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중심 개발, 이주대책 ‘이사비 지원’ 토지수용 ‘관리처분’
원주민 상당수 ‘임대인’ 공공개발 시작… 전세대란 온다
정치 거품 빼고 공공개발 장점 살려 올바른 선례 남겨야

2월 서울 용산구 한 건물에 토지·건물주들이 민간주도 개발을 요구하며 정부 추진 사업에 반대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붙여놓았다. / 뉴시스

시사위크=최정호 기자  정부가 최근 발표한 ‘대도시권 주택공급방안’(이하 공공 재개발)이 “서민의 주거권을 빼앗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재개발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게 ‘토지 수용’과 ‘원주민(세입자 포함) 이주 대책’인데, 정부가 제시한 대안이 민간 개발 보다 허술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간 개발의 경우도 이해당사자간 토지 수용 방식과 원주민 이주 대책을 놓고 협상이 타결 되지 못해 수년 이상 사업이 표류하는 사례가 상당수다. 공공 주도 주택 재개발이 민간 개발 보다 허술하다면 사업간 더 큰 진통이 예상될 것으로 보여진다.

◇ 정부의 무리한 공공 재개발 배경

정부의 공공 주도 주택 재개발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시사위크>취재 결과 LH는 토지 수용은 ‘관리처분인가’ 방식과, 원주민 이주 대책은 ‘이사 비용 지급’의 방법을 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LH의 계획을 두고 전문가들은 “재개발 사업 진행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국가 소유의 토지를 갖고 개발하는 게 아니라 사유지를 이용해 개발하는 것인데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과 제도(공공주택특별법‧도정법 시행규칙 등)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시범 사업을 진행하면 소위 알박기 등과 같은 역기능이 발생해 재정 손실을 초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공공 재개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건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그 동안 수십 차례 내놓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들이 실패로 돌아가며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이 됐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말 “취임 초기로 집값을 돌려놓겠다”고 공언했다.

김현미 장관이 사퇴하자, 문 대통령은 SH‧LH에서 공공개발을 주도해 온 변창흠 전 사장을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는 공공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도다. 변 장관이 LH 직원들의 투기 문제로 사퇴를 밝혔을 때도 문 대통령은 “공공 재개발 사업을 마무리 짓고 사퇴하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행동은 공공 재개발 사업 발표로 인해 천정부지로 치솟던 부동산 가격이 진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가 1년도 안 남은 문 대통령 입장에선 빠른 정책 진행이 필요한 상황이다.

통상적으로 재개발은 빠르면 8년, 길게는 12년 정도 소요된다. 이해당사자간 갈등이 첨예한 곳은 30년 걸리기도 하고 중간에 사업이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 만일 재개발에 관(官)이 개입하게 되면 사업 속도가 빨라진다. △사업계획 수립 △재개발구역 지정 △조합설립인가 △중공인가 등은 지자체장의 허가 사항이기 때문에 행정력만 받쳐주면 사업 기간이 단축된다. 정부가 공공 재개발 사업을 2025년에 완료하겠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행정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번에 발표된 사업지 도봉‧은평‧영등포‧금천 지자체장 모두 문 대통령의 측근이다. 대선 캠프 출신 2명의 구청장이 포함된 것을 보면 문 대통령의 사업 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재개발 사업 역기능과 쫓겨나는 사람들

정부의 공공 재개발을 두고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개발 진행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토지 수용 방식을 LH가 단순히 “관리처분방식으로 받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관리처분방식은, 사업 대상지 주택을 공시지가를 근거로 배상액을 결정하고 아파트 분양가를 선정하는 것이다. 재개발 조합원들은 입주권을 받게 되는데 분양가 차액에 만큼 추가 비용을 납부하거나 이익을 얻게 되기도 한다. 조합이 일반 분양 사업을 추진한다면 건립 단지 세대 합산한 만큼 조합원들은 분담금을 내야 한다.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원주민은 공시지가만 받고 이사를 가야 한다.

문제는 공공 재개발 사업은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사업인 만큼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소위 알박기가 존재할 수 있다. 또 재개발 대상지 특성상 연립주택을 다수 보유한 토지주들도 있다. 이들은 공공 주도 재개발 사업으로 특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 또 조합이 다주택 보유자들에게 얼마만큼의 입주권을 줄지도 관건이다. 다주택 보유자들이 다수로 받은 입주권을 비싼 가격에 매각할 경우 투기가 된다.

전문가들은 공공 재개발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을 서민 주거권 침해로 보고 있다. 배상 받은 금액은 적은데 분양가가 높을 경우 돈이 없어 입주권을 팔고 떠나는 사람들이 발생할 수 있어 사업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 박효주(부동산 총괄) 간사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아파트가 개발돼도 추가 분담금을 마련하지 못해 분양권을 팔고 평생 살아온 고향이자 터전을 잃어버리게 된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정민 도시공학박사(홍익대학교 겸임교수)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현 정부가 집값을 많이 올려놓았기 때문에 보상금 받은 것으로 그동안 살아왔던 집에 준하는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사업 구역으로 선정한 1차 지역(도봉‧은평‧영등포‧금천)들은 역세권‧저층‧직주근접 등 집값 상승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이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정부가 개입으로 인해 5억원을 상회하는 시세가 형성될 것으로 부동산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은평구의 A부동산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개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면서 “분담금이 부담되니 입주권에 웃돈을 얹어 파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했다.

◇ 정치 거품 빼고 서민을 위한 개발 이뤄져야

앞으로 일어날 개발 지역 인근 전세난을 걱정하는 시각도 많다. 개발 대상지 대부분이 다세대주택으로 이루어져 전월세로 거주하는 임대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업이 진행되면 하루아침에 이사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더욱이 개발 지역이 넓고 대상지가 많기 때문에 전월세 집에 대한 수요가 일시에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전세값이 오르거나 월세 보증금 및 월 임대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의 이런 혼란과 달리 임대인들에 대한 이주 대책으로 LH는 <시사위크>에 “이사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밝힌 게 전부다.

사업지로 선정된 4개 지자체 관계자들은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재개발 요구가 있지만 사업할 수 없는 지역과 정부가 요구하는 지역을 선별해서 사업에 참여 했다”고 밝혔다. 이는 낙후된 건물 등으로 인해 일부 주민들의 재개발 요구는 있지만 입주민‧집주인 등 이해당사자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개발할 수 없었던 지역을 행정력을 앞세워 진행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치적 욕심을 버리고 공공 개발의 바른 선례를 남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발 대상지 원주민(세입자 포함) 100% 만족을 얻어내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서민들의 주거권을 빼앗지는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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