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최강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 메모리 분야 쏠림으로 인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가 기술력과 투자에서 글로벌 경쟁사에 크게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뉴시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위기가 다가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산업계 전반에서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세계 최강의 반도체 강국’이라고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현재 반도체 산업분야에서 확실히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철옹성이라고만 생각했던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위기론’이 드리워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TSMC가 올해 1분기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6%이다. 반면 반면 삼성전자의 경우 점유율이 18% 그쳤다./ 사진=뉴시스

◇ ‘반도체 위기론’ 불지피는 ‘메모리 쏠림’… 경쟁국에 비(非)메모리 부문 크게 밀려

현재 불거지고 있는 한국 반도체 위기론의 핵심은 우리나라가 절대적으로 강점을 보이는 반도체 분야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로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를 필두로 한 비(非)메모리 부문의 경우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게 크게 뒤지는 실정이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가 3월 발간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현황 및 강화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0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53.2%에 달하는 점유율을 차지했으나, 시스템 반도체 부문 점유율은 3%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반도체 전제 수출액(992억달러)에서도 메모리 반도체는 64.5%(639억달러)를 차지했으나, 시스템 반도체는 30.5%(303억달러)에 그쳤다.

우리나라 최대 반도체 제조사인 삼성전자 역시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는 대만의 TSMC에게 크게 뒤지는 실정이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TSMC가 올해 1분기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6%를 기록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경우 점유율이 18% 그쳤다. 지난 2019년 기준 TSMC는 8% 가까이 점유율이 증가한 반면, 삼성전자는 19.1%에서 약 1.1% 감소한 것이라 점유율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한 반도체 공정 분야 전문가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시스템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라 꼽히는 5G,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에 필수적인 요소”라며 “시스템 반도체의 점유율이 점차 줄어든다는 것은 곧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경쟁력도 밀릴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분야별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 경쟁력 수준 (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 비메모리 분야, 투자·기술 전부 ‘총체적 난국’

그렇다면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는 절대적으로 강력한 우리나라가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 글로벌 경쟁사들에게 크게 뒤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타 국가에 비해 크게 모자란 투자가 비메모리 분야가 뒤처지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7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참여 전문가의 85%는 ‘중국 정부 차원의 반도체 산업 집중 지원’ ‘TSMC 등 대만 파운드리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국내 반도체 업계의 위협 요인이 될 것으로 꼽았다. 

실제로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의 비메모리 부문 투자는 해외 기업에 비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019년부터 10년간 133조원을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 투입하기로 했으나, TSMC는 올해부터 단 4년간 144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비메모리 분야 기술 경쟁력 역시 타 국가에 비해 상당히 낮다고 평가됐다. 전경련에서 주요 반도체 기술 및 밸류체인 분야별로 최고의 선도 국가(기업)의 수준을 100으로 볼 때 우리나라 반도체의 기술 경쟁력을 비교한 설문을 조사한 결과, △인공지능 반도체 소프트웨어(56)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56) △차량용 반도체 설계(59) 부문 등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로 꼽히는 분야가 가장 낮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장비(60) △부품(63) △소재(65) 등 반도체 생산성과 품질을 좌우하는 기술 수준도 낮게 평가됐다.

박재근 한국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술학회장은 “세계 각국의 자국 반도체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부 주도의 지원에 대응해 우리나라 정부도 ‘반도체 산업 발전법’을 발의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 국내 반도체 소자·설계·소재·부품·장비 등 전 분야에 걸쳐 글로벌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증의 백신 확보 부족으로 국내 연구진과 학자들이 해외 전문가들과 기술 교류를 할 수 없는 것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 발전에 큰 위기가 될 수 있는 요인이다. 사진은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분야 전문가에게 전달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되는 오프라인 글로벌 광학 컨퍼런스 초청 이메일. 해당 전문가는 백신 접종이 되지 않아 해외로 출국하기 어려움을 겪어 해당 컨퍼런스 연사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보

◇ “기술 교류도 필수적인데”… 백신 부족에 학자·연구원들 ‘발 동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증의 백신 확보가 부족한 점도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우리나라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술 분야를 책임지는 연구원과 학자들의 연구 및 기술 교류도 굉장히 힘들게 하고 있다.

현재 코로나19 관련 백신 접종이 다수 이뤄지고 있는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선 각 국의 학자들과 기술자들이 모여 반도체 공정 및 연구와 관련된 연구 성과를 주고 받는 ‘오프라인’ 학회를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백신 확보에 더딘 속도를 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연구원들과 학자들은 참석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분야 전문가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플라즈마 관련 학회에서 연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백신을 접종받지 못해 갈 수가 없다”며 “설사 해외로 나간다 하더라도 국내외에서 각각 15일의 격리기간을 보낼 시간이 없어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나 미국, 네덜란드 등 백신 접종 우수 국가들에서 보내는 학회나 컨퍼런스 메일을 보면 ‘글로벌 예방 접종의 진행과 함께, 학회를 재개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해 부럽다”며 “우리나라는 백신 접종이 더뎌지고 있어 많은 국내 학자와 연구원들이 해외 전문가들과 기술 교류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메모리 기술 격차를 벌리고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경쟁 기업을 따라잡는데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데,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리스크까지 직면하게 됐다”며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의지를 표명해 다행이지만,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을 강력하게 마련하고 빠르게 실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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