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상대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얼룩진 ‘최악’의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참패로 끝났네. 서울시의 전체 시의원 109명 가운데 101명, 25개 자치구 중 24개 구청장을 가지고 있고,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4번 연속 승리했던 정당이 18.32%라는 큰 득표율 차이로 졌으니 참패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작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국회 의석 절반을 훌쩍 넘는 174석을 얻었던 정당이 왜 불과 1년 만에 유권자들의 냉정한 심판을 받게 되었을까?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거나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집권 여당의 정책적 무능, 위선, 내로남불 등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몰염치와 오만이었다고 생각하네. 1년 전에 있었던 총선 압승에 취해 이성이 마비되어 버렸어. 그래서 스스로 진보(?)라는 사람들이 뭐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해 버린 거야.

이번 서울과 부산에서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이유가 뭔가? 두 전임 시장의 권력형 성범죄 때문이었네. 민주당이 자성할 줄 아는 정당이었다면 후보를 내지 않았어야 했네. 상식을 믿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면 자기 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성비위 때문에 많은 예산을 낭비하며 다시 치러야 하는 선거에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낼 수 있겠는가? 민주당의 몰염치와 오만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네. 이번에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빌어야 했네. 그런데도 상대는 자신들보다 더 나쁜 놈이니 조금 덜 나쁜 자기를 찍어야 한다고 떼를 쓰고 있으니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마저 부끄러워서 숨을 수밖에. 샤이(shy)는 이럴 때 쓰는 말 아닌가?

민주당이 시장후보를 공천하면서 선거는 보수 양당의 대결 구조가 되어 버렸네. 그러면서 이번 보궐선거의 주요 이슈가 되었어야 할 우리 사회의 성평등과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는 전혀 없었어. 권력형 성범죄 때문에 다시 치르는 선거에서 성평등을 실현할 비전이나 권력형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조직 문화의 개선 등에 관한 토론이 전혀 없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이번 보궐선거를 두 거대 보수 양당의 진흙탕 싸움으로 만든 책임 또한 민주당이 져야 할 걸세. 만약 민주당이 반성하는 의미로 후보를 공천을 하지 않았다면 성평등과 성폭력에 관한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주요 이슈가 되었을 거야.

이래저래 이번 보궐선거는 ‘진짜’진보정당들(나에게 민주당은 보수 대중정당이다)에게는 최악의 선거로 기억될 걸세.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후보조차 내지 못했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생태 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데도 녹색당이라는 이름은 투표용지에서 찾을 수 없었네. 이번에 출마한 진보정당이나 무소속 후보 5명이 페미니즘을 주요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지지율은 모두 합해 2% 미만에 그치고 말았어. 하지만 어쩌겠는가. 함께 살고 있는 국민들 대다수가 아직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는 게 확실하지만 아직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않고 있는 ‘지금 여기’ 정치 상황을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믿고 시민들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얼마 전에 타계한 채현국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게 되는구먼.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세상이 잘 돼야 한다. 사람이 즐거워야 한다. 신나야 한다. 나도 신나고 다들 신나라! 그러니 절망적일수록 신 내야지. 기죽고 쪼그라들 때일수록 신 내야지. 비관이나 좌절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대개 지배자들에 의한 훈련의 결과이지. 자연스러운 본성이 아니에요. 찰랑찰랑 신나야 해요.” 선생님 말대로 절망적일수록 기죽지 않아야 하네. “안 될 거 없잖아, 서울기본소득”같은 한 젊은 진보정당 후보의 꿈이 실현되는 세상도 내가 먼저 즐겁고 신나게 살아야 가능하다는 걸 잊지 말고.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