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방송 시간 결정권, 제품 판매·협찬사가 쥐고 있어… 연계편성 해결 불가
홈쇼핑 업계 “판매자는 우리 고객, 연계편성 못 하도록 할 수는 없어”
소비자 충동구매 근절 대안, 협찬 사실 의무고지… 관련 개정안 상임위 계류 중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 게티이미지뱅크
동일 시간대에 방송되는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TV홈쇼핑에 협찬 제품을 연계해 노출하는 연계편성 실태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건강기능식품과 같은 상품을 건강정보 예능·교양 프로그램과 TV홈쇼핑에 연계해 노출하는 ‘연계편성’ 실태가 최근까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연계편성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판단력을 흐려지도록 하고 최종적으로 충동구매를 부추기게 된다. 이러한 폐해가 나타나고 있음에도 TV홈쇼핑 업계에서는 연계편성에 대해 본인들이 제한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홈쇼핑 업계는 자사 홈페이지에 1주일간 편성표를 모두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편성표는 제품 판매자들이 시간대를 우선적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즉, 홈쇼핑 편성표를 제작할 때 홈쇼핑 회사 측에서 개입하는 부분은 전혀 없으며, 판매자들이 원하는 시간대에 진입할 수 있도록 열어두고 있다는 얘기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당연한 구조다.

방송통신위원회 측 관계자도 “편성의 자유를 법으로 제한할 수는 없다”며 “현행법으로는 ‘연계편성’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아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건강기능식품 등을 판매하는 업체가 홈쇼핑을 통해 제품을 판매할 때, 타 방송사의 건강정보 관련 예능·교양 프로그램에 자사 제품이 소개되는 시간대에 맞춰 홈쇼핑 송출 시간을 지정해 편성할 수 있다.

제품 판매업체 및 협찬주(광고주)가 홈쇼핑 시간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자사 제품이 협찬방송 되는 예능·교양 프로그램과 동시간대 송출을 요구하는 실정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송사·홈쇼핑 연계편성에는 비용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지난 2018년 10월,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전 바른미래당·비례대표)이 각 홈쇼핑 업체로부터 제공받은 ‘연계편성 홈쇼핑 품목 매출액 세부내역’에 따르면 주요 홈쇼핑사 6곳(롯데·현대·GS·NS홈쇼핑·홈앤·CJ오쇼핑)이 연계편성 된 제품을 판매하면서 납품업체로부터 떼는 평균 수수료율이 38∼54%에 달했다. 홈쇼핑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매출이 1,000만원 발생하면 이 중 380만~540만원 정도가 홈쇼핑사 측에 수수료로 지출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제품 판매사 측은 연계편성을 고집한다.

한 홈쇼핑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러한 연계편성에 대해 모니터링이 강화되고 있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제품 판매자들에게 안내를 해도 이를 고집한다”며 “이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율에도 불구하고 판매자가 연계편성을 한다는데, 회사 측에서 ‘그 시간대는 불가능합니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들은 최대한 겹치는 시간대에 연계편성을 하려고 하지만 타 업체에서 해당 시간을 먼저 선점하는 경우에는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의 협찬방송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에 홈쇼핑을 편성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송출 요일을 변경하면서까지 연계편성을 하려 한다”며 “우리 입장에서는 판매자는 고객인데, 고객(판매자)이 원하는 바를 최대한 맞춰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러한 연계편성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판단을 흐리게 해 충동구매로 이어지는 폐해로 나타날 수 있다. 건강정보 예능·교양 프로그램에서 협찬 제품을 방영할 때 ‘이 방송은 협찬을 통해 제작됐습니다’와 같은 문구를 표기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현행법상 지상파나 종편의 예능·교양 프로그램에서 협찬 제품을 방영할 때 협찬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프로그램에서는 의사 등 전문가를 섭외해 특정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에 대해 강조하면서도 협찬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고지하지 않고 있다.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의 멘트나 출연자들의 후기에 높은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선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되고 있는 동일 성분(효능)의 제품에 현혹되기가 쉽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부천시병)은 “상품을 판매하는 홈쇼핑 채널과 유사한 시간대의 종편 프로그램에 동일한 상품을 협찬해 소개하도록 하는 ‘연계편성’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시청자가 해당 상품의 효능 등을 실제보다 과장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러한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방송사업자가 협찬주로부터 방송프로그램의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경비·물품·용역·인력 또는 장소 등을 제공받는 경우 그 협찬주의 명칭 또는 상호와 함께 협찬 제품임을 고지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올해 2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된 뒤 여전히 답보 상태다. 국회의 조속한 법안 처리만이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지난해 9월,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홈쇼핑 연계편성은 소비자들에게 광고보다 더한 신뢰를 주는 프로그램에서 광고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허위과장 광고보다 더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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