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부산신항 다목적부두에 위치한 해양대학교 실습선 선상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부산신항 다목적부두에 위치한 해양대학교 실습선 선상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대학 앞에서 자취를 시작한 지 올해로 8년째. 단골이었던 동네 컵밥집이 얼마 전 폐업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올해 1학기마저 비대면으로 시작한다고 하니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네를 거닐면 가끔 섬뜩한 느낌이 든다. 놀라운 속도로 풍경이 달라지고 있어서다. 익숙해졌다 싶으면 생경한 가게가 들어서고, ‘임대’가 붙은 빈 건물은 눈에 띄게 늘어간다. 다른 동네라고 형편이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니 불현듯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가슴도 종종 울리는 모양이다. 연일 생계 절벽에 떠밀리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생각하면 가슴이 내려앉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가슴이 부산 가덕도에서 뛰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부산 가덕도신공항 예정지를 찾아 “가슴이 뛴다”고 했다.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문 대통령의 가덕도신공항 지원사격에 야권에서는 “노골적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40여 일 앞두고 대통령이 핵심 쟁점인 가덕도신공항 행사를 가진 것 자체가 시기상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부산 방문도 1년 만이다. 대통령이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멘 셈이다.

문 대통령이 대동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마치 국토부가 가덕신공항을 반대한 것처럼 비춰져 송구하다”고 했다. 앞서 국토부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의 안전성·경제성을 우려한 바 있다. 대통령의 가슴을 뛰게 한 덕분인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은 25일 오후 법사위를 통과한 데 이어 이튿날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대통령 방문 시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니 야당이 뭐라고 비판해도 마땅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한가지 더. 문 대통령의 가슴은 지난 5일에도 뛰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전남 신안 해상풍력단지 투자협약식에서 “가슴이 뛰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12만개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낸 것이었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

자정이 넘어서도 반짝거렸던 서울 도심은 이제 밤 10시만 되면 고요해지기 시작한다. ‘K-방역’이라는 이름의 밤의 장막 뒤에 가려진 수많은 자영업자들과 취업준비생들의 한숨과 눈물이 느껴졌을까. 그랬다면 대통령은 설렘을 의미하는 ‘가슴이 뛴다’는 말이 그리 쉽게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때 청와대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공약은 2년 만에 파기됐지만, 당시 문 대통령은 “퇴근 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친구·이웃 같은 서민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집무실은 옮기지 못해도 남대문시장은 얼마든지 들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가슴이 뛸 곳이 어디 선거를 앞둔 가덕도 뿐이겠는가. 코로나19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지(死地)에서 가슴이 ‘쿵쿵’ 내려앉은 대통령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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