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이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 첨단 정보통신(IT)기술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의 ‘기술 전쟁’ 시대이기도 하다. 때문에 실력과 아이디어가 우수한 IT인재의 확보가 어느때보다 중요해졌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1,500년대 후반,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꺾고 세계 바다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영국 해적 두목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해군 함대 총독으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당시 신하들은 근본 없는 해적 따위를 감히 대영제국의 해군 총독에 앉힐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신하들의 우려와 달리 드레이크는 해적질 경험으로 얻은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스페인 무적함대를 완전히 박살냈고, 엘리자베스 1세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위대한 여왕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됐다. 이처럼 한 나라를 넘어 세계사를 바꾼 엘리자베스 1세의 인재 등용은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전 세계 국가·기업들의 리더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현재 문턱을 넘은 4차 산업혁명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영국과 스페인 등 세계 강국들이 총칼로 했던 전쟁은 이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 첨단 정보통신(IT)기술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의 ‘기술 전쟁’으로 바뀌었다. 

과학계 전문가들은 이런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엘리자베스 1세와 같은 과감한 인재 등용을 필수 항목으로 꼽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과감한 인재 등용은커녕 ‘IT인재력’이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학계와 산업계 전반에서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IT강국’이라는 세계적 위상에 걸맞지 않게 IT인재 부족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중국, 미국 등 기업의 높은 연봉을 보고 해외로 나가는 IT 인재수가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 “반도체·디스플레이부터 AI까지”… 해외로 떠나는 IT인재들

우리나라는 ‘IT강국’이라는 세계적 위상에 걸맞지 않게 IT인재 부족 현상은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고 있다. 해외로 유출되는 국내 우수 이공계 인재들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지난 2020년 발표한 ‘이공계 인력의 국내외 유출입 수지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로 유출된 국내 이공계 취업자는 2015년 2만3,879명에서 3만9,853명으로 2년 새 67%나 증가했다. 

반면 국내 IT기업 및 과학 분야에 이공계 외국인이 취업하는 비중은 2014년 4,944명에서 2018년 4,596명으로 감소했다. 결과적으로 국내에 IT업계와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우수 인력이 크게 감소한 셈이다. 

특히 업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강점을 보이는 IT분야인 배터리·반도체 등 분야의 인재들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수준이 심각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에사 국내 기업 및 기관보다 4~5배 이상 높은 연봉과 자녀 명문대 입학 보장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국내 우수 인력 스카웃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2019년 11월 발표한 ‘중국, 인재의 블랙홀-중국으로의 인재 유출 분석’ 보고서를 통해 “중국 정부는 2015년부터 산업고도화 추진 전략인 ‘중국 제조 2025’를 추진하면서 해외 우수 인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기업들도 파격적인 복지 혜택을 제시하며 한국 인재를 집중 유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IT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AI)’의 인재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과기정통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지난해 7월 발표한 ‘과학기술과 ICT 정책·기술 동향’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AI 인재 규모는 20만명으로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이중 미국, 중국, 유럽 등 상위 10개 국가에 60% 이상인 13만명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2,664명으로 글로벌 AI인재의 1.3%에 그쳤다.

석·박사 등 고급 AI 인재로 분류할 시 그 숫자는 더욱 크게 줄어드는데, 캐나다의 글로벌 AI제작회사 엘레먼트 AI에서 지난 2019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AI 고급 인재는 405명으로 글로벌 AI고급 인재 중 1.8%에 불과했다.

과기정통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문가들은 “국내 AI 중소・벤처기업은 AI 인재난을 가장 시급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는 기술력 한계를 불러오기 때문에 자금 보다 인재 부족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과학기술과 ICT 정책·기술 동향’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AI 인재 20만명 중 우리나라의 글로벌 AI 인재는  2,664명으로 전체 1.3%에 불과하다. 석·박사 등 고급 AI 인재의 경우도 405명으로 1위 미국의 3.5% 수준이다./그래픽=박설민 기자>

◇ “오면 연봉 5배 줄게”… 해외 기업 유혹에 핵심기술 유출도 ‘심각’

이처럼 국내의 IT인재가 부족한 이유는 업무에 대한 ‘보상 부족’이라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내 기업이나 국가 연구소 등에서 성과를 낸다 해도, 해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대우 때문에 고액 연봉을 원하는 인재들의 경우 해외 기업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IBK경제연구소도 2018년 발표한 ‘반도체 산업 호황의 그림자’ 보고서에서 “국내 반도체 제조장비 기업의 고용인원은 10~800명까지 다양하지만, 평균 인원은 약 100여명 수준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1/20에 불과하다”며 “중국이 우리나라에서 8년 정도의 경력이 있는 반도체 인재들을 5~8배 수준의 연봉을 제시하며 인력 유치에 나서 국내 인재 유출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설사 국내 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한다 하더라도 경력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지 않아 고용 불안을 느끼는 점도 IT인재 유출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특히 ‘기술 개발 다음날이면 원시 기술이 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빠르게 급변하는 IT분야의 경우 오랜 기간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술 분야를 대체할 신기술 분야가 나온다면 회사 내에서 찬밥 신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한때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도했던 LCD(액정 디스플레이) 분야가 대표적 예다. 최근 OLED(유기발광 디스플레이) 기술이 시장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디스플레이 제조 기업들이 LCD부서를 홀대한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이처럼 국내서 홀대받는 기술자와 인재들을 노리는 것이 중국 등 해외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고용에 불안감을 느끼는 현직 근무자들에게 해외 기업들의 고액 연봉 스카웃 제안이 오게 되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국내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현재 OLED분야를 연구하고 있는데 지금이야 디스플레이를 선도하는 기술로 OLED가 잘나가지만, 언젠가 LCD처럼 대체될 수도 있다”며 “회사에서 과거 회사를 이끌었던 LCD부서의 임원 분들처럼 언젠가 찬밥 신세를 맞이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 된다”고 우려했다.

해외 국가 및 기업들로 우리나라의 IT인재가 유출되는 것은 기술력 감소의 문제도 있지만, 핵심 기술 유출이라는 치명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지난해 4월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 간 유출된 국가 핵심기술은 21건에 달한다./ 사진=Getty images

문제는 이렇게 발생한 인재 유출은 국내 기술력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핵심 기술까지 해외로 유출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4월 산업연구원에서 발표된 ‘디스플레이산업의 노동시장 현황과 재도약을 위한 인력정책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 간 유출된 국가 핵심기술은 21건이다. 이중 국내 IT업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디스플레이가 6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중국으로 유출된 정보가 5건이었다. 최근 중국이 LCD부문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한국을 앞지르게 된 것이 ‘우연’이 결코 아닌 셈이다.

한 IT분야 연구원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LCD부문에서 중국에 역전 당하게 된 것은 기술자 홀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결과”라며 “지금이야 OLED, 반도체 등 기술을 기반으로 한국이 IT강국의 지휘를 유지하고 있으나, 이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면 해외로 유출되는 일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IT인재들을 해외에 뺏기지 않도록 이들의 안정적인 연구 환경과 보상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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