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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가 만난 사람들
[인터뷰] 김나경 감독, 운명처럼
2021. 04. 09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더 많은 김나경 감독. /트리플픽쳐스
​김나경 감독이 첫 장편작 ‘더스트맨’으로 관객과 만났다. /트리플픽쳐스 ​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던 어느 날, 먼지 낀 트럭 위에 그려진 ‘기도하는 손’ 그림을 보게 됐고, 신선한 충격과 동시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힘들고 우울하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는 듯했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다. 그리고 그 기분 좋은 충격은 안에 쌓여있던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그렇게 김나경 감독은 운명처럼 ‘더스트맨’을 만났다.

김나경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더스트맨’은 스스로 떠도는 삶을 선택한 태산(우지현 분)이 먼지 위에 그림을 그리며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와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단편영화 ‘지금 당장 보건증이 필요해!’(2014), ‘도깨비불’(2015), ‘내 차례’(2017), ‘대리시험’(2019) 등으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이끌어냈던 김나경 감독은 ‘더스트맨’에서도 감각적인 동시에 위로를 선사하는 사려 깊은 연출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김나경 감독은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더스트 아트’를 소재로, 그동안 조명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각적이면서도 따뜻하게 스크린에 옮겨냈다. 곧 사라져버릴 먼지 위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그 그림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태산을 통해 ‘끝’이 있는 우리의 삶 속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깨닫게 하며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캐스팅도 탁월했다.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얼굴 우지현‧심달기‧강길우 등 각자 다른 개성을 지닌 배우들을 한데 모아 완벽한 합을 완성해냈다. 먼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남자 태산, 열정적인 미대상 모아(심달기 분) 그리고 태산과 함께 길에서 생활하는 발달장애 노숙인 도준(강길우 분)까지 매력적인 캐릭터와 배우들의 앙상블을 이끌어내며 호평을 얻고 있다. 

‘더스트맨’에 담긴 더스트 아트 ‘기도하는 손’. /트리플픽쳐스 ​
‘더스트맨’에 담긴 더스트 아트 ‘기도하는 손’. /트리플픽쳐스 ​

개봉날인 지난 7일 김나경 감독은 <시사위크>와 만나 ‘더스트맨’의 시작부터 개봉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보는 이들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각오를 밝혀 그가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2018년 크랭크업 후 드디어 관객과 만나게 됐다. 기분이 어떤가.
“실감이 안 난다. 독립영화에서 장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도 운이 좋았고, 개봉까지 할 수 있는 건 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 한 건 아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영화를 만들고 개봉도 하게 된 것 같다.”

-러시아 작가 프로보이닉의 작품 ‘기도하는 손’을 보고 이 시나리오를 떠올렸다고. 직접 작가에게 연락까지 했다고 들었다.
“마감에 맞춰 다른 글을 쓰고 있을 때였는데 안 풀려서 답답하고 초조하고 힘들고 우울한 마음이었다. 그때 그 그림을 봤는데, 보자마자 울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먼지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너무 잘 그린 그림이었다.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러시아에 있는 조감독의 지인을 통해 연락을 했다. 작가님의 그림을 보고 영화를 만들게 됐고, 영화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도 넣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되게 좋아해 주셨다. 도의적인 측면에서도 그분이 그린 그림을 보고 시나리오를 떠올렸는데 연락을 드리는 게 맞다 생각했다. 흔쾌히 좋다고 해주셨고, 한국에도 직접 와서 5~6일 머무르면서 본인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알려주고 도안도 같이 짜주고 그림도 그려주셨다.”

-완성된 영화를 본 프로보이닉 작가의 반응도 궁금한데.
“영화에서 모아가 터널 앞에서 태산에게 ‘영원한 게 어디 있냐, 어차피 지워질 그림이라 지금 더 아름다운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이 실제 더스트 아트를 하면서 갖고 있던 생각이었다고 하더라. 다른 나라에서 살고, 전혀 모르던 사람인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았다는 게 신기하다고 하시더라. 나도 감명 깊었다.”

