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일가 3세 구본준 고문이 계열분리를 앞두고 있다. /뉴시스
LG家 3세 구본준 고문이 계열분리를 앞두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에 나서는 구본준 LG그룹 고문의 ‘LX그룹’이 공식적인 출범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사명을 둘러싼 갈등이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LX’를 영문 사명으로 사용해왔던 한국국토정보공사의 반발에도 LX그룹의 출범을 강행하자 법적분쟁 등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구본준 고문의 새 출발이 시작부터 얼룩지게 됐다.

◇ 계열분리 임박한 구본준 고문

LG가(家) 3세인 구본준 고문은 2010년 LG전자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등 그룹 내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쳤으며, 형인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건강이 악화된 뒤에는 그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

이후 구본준 고문은 고 구본무 전 회장이 별세하고 4세 장남인 구광모 회장이 그룹 수장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LG그룹이 철저하게 지켜오고 있는 장자승계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게 LG그룹의 미래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 준 구본준 고문은 이제 새로운 출발선을 마주하고 있다. LG상사와 LG하우시스, 판토스 등 5개 계열사를 품에 안고 계열분리에 나서는 것이다. LG그룹의 전통상 구본준 고문의 계열분리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왔으며, 지난해 11월부터 본격적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계열분리 시점은 오는 5월 1일이다.

새 그룹의 사명은 LX그룹. LG그룹의 역사를 담고 있는 L에 혁신과 변화의 의미를 담은 X를 붙였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LX그룹은 공식 출범도 하기 전에 이름으로 거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이미 영문 사명으로 LX를 사용해왔던 한국국토정보공사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국토정보공사는 2012년부터 LX를 영문 사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해 10년간 332억원을 투입하는 등 LX 브랜딩 사업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국토정보공사는 LX그룹이 출범할 경우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공기관으로서의 신뢰성·공신력이 훼손될 수 있다며 거듭 반대 입장을 밝혔다. 사실, 이는 LX그룹의 이름이 유력 후보로 거론될 때부터 제기된 문제였다. 이에 대해 LX그룹 측은 법적 검토를 마쳤으며 국토정보공사와의 협의를 통해 해결할 것이란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LX그룹의 공식 출범이 보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양측은 원만한 협의는커녕 갈등만 깊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국토정보공사는 반대 입장을 밝혔음에도 LX그룹이 출범을 강행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19일 이사회 운영위원회를 통해 법적 대응 등 강경한 조치에 나서기로 결정한 데 이어 지난 6일엔 김정렬 사장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직접 경고장을 날렸다. 

김정렬 사장은 이날 “단순히 디자인만 가지고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표법상으로는 허용될 수 있어도 일반 상식에는 부합하지 않는 선택”이라며 “이제 새로 시작하는 이름을 구태여 공공기관이 10년이나 써온 LX로 써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LX글로벌 등은 국제사회에서 사업이 중첩될 가능성이 크고, 국토정보공사가 LX홀딩스의 자회사로 인식될 수 있다”며 실질적인 문제도 지적하는 한편, LX그룹이 출범을 강행할 경우 법적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아울러 김정렬 사장은 지난 12일 김용래 특허청장을 직접 만나 해당 사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LX그룹이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자, 국토정보공사는 결국 지난 1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LX그룹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 제1항의 5에 명시된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저질렀다는 게 신고의 내용이다. 나아가 국토정보공사는 LX그룹의 출범할 경우 즉각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추가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국토정보공사는 사기업 등이 정부·공공기관과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소위 ‘LX그룹 방지법’ 발의까지 적극 준비 중이다.

이에 LX그룹 측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사업을 방해할 소지가 없는데 공정위 신고가 법률적으로 성립되는지 의아하고, 양사 대표 간 대화가 바람직한데도 이런 방향으로 이슈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LX그룹 출범 움직임에 반발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LX그룹 출범 움직임에 반발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 대응 수위 높이는 국토정보공사

이처럼 사명 관련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서 구본준 고문의 새 출발은 시작부터 잡음에 휩싸이며 얼룩지게 된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논란이 새롭게 출범하는 LX그룹에 부정적인 효과를 남길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계열분리를 통해 새롭게 탄생하는 그룹의 비전이 주목받아야 할 시기에 부정적인 논란만 부각되고 있다”며 “LX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게 되더라도 기업 이미지 및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사명은 그룹 계열사들의 CI·BI 등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고, 한 번 정하면 바꾸기 쉽지 않다. 변경 시에는 비용 부담은 물론 각종 유무형의 피해가 상당하다. 무리하게 강행하다 사명을 쓰지 못하게 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이라며 “특히 사명은 그룹 수장의 의중이 반영되고 최종 결정권도 수장에게 있다는 점에서 책임론 또한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LX그룹의 사명 관련 논란이 확산하면서 앞서 벌어졌던 비슷한 사례 또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타이어그룹은 2019년 3세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에 발맞춰 사명 변경을 단행한 바 있다. 지주사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핵심 계열사 한국타이어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로 사명을 변경했다. 

하지만 기존에 존재하던 한국테크놀로지가 사명을 빼앗겼다며 반발했고, 이 같은 갈등은 법적분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한국테크놀로지는 법원의 잇단 결정에서 연거푸 승소했고, 한국타이어그룹은 결국 지난해 12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사명을 한국앤컴퍼니로 재차 변경하는 촌극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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