뿐, 아직 해당 백신의 도입과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는 하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모습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계약한 후 다른 제약사들의 백신 도입을 차일피일 미루다 초기 공급계약 시기를 놓치고 코로나19 백신 다양화를 지연한 모습과 흡사하다.

정부는 글로벌 제약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지난해 6월 말부터 관계부처 및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백신도입 테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어 같은 해 7월부터는 백신 분야 전문가 논의 등을 거쳐 코로나19 백신 선구매 방향을 확정하고 화이자를 시작으로 글로벌 기업과 백신 선구매를 위한 계약절차를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초,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측과 코로나19 백신 공급 계약이 성사됐으며, 존슨앤존슨(얀센)·화이자와는 구매 약관(MOU)을 체결했다고 코로나19 백신 확보 진행상황을 밝혔다.

이후 화이자 백신은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공급되는 것으로 확정됐다. 화이자 백신은 –70℃ 이하의 온도에서 보관 및 수송이 이뤄져야 해 공급가능 국가가 제한적이라 코백스 측이 한국에 우선적으로 공급을 결정했다는 얘기도 있다. 결국 화이자 백신은 정부가 화이자와의 계약을 통해 공급 받는 것이 아닌 코백스를 통해 물량을 지원 받는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기정사실화 됐으나, 아직 백신의 수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추가로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에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종류를 다양화하겠다고 했지만, 예방효과가 91.6%에 달하는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는 모습이다.

앞서 러시아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는 지난해 11월 임상2상 중간보고에서도 예방효과가 약 95%에 달하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스푸트니크V 도입에 대해서는 논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질병청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 국내 도입을 위해 지난해 여름부터 각 제약사들과 비밀유지협약, 협력의향서, 구매약관 합의 등의 단계를 거쳐 연말까지 4개사 최종 구매계약을 체결했고, 현재 노바백스와 계약을 추진 중이다”며 “스푸트니크V에 대해서는 지난해 전문가회의 당시 정보가 불충분해 도입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이 국내에서 생산된 러시아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를 인천에서 모스크바로 운송했다. / 아시아나항공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12월29일, 국내에서 생산된 러시아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를 인천에서 모스크바로 운송했다. / 아시아나항공

이러한 모습은 해외 국가들 사이에서도 한때 비슷하게 나타났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스푸트니크V에 대한 안전성과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스푸트니크V의 임상3상 보고서가 의학저널 란셋에 실리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스푸트니크V 1·2차 접종을 모두 마친 1만9,866명의 임상3상 시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면역 효과가 91.6%인 것으로 확인됐다. 임상시험 대상 중에는 60세 이상 고연령자가 2,144명이 포함돼 있는데, 이들 역시 접종 후 면역 효과가 91.8%로 나왔고 안전성도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스푸트니크V의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된 셈이다.

란셋이라는 의학저널은 전 세계에서 1, 2등을 다투는 톱저널로 꼽힌다. 즉, 란셋에 등재된 보고서나 논문은 신뢰도가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에 스푸트니크V 도입과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긍정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해 눈길을 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교실 교수는 지난 8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스푸트니크V를 도입해 접종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재욱 교수는 “란셋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어떤 논문을 란셋에 싣고자 하는 경우 그 논문에 제출된 데이터와 모든 과정은 재차 검증을 받게 된다”며 “그런 만큼 백신(스푸트니크V)의 효과는 신뢰할 만하고,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검증된 러시아 백신도 필요하다면 가능성을 열어놓고 유연하게 대처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백신 확보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제출되는 서류 등에 대해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1차적인 관문은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번에 란셋에 연구 결과가 실려 공개되면서 서방국가에서 스푸트니크V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연구결과라고 생각이 들고 희망적인 연구결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헝가리와 아르헨티나, 아랍에미리트, 이란 등 30개 국가에서는 스푸트니크V에 대해 긴급사용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유럽연합(EU) 측 역시 스푸트니크V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스푸트니크V를 언급했고 유럽의약품청(EMA)의 승인 관련 절차를 돕겠다는 의사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외 EU 회원국들 역시 러시아산 백신 사용 승인을 앞다퉈 검토하고 있다.

유럽의약품청에서 스푸트니크V에 대해 접종허가를 내리고 유럽 국가들이 스푸트니크V의 공급계약을 체결한다면 한국은 또 코로나19 백신 확보에서 뒤처질 수 있는 셈이다. 코로나19를 사태를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백신을 빠르게 확보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는 만큼 정부도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편, 스푸트니크V는 현재 국내 제약사인 한국코러스(지엘라파 자회사)에서 위탁생산해 해외로 수출을 하고 있다. 러시아 측은 스푸트니크V 생산물량을 확대하기 위해 최근에는 GC녹십자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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