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상장사인 필룩스의 사외이사가 유명무실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단 한 차례도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 KH필룩스, 편집=시사위크
코스피 상장사인 필룩스의 사외이사가 유명무실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단 한 차례도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 KH필룩스, 편집=시사위크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코스피 상장사인 KH필룩스(이하 필룩스)의 사외이사가 유명무실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년째 저조한 이사회 출석률을 보이고 있어서다. 필룩스는 최근 몇 년간 실적 악화 속에서도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온 곳이다. 이에 사외이사의 경영 감시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떠올랐지만, 정작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조차 제대로 출석하지 않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 작년 이사회 참석률 ‘제로’… 사외이사진, 경영 감시 역할 ‘유명무실’ 

“0%.” 지난해 필룩스의 전체 사외이사 이사회 참석률이다. 2020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필룩스의 정대철·Song Byung Ok(송병옥) 사외이사는 작년 이사회에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8월 중도 사퇴한 강세찬 전 이사 역시 사임 직전까지 출석률이 0%였다. 

필룩스는 조명기기 및 부품 제조 전문기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8차례의 이사회를 열었다. 이사회에선 △전환사채권 발행결정의 건 △타법인 주식 및 출자증권 취득의 건 △금전대여 승인의 건 △제3자배정 유상증자 결정의 건 등 다수의 주요 안건들이 상정됐다. 

하지만 사외이사들은 단 한 번도 이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들은 이사회에 상정된 100여건의 안건에 단 한 차례도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던지지 않은 채, 그저 ‘불참’했다. 이에 따라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은 사내이사들로만 논의·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필룩스의 이사회에는 한우근 대표를 포함해 총 5명의 사내이사가 등재된 상태다.  

사외이사들의 저조한 출석률 문제는 비단 지난해만의 일이 아니다. 우선 거물급 정치인 출신인 정대철 이사는 2016년 10월 필룩스의 사외이사로 영입된 후, 줄곧 저조한 이사회 참석률을 보여 눈총을 사왔다. 

정 이사는 2017년 51차례의 이사회가 열린 동안, 단 한 차례만 이사회에 참석했다. 정 이사는 2017년 3월 29일 열린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변경의 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정 이사는 필룩스의 임직원이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이사로서의 활동에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정 이사의 영입 소식이 화제가 되면서 필룩스 주가가 일시적으로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이사회 활동은 저조한 수준이었다. 2018년 이사회가 76차례 열린 동안 참석 횟수는 단 한 번 뿐이었다. 2019년에는 총 72차례의 이사회 중 4차례 참석했지만 지난해엔 아예 참석률이 제로(0)였다. 

다른 사외이사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강세찬 전 이사도 2019년부터 지난해 8월 사퇴 전까지 이사회 참석률이 0%였다. 2019년 3월 합류한 송병옥 이사는 그해 10월까지 비교적 이사회에 성실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부터는 참석률이 저조했다. 

사외이사 제도는 1998년 2월 국내에 도입됐다. 대주주와 관련 없는 외부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대주주의 독단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취지다. 이에 사외이사들은 경영 자문 역할 뿐 아니라, 경영진 감시 및 견제 역할을 주요하게 수행해야 한다. 때문에 회사의 주요 안건이 논의되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 역시, 사외이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로 꼽힌다. 주총의안분석 기관인 좋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이사회 참석률이 저조한 사외이사 재선임에 대해선 반대를 권고하기도 한다. 업무 충실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이사라는 판단에서다.  

최근 몇 년간 사외이사 제도는 구조 개혁의 변화를 맞고 있다. 독립성 및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제 역할을 못하는 사외이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점차 제도 개선도 이뤄지고 있다. 상장사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장수 사외이사들도 대거 물갈이되고 있다. 올해 주총 시즌에는 다수의 상장사들이 제도 개혁 흐름에 발맞춰 이사회 투명성을 강화하고 사외이사 제도를 정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룩스의 사외이사 운용 제도는 크게 변화가 없는 모습이다. 사외이사의 저조한 참석률 문제가 오래 전부터 이어졌음에도 수년째 변화가 없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유령 사외이사’를 둘러싼 구설수도 끊이지 않는 분위기다. 

◇ 3년째 적자 행진에도 공격적 사업 확장… 경영 감시 기능 어디로? 

필룩스는 필룩스그룹의 주요 계열사 중 한 곳이다. 필룩스그룹은 배상윤 회장을 지배주주로 두고 있는 기업집단으로, 배 회장은 그룹의 최상단회사인 건하홀딩스(지주회사)의 최대주주다. 필룩스그룹의 주요 계열사로는 삼본전자, 필룩스, 장원테크, 이엑스티 등이 있다.  

필룩스는 최근 몇 년간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2018년 바이오 사업 진출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일시에 크게 뛰기도 했다. 2018년 2월 2,000원대였던 주가는 2개월 만에 3만원대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3월말 현재 주가는 3,000원대까지 낮아진 상태다. 이 때문에 필룩스는 주가 하락의 피해를 본 주주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필룩스는 최근 사명을 교체하고 사업 영역 확장에 속도를 올리고 상태다. 필룩스는 지난 3월 29일 열린 주총에서 사명을 KH필룩스로 교체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필룩스는 사명 변경을 계기로 기존 사업부문인 전자부품, 소재, 조명 등 제조업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신소재 개발, 친환경 전기차용 부품, 면역항암제 등 바이오사업 부문까지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제는 필룩스의 경영상황이 좋지 못하는 점이다. 필룩스는 3년째 대규모 당기순손실을 내고 있다. 2018년 연결기준으로 110억원의 순손실을 낸 것으로 시작으로 2019년 -117억원, 2020년 -47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매년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만큼, 사업 영역 확장과 투자 등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경영 견제를 담당하고 있는 사외이사들은 회사의 주요 경영 안건이 다뤄지는 이사회에는 전혀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어 안팎의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는 분위기다. 

◇ 필룩스 “사외이사 의결권 없어 불참하는 듯”…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상식적이지 않은 답변”

이에 대해 필룩스 측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회사 내부 규정상 사외이사가 의결권을 갖고 있지 않아서 (이사회에) 불참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의결권이 있으면 사외이사가 3명 중 1명이라도 참석을 해야 하는데, 저희는 경우 이에 해당되지 않고 있다. 이사회 참석이 저조한 이유는 유관부서를 통해 조금 더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사외이사는 업무집행결정권 및 이사의 직무집행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는 이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현행 상법상 기본 규정을 감안하면, 이사회 내에서 의결권이 없다는 필룩스의 답변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이에 대해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이사회 안건은 사외이사를 포함해서 논의돼야 하는 것이 맞다”며 “사외이사가 의결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상법 정관상 사외이사 역시 이사회에서 찬반 의사를 던질 수 있는 의결권한을 갖고 있다. 어떤 근거로 (필룩스 측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사회 안건은 정관상 일정한 인원수(이사회 구성원 과반 출석)가 참석해 과반 이상 찬성표를 던지면 의결이 가능하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필룩스 이사회는 사내이사 5명, 사외이사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 2명이 불참하더라도 이사회 구성원 과반이 참석하면 의결 자체가 이뤄지는데 문제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외이사 제도의 운영 취지를 감안하면 필룩스 사외이사들의 이 같은 저조한 참석률은 문제가 있다는 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지적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관계자는 “사외이사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 살피고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하지만 필룩스 내에선 사외이사의 경영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지난해 필룩스는 이사회 참석률이 0%인 사외이사들에게 총 3,157만1,000원의 보수를 지급했다. 1인당 평균 보수는 1,799만9,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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