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우리나라 역시 지난 12일 ‘탄소세(carbon tax)’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등 탄소세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탄소세 적용 시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원본=Getty images
기후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우리나라 역시 ‘탄소세’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등 탄소세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탄소세 적용 시 부담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원본=Getty images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주요국들의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취지의 탄소중립(Net-Zero)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12일 ‘탄소세’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등 탄소제로를 위한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발의된 법안은 올해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 1톤당 4만원을 부과하고 오는 2025년에는 8만원까지 탄소세를 높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들어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ICT산업 분야에서 탄소배출량이 크게 증가한 것을 줄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탄소세 관련 법안이 기업에 지나치게 큰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배출량 상위 100대 기업 중 22~50개는 탄소세가 영업이익보다 많다는 것이다.

◇ 탄소세 도입 시 연간 7조~36조 부담↑… 영업익보다 탄소세가 많은 기업도

실제로 3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은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추정한 결과, 탄소세 도입 시 기업들에겐 연간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달하는 추가 부담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은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탄소세가 일괄 부과된다는 가정 하에 배출처의 추가 부담을 시나리오별로 분석했다. 탄소세율은 이산화탄소 환산 톤 당 10달러, 30달러, 50달러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했다. 분석 대상은 ‘2019년 온실가스 에너지 목표관리 명세서’ 상 등록된 908개 배출처다. 

분석 결과 배출처들은 시나리오별로 △7조3,000억원 △21조8,000억원 △36조3,000억원의 탄소세를 부담하게 될 것으로 추정됐다. 각각 2019년 전체 법인세수 대비 △10.1% △30.2% △50.3%에 해당하는 규모다.

배출량 기준 상위 100대 배출처는 전체 탄소세의 89.6%를 부담했다. 영업이익 대비 탄소세 비중은 시나리오별로 △10.8% △32.3% △53.8%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표한 시나리오별 탄소세 부담현황./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편집=박설민 기자, 사진=Getty images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발표한 시나리오별 탄소세 부담현황./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편집=박설민 기자, 사진=Getty images

문제는 영업이익이 낮은 소규모 기업일수록 탄소세로 인한 부담이 커지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배출량 상위 100대 배출처 중 영업이익 상위 10개 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의 배출처를 제외하면 동 비중은 시나리오별로 39.0%, 117.0%, 195.0%까지 상승했다. 또한 탄소세액이 영업이익을 초과하는 배출처 수도 시나리오별로 각각 22개, 41개, 50개에 이르렀다.

업종별로는 발전 에너지 분야의 부담이 가장 컸다. 에너지업계 업종별 부담 순위는 이산화탄소 환산 톤 당 30달러 기준 발전 에너지 분야가 8조8,000억원으로 가장 높았다. 발전 에너지 외에는 △철강 4조1,000억원 △석유화학 2조1,000억원 △시멘트 1조4,000억원 △정유 1조2,00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전경련 측 전문가들은 “주요 발전 에너지 공기업 및 자회사 7개사가 부담해야 하는 탄소세만 7조3,000억원에 달해 원가 상승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탄소세 부담 순위 2위를 기록한 철강 업종 역시 걱정이 큰 상황이다. 탄소 배출량 1, 2위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탄소세 합계는 3조7,000억원인 반면, 양사 영업이익 합계는 4조2,000억원으로 영업이익 대비 탄소세액의 비중이 88.9%에 이른다. 1년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 대부분을 탄소세로 내야 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탄소세에 대한 부담을 기업들에게 지우는 것보단 산업부문 저탄소화 전환을 위해 투자와 지원 확대 등이 필요할 것으로 지적한다. 사진은 여수산단의 모습./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당장 탄소세에 대한 부담을 기업들에게 지우는 것보단 산업부문 저탄소화 전환을 위해 투자와 지원 확대 등이 필요할 것으로 지적한다. 사진은 여수산단의 모습./ 사진=뉴시스

◇ 탄소세에 탄소국경세까지 기업들 ‘이중고’… “저탄소화 전환 투자 및 지원이 우선 ”

이처럼 탄소세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경제적 손해를 줄일 수 있는 대응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너무 성급히 탄소세를 도입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실제로 2020년 기준 탄소세를 도입한 나라는 24개국지만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10개국 중 탄소세를 도입한 나라는 일본가 캐나다 2개국뿐이다. 심지어 2017년 기준 연간 64억8,8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배출량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은 자국 내에선 경제적 이유로 탄소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으나, 무역국들을 상대로는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국가의 제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 국경세’를 도입하기까지 한 상황이다.

여기에 매년 124억7,6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중국도 탄소국경세 도입에 가세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서는 탄소세에, 해외 시장에서는 탄소국경세라는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라고 기업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당장 탄소세에 대한 부담을 기업들에게 지우는 것보단 산업부문 저탄소화 전환을 위해 투자와 지원 확대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미국과 같이 저탄소화 기술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저탄소화 관련 기술개발 연구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신성장동력 기술 대상 포함을 통한 R&D 세제지원, 재교육을 통한 기존 일자리 전환 등 투자와 지원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격히 줄이고 기후위기 정책을 추진하는데 소요될 재원 확보를 위해선 탄소세 도입이 필수라는 반론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온실가스 배출에 책임 있는 기업에게 우선 과세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구조에서 벗어나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글로벌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는 지난해 4월 총선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필수적인 탄소세 도입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생산비 증가로 인한 제조업 위축, 조세저항 또는 이중과세 우려 등을 내세워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며 “이런 생각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탄소세의 효과와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탄소중립은 우리 경제와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만,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주요국에 비해 높아 산업부문의 저탄소화 전환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과도한 탄소세 도입으로 산업계 부담이 지나치게 가중될 경우, 오히려 투자 위축, 일자리 감소, 물가 상승 등 경제 전체에 악영향이 발생할 수 있어 탄소세 도입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