‘더스트맨’ 속 ‘모아와 숲’ 벽화. /트리플픽쳐스
‘더스트맨’ 속 ‘모아와 숲’ 벽화. /트리플픽쳐스

-감독은 그 대사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더스트 아트와 빗대서 이야기를 한다면, 평생 가는 작품이 아니잖나. 금방 지워지는 작품인데, 그래서 그 그림이 있는 순간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또 그것이 마치 우리의 삶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지워질 삶이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순간이 소중한 게 아닌가 하는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고, 태산도 죽음을 생각하던 인물이었는데 방향성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로 표현하고 싶었다.”

-더스트 아트를 소재로 노숙인 태산을 떠올리기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이야기의 구상은 어떻게 하게 됐는지.
“이야기가 떠오른 과정은 나도 미스터리다. 내가 갖고 있던 파편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당시 유튜브에 소셜 익스페리먼트(social experiment) 영상이 유행했다. 그중에서 어떤 사람이 허름한 옷차림을 입고 넘어지는 연기를 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실험을 담은 영상을 봤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는데 홈리스 한 분이 와서 도와주더라. 배고픈데 먹을 거 나눠달라고 하면 다들 무시하고 지나가는데 홈리스만 와서 자기가 먹던 피자 한 조각을 나눠주더라. 일부 편집된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영상을 보면서 나도 편견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또 어릴 때 과학시간에 틴들현상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인상 깊게 남았고 그 이후로 빛 아래 반짝거리면서 부유하고 있는 먼지를 가만히 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먼지라는 게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나도 죽으면 저렇게 되겠지 생각을 하며 살았었는데 그 위에 아름다운 뭔가가 그려져 있다는 게 신기했다. 태산도 먼지라는 속성에서 착안해서 먼지처럼 거처 없이 부유하는 삶을 사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됐다. 그 모든 것들이 다 합쳐지면서 노숙인을 주인공으로 한, 더스트 아트를 그리는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더스트맨’에서 도준을 연기한 강길우. /트리플픽쳐스
‘더스트맨’에서 도준을 연기한 강길우. /트리플픽쳐스

-태산과 영향을 주고받는 도준과 모아의 역할도 중요했다. 먼저 장애를 가진 도준을 표현하는데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을 것 같은데. 
“진짜 어려웠다. 아마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를 만드는 모든 분들이 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지현이 ‘강길우가 도준을 지켜줬다’고 했는데, 그 표현이 정말 좋다. 단순히 기능적으로, 연기적으로만 접근한 게 아니라 도준이라는 캐릭터에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강길우가 매우 훌륭하게 도준을 지켜줬다. 강길우가 도준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어떤 제약으로 보지 않고, 이 사람이 갖고 있는 하나의 특성으로 보고 접근했다고 하더라.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도준이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보였으면 해서 (강길우에게) 귀엽게 표현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었다.”

-모아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캐릭터였다. 특히 길에서 만난 낯선 아저씨, 게다가 노숙인에게 다가간다는 게 쉽지 않은데, 모아는 태산에게 어떤 선입견도 없이 다가가고 진심으로 대하더라. 어떤 마음이었을까. 
“심달기에게 ‘모아는 편견이 없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모아의 정체성이 예술가라고 생각했는데, 아티스트는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과 항상 애정 어린 시선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대생 여자애가 너무 편견 없이 다가가는 거 아닌가 우려를 표하는 분도 계셨다. 그런데 심달기가 일종의 캐릭터적 이기심도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더라. 모아가 아티스트이고 영감의 원천이 태산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해석이 맞는 것 같다.”

-배우의 해석을 들었을 때 감독 입장에서는 놀라면서도 굉장히 고마웠겠다.
“정말 고마웠다. 모아에 대해 나보다 더 한 단계 깊게 생각해 줬다는 거잖나. 나는 모아에 대해 편견 없는 사람이고 주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태산을 봤을 때 거부감이 없었던 거라고 설명했는데,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캐릭터의 이기심 측면까지 생각해 줬다는 게 매우. 글로 쓴 모아보다 (심달기가) 훨씬 입체적으로 그려줬다. 또 본인이 원래 주변 대상을 바라볼 때 똘망똘망한 눈빛이 있는데, 그게 모아랑 잘 맞았던 것 같다.”

