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해, 꿀벌! 게거미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 게티이미지뱅크
조심해, 꿀벌! 게거미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 게티이미지뱅크

게거미는 거미줄을 치지 않는 거미입니다. 나뭇가지나 풀숲에 그물 같은 거미줄을 쳐놓고 숨어 있다가 나비나 잠자리 같은 곤충이 걸리면 슬그머니 나타나서 잡힌 것들을 돌돌 말아 갈무리해두고 배고플 때 찾아 먹는, 우리가 흔히 아는 거미들과는 달리 게처럼 옆으로 걷는 게거미는 꽃 속에 숨어 있다가 꽃을 찾아온 꿀벌을 잡아먹습니다. 나는 게거미의 존재를 미국 소설가 노먼 메일러(1923~2007)의 소설 ‘숲 속의 성(뿔, 홍성영 역)’을 읽다가 알게 됐는데, 게거미가 꿀벌을 잡아먹는 장면 묘사가 생생하면서 문학적으로도 아름답다는 생각에 곧바로 메모를 해뒀습니다.

“꿀벌에게는 악마 같은 천적도 있는데 바로 옆으로 기어 다니는 게거미입니다. 게거미는 벌이 앉을 만한 꽃을 발견하자마자 향기 나는 꽃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몸을 숨깁니다. 게거미는 그 안에서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낍니다. 게거미는 곧 화관을 뒤흔들어 그 꽃의 향기가 진동하게 만드는데 그렇게 하면 꽃잎에서 나는 향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서 나는 끔찍한 냄새를 숨길 수 있지요. 게거미는 가만히 기다립니다. 단지 여왕벌만이 그 신비로운 여성의 능력을 갖고 있는 반면 일벌들은 짧은 기간 동안 열심히 일만 하다 죽습니다.

꿀벌에게는 독특한 꽃향기가 풍겨옵니다. 일벌은 꿀과 꽃가루를 모으겠다는 생각만으로 꽃 안으로 들어갔다가 게거미에게 바로 잡아먹힙니다. 아주 잔인하게! 그리고 너무나 슬프게! 그 불쌍한 일벌은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거미가 쏜 침에 의해 마비된 것이죠. 그렇게 일벌은 감각을 잃은 채 자신의 목숨을 구하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을 것이고 거미는 벌의 육즙을 무자비하게 빨아먹을 겁니다. 바스락거리는 몸통만 남게 되었을 때 거미는 꽃에서 묻은 가루를 몸에서 털어내고 오랫동안 잠을 잘 겁니다. 화관 속에서 포식자의 느긋한 만족감을 느끼며 오랫동안 만족감을 느끼며 오랫동안 잠을 자는 거죠. 편안하고 기분 좋게 자는 거지요.”

나치 독일의 압제자이자 유대인 학살자인 아돌프 히틀러의 탄생과 성장기를 그린 메일러의 이 소설에서 게거미가 꿀벌을 잡아먹는 장면은 관직에서 은퇴해 꿀벌 키우기를 시작한 아버지를 어린 히틀러가 돕는 대목에서 나옵니다. 게거미에게 속수무책으로 죽임을 당하는 꿀벌의 모습을 메일러가 이처럼 생생히 써내려 간 것은 미구에 닥칠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암시하기 위해서겠지만 유대인인 작가는 소설에서 그런 말을 직접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꿀벌보다 훨씬 큰 말벌이 꿀벌 둥지를 습격, 꿀벌들을 마취시켜 체액을 다 빨아먹은 후, 아직 살아 있는 것들을 새끼들에게 데려가 뜯어먹도록 하는 장면을 또 보여줍니다.

“찢겨진 벌이 장수말벌이 자라는데 영양분을 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어떻게 꿀벌들은 말벌 애벌레들의 영양분으로 조각조각 날 만큼 오랫동안 살아남는 걸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이른바 자연의 위대한 법칙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너무나 잔혹한 자연의 법칙입니다. 장수말벌의 침 안에 든 독성이 마비된 꿀벌의 생명을 오래 지속되도록 해주는 거죠. 그 독성 때문에 꿀벌은 장수말벌의 애벌레가 벌을 사냥하는 늑대 같은 존재로 성장하기 까지 며칠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겁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숲속의 성’에서 이 구절을 접한 순간 내 목 뒤에서 게거미나 말벌이 뾰족한 침으로 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를 마취 상태에 빠트린 게거미나 말벌이 내 목에 빨대를 깊이 꽂고 피를 빨아들이는 환상도 그려졌습니다. 이 환상과 착각은 작년 12월 당시 국회법사위원장 윤호중(현 민주당 원내대표)과 국민의힘 의원 윤희숙이 주고받은 “누가 꿀을 빠는가?”에 대한 언쟁과 겹쳐졌습니다.

그때 윤호중은 현 정권과 민주당의 일방통행을 독재라고 비난하는 국민의힘을 “평생 독재의 꿀을 빨아온 세력”이라고 했고, 국민의힘 의원 윤희숙은 “대부분 80년대 학번인 지금 정치권력의 중심인물들이 운동 경력을 밑천 삼아 정말 알뜰하게 꿀을 빨고 있는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운동권 출신인 윤호중을 쏘아붙였지요.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윤희숙의 호된 공격을 받은 후 윤호중은 입을 다물었습니다만, 윤호중이 “꿀을 빤다”는 말을 한 이후 내 목 뒤에 빨대가 꼽혀 있다는 기분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빤다’는 어휘도 천박하게만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빨고 있는 건 꿀이 아니라 피, 메일러가 말한 꿀벌의 육즙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꿀벌이 아니라 꿀벌을 가짜 향기로 유인해 잡아먹는 게거미, 독침으로 전신이 마비된 꿀벌을 제 둥지로 끌고 가 새끼들의 먹이로 던져주는 말벌 떼라고 생각했습니다. 꿀벌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과 가족의 먹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겠지요. 그들 목에 꽂힌 독침과 빨대를 어떻게 뽑아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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