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들의 설명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포장용기 혹은 설명서의 글씨도 작아지고 있다. 때문에 고령층이나 시각장애인 등 시력이 약한 이용자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현대사회에 들어선 이후 우리는 수많은 정보의 바닷속에 살고 있다. 이는 흔히 말하는 ‘IT(정보통신)’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 주위에서 흔히 사용되는 다양한 제품과 서적 등 모든 ‘아날로그 상품’들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실제로 음료수 한 캔을 산다 해도 성분부터 제조원에 이르는 설명들이 수백 글자로 적혀 있다. 하지만 빽빽한 글씨 때문에 상품의 설명서 가독성이 심하게 떨어져 원하는 정보를 전달받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용자들의 불만은 ‘현재진행형’이다

◇ “하나도 안보여요”… 너무 작은 글씨에 고령층 ‘고통’

특히 작은 글씨 때문에 가장 큰 불편을 겪고 있는 연령층은 노화로 인해 시력이 저하된 인구가 많은 ‘중장년층’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국내 대다수 고연령층 소비자들이 제품이나 상품 설명서의 글자가 너무 작은 것이 소비생활에 문제를 유발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사단법인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이 전국 65세 이상 노인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소비생활관련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제품이나 사용설명서 등의 글자가 너무 작아 읽기 어렵다’는 점이 23.3%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성소비자연합 관계자는 해당 조사 결과에 대해 “설명서의 글씨가 작아 불편하다는 것은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단계에 있는 사회에서 노인소비자에 대한 시장의 배려가 부족한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이 전국 65세 이상 노인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소비생활관련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제품이나 사용설명서 등의 글자가 너무 작아 읽기 어렵다’는 점이 23.3%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대다수의 제품설명서는 매우 작은 글씨때문에 고령층이 아닌 젊은 고객들도 읽기 불편한 수준이다./ 사진=박설민 기자

특히 작은 글씨 문제는 일반 식료품이나 화장품 등 제품의 경우엔 그나마 불편한 정도로 끝날 수 있으나, 의학품 등 취급 및 사용시 주의를 요하는 물품의 경우,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는 소비자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목적으로 의악품의 포장 기재사항 및 설명서의 글자 크기를 6포인트 이상으로 일반의약품은 7포인트., 전문의약품은 6포인트 이상 개제하도록 의약품 표시 등에 관한 규정에 명시를 하고 있다. 

하지만 2014년 정인숙 부산대 간호대 교수와 이은주 신라대학교 간호학과 강사가 저술한 ‘일반의약품 포장 기재사항의 글자 크기별 가독성’ 논문에 따르면 식약처가 제시간 6~7포인트의 글자 크기도 지나치게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400명의 설문자 중 366명을 대상으로 일반약 포장 기재사항의 글자 크기별 가독성을 분석한 결과 6, 8, 10포인트에서 선호도는 △10포인트 85.6% △8포인트 13.8%  △6포인트 0.6%로 나타나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연령대와 상관없이 큰 글씨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거리에서 8포인트의 글자 크기를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통상적 기준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현재의 6포인트 기준은 지나치게 작다고 여겨진다”며 “20세 이상 79세 이하의 일반 사용자에게 적합한 일반의약품 포장 기재사항의 글자 크기는 10포인트이므로 일반의 약품 포장 기재사항을 최소 10포인트의 글자 크기로 제작할 것을 권장한다”고 전했다.

복잡하고 작은 글씨로 이뤄진 설명서에 대한 해결책으로 AI, QR코드 등 디지털 기술이 꼽힌다. 다만 고령층 이용자들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어 이에 대한 해결책 역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Getty images

◇ AI·QR코드 등 디지털 기술, ‘작은 글씨 문제’ 해결할까

하지만 제품 생산 업체들 입장에서는 글씨 크기를 쉽게 줄이기 힘든 상황이다. 상품에 대한 정보를 허위로 기재하거나 고의로 줄일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상품 정보 표기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종이로 된 설명서 대신 제품 포장지 겉면에 QR코드를 표기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용자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은 후 원하는 글씨 크기로 설명서를 읽을 수 있어 불편함을 줄일 수 있다. 한국 갤럽 리포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성인 스마트폰 사용률 93%에 달하는 만큼 접근성도 매우 우수하다.

또한 QR코드 설명서가 환경적 측면에서도 우수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포장 박스에 모든 정보를 담을 수 없어 종이로 된 설명서를 동봉해야 하는 전자제품이나 의학품에서 발생하는 종이 폐기물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품 설명서는 아니지만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이비스 앰배서더 호텔은 지난 2019년부터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 대응책의 일환으로 종이로 된 호텔 가이드북 수를 대폭 줄이고 QR코드를 도입하고 있다.

이밖에도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상품 설명서를 읽어주는 서비스 등도 , 글자를 읽어내기 힘든 시각장애인과 고령자의 불편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품 설명서를 모두 QR코드, AI음성인식 등 디지털 기술로 대체하는 것은 아직은 먼 이야기라는 의견도 있다. 중장년층 세대에게는 작은 글씨로 겪는 불편함만큼 생소한 디지털 기술로 겪는 불편함도 만만찮다는 이야기다.

지난 3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서 발표한 ‘2020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68.6%다. 일반인 점수를 100%로 잡아 조사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부족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QR코드 등 스마트폰을 이용한 제품 설명서나 서비스는 많은 양의 정보를 편리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디지털 기술 취약 계층에게는 오히려 정보 격차를 부를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디지털 설명서의 상용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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