‘더스트맨’에서 호흡을 맞춘 심달기(왼쪽)과 우지현. /트리플픽쳐스
‘더스트맨’에서 호흡을 맞춘 심달기(왼쪽)과 우지현. /트리플픽쳐스

-우지현의 칭찬도 안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진짜 좋은 배우다. 정확한데, 열려있다. 테이크를 다시 가도 똑같다. 흐트러짐이 없다. 예를 들어 ‘방금 한 거 그대로 해주면 되는데 중간에 이것만 바꿔 해달라’고 하면, 그것만 정확하게 바꿔서 해준다. 신기했다. 오랜 시간 트레이닝이 돼있는 배우만 할 수 있는 어떤 경지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고, 발성도 좋아서 태산 대사가 구어체가 아닌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어색하지 않게 너무 잘 연기해 줬다. 캐릭터를 해석하는 능력치도 굉장히 뛰어나다. 

배우들의 연기 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다고 하지만, 나는 뒤에 있는 사람이고 관객에게는 배우의 얼굴, 배우의 목소리로 다가가잖나. 배우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더스트맨’ 배우들도 각자 되게 매력이 다른데 앙상블이 정말 좋았다. 태산이나 도준, 모아 다 배우들이 한 것이지 내가 한 건 없다. 운이 좋았다.”

-‘태산’과 ‘모아’가 흔한 이름이 아니었는데, 의미가 있나.
“더스트 아트를 소재로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먼지 모아 태산’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에서 떠오른 단어였고, 먼지와 모아, 그리고 태산의 이야기인 영화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모아라는 캐릭터는 이름에서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다. 또 모아가 먼지와 태산을 연결해 주고 이해를 도와주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이름이 적합했다는 해석도 있더라. 태산도 태산처럼 크게 뻗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기도 했다.”

​김나경 감독이 첫 장편작 ‘더스트맨’으로 관객과 만났다. /트리플픽쳐스 ​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더 많은 김나경 감독. /트리플픽쳐스

-태산과 모아의 관계를 로맨스라 해석했는데, 감독은 그렇게 비치지 않았으면 했다고.
“로맨스로 보시고 싶은 분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감독으로서 원하는 건 이성적 사랑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확장돼 해석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단순히 남자, 여자 성별만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남녀노소 상관없이 더 보편적으로 넓게 해석될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로맨스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촬영하면서 배우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모아를 남성 캐릭터로 설정하는 것도 고민했겠다.
“고민하긴 했었다. (모아를 여성 캐릭터로 설정한 이유는) 사소한 것이긴 한데, 여성 감독으로서 멋있는 여성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되게 사소한 이유다. 하하.”

-사소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모아 캐릭터가 너무 좋다. 심달기가 정말 잘해줬다. 모아가 하는 말들이 어떻게 보면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아도 나도 창작을 하는 입장이지 않나. 영화를 10년 넘게 한 거 같은데,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재능의 문제나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내가 자질이 있나 그런 것들에 대해. 그런 부분이 녹여진 캐릭터다.”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택한 것도 색다르고 신선했는데.
“‘노숙인이 자신의 삶을 회복해나간다’는 시놉시스만 봤을 때 자칫하면 옛날 영화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걱정이 됐다. 평소 앰비언트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애초에 음악 감독에게 앰비언트 음악, 일렉트로닉 계열의 음악으로 작업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음악 감독님이 원래 클래식 기반으로 작곡 공부를 해서, 일렉트로닉 음악을 처음 했다. 새로 다시 다 공부해서 작업해 주셨고, 너무 잘 완성해 주셨다. 처음엔 톤 앤 매너를 잡기가 어렵더라. 음악 감독님 말로는 50~60곡이 버려졌다고 하더라.(웃음) 함께 스터디 하듯 다시 만든 음악들을 수정해나가면서 완성했다. 우리 음악감독님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앞으로 어떤 이야기로 관객과 만나고 싶나.  
“어바웃필름(제작사)에서 글을 쓰고 있다. 비행기가 나오는 영화이고, 장르물은 아니다. 장르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물들 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도 그렇고 ‘더스트맨’도 그렇고 따뜻한 가치가 들어있다. 나 자신에게 힘내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작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는 분들도 영화를 통해 힘을 얻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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