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배터리 소송 패소 뒷수습이라는 난제를 마주하게 됐다. /뉴시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배터리 소송 패소 뒷수습이라는 난제를 마주하게 됐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SK이노베이션이 결국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됐다. 수조원대의 대대적인 투자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 수백 조에 이르는 미래시장을 놓칠 위기다. 최근 임원들에게 ‘호시우보(虎視牛步)’ 정신을 강조했던 김준 총괄사장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 결국 패소한 SK이노베이션… 이제는 진짜 벼랑 끝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어수선한 가운데 찾아온 올해 설 명절, SK이노베이션은 그야말로 초상집이 됐다. 미국에서 경쟁사 LG에너지솔루션과 벌여온 소송이 결국 패소 결정을 마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현지시각으로 지난 10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승소를 최종 결정했다. 

SK이노베이션은 극적인 반전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이미 충분히 예견돼온 결말은 뒤집히지 않았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이 2019년 4월에 제기한 이번 소송은 지난해 2월 증거인멸 인정에 따른 SK이노베이션 조기패소 예비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이후 거듭 미뤄졌던 최종 결정이 마침내 이번에 내려진 것이다.

이 같은 최종 결정은 SK이노베이션에게 천문학적 손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SK이노베이션은 향후 10년간 미국 내에서 리튬 이온 배터리 완제품은 물론 핵심 부품 및 소재를 판매할 수 없게 됐다. ITC가 일부 유예 결정을 내려 폭스바겐과 포드에겐 2~4년간 예정된 납품이 가능하지만, 대대적인 투자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약 3조원을 들여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 2개를 짓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전기차 시장에서 완전히 도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한 가운데, 10년 동안 미국 시장에서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2030년까지 약 215조 규모로 성장할 전망인데, 이 시장을 눈앞에서 놓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SK이노베이션은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발등의 불이 됐다. 선택지는 많지 않다. 먼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SK이노베이션의 마지막 희망이자 최상의 시나리오다. 이 경우 ITC의 결정과 조치는 일체 무효가 된다. 

다만,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SK이노베이션과 이해관계가 맞물린 조지아주 등 미국 내 일각에서 거부권 행사 요구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전례 자체가 극히 드물다. 특히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된 소송에서는 아예 없었다.

결국 남은 것은 당사자인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의다. 하지만 이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앞서도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대립해왔는데, 이제는 더 불리한 처지가 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의 진정한 반성 및 사과를 촉구하고 있으며, 배상금 규모 또한 막대한 것으로 예상된다. 합의기한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 두 달여에 불과한 점도 SK이노베이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SK이노베이션은 ITC의 이번 결정과 관련해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실질적인 판단이 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남은 절차를 통해 해당 결정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결정에 따른 파장을 강조하는 한편 합리적인 조건 하에서는 언제든 합의를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SK이노베이션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김준 총괄사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지게 됐다. 이번 사태의 해결 여부가 사실상 최종 결정권자인 그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해와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LG에너지솔루션 측을 설득해야 하는 까다로운 난제를 풀어야 한다.

김준 총괄사장은 최근 설 명절을 앞두고 계열사 전 임원에게 친환경 신발과 함께 ‘호시우보(虎視牛步)’가 적힌 서예 작품을 전달했다. 호시우보란,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보고 소처럼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신중을 기해 위기 및 역경을 넘어서자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사상 초유이자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김준 총괄사장이 어떻게 돌파해 나갈지 주목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