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성찰배경: 음주운전 기준을 더욱 강화한 ‘개정 도로교통법’이 2019년 6월 25일부터 시행되면서, 도로교통공단의 음주운전 교통사고에 관한 최근 통계자료(2019년)에 따르면 15,708건의 사고 가운데 부상자가 25,961명이고 사망자가 295명으로 2018년에 비해 감소 추세로 돌아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비단 운전의 경우뿐만이 아니라 최근에 일어난 20대 만취 승객의 폭행으로 인한 60대 택시 기사 뇌수술 기사를 포함해 음주 후 폭행, 폭언 등을 일삼는 술버러지[주충酒蟲]들의 작태가 언론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필자의 절주(節酒) 계기와 술버러지 수준에서 단주(斷酒)에 성공하며 가족들의 성원 속에 향상의 길을 걷고 있는 두 분 사례 및 자기성찰을 위한 술 관련 멋진 일화 등을 소개하며 바람직한 음주 문화에 대해 두루 성찰하고자 합니다.

◇ 딱 한 잔의 신참 환영식

필자의 경우 대학교 1학년 시절 오후 늦게 실험을 마치면 같은 실험조 친구들과 순대집에서 소주를 마시곤 했습니다. 이 무렵 정신을 잃지 않고 무사히 귀가 가능한 필자의 최대 주량은 소주 2병 반 정도였습니다. 그 후 대개 술자리에서 1병 정도는 마셨었는데, 대학원 1학년이 되자 1병을 마신 후 다음날 기상했을 때 팔이 저리는 등 후유증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날 이후 대개 반병 정도를 넘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편 2학년 때 종달 선사께서 주관하던 선도회에 입문하고 1년이 지날 무렵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세검정에서 열리던 참선 모임이 끝나고 귀가하려는데 세 분 고참 어르신 길벗들께서 신참 환영식을 하시겠다며 바쁘지 않으면 우리를 따라오라고 하셔서 뒤따라가니 가까운 버스 정류장 근처 술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의 음주 스타일은 두부김치 1접시에 막걸리 딱 한 잔씩 시켜놓고 약 2시간 정도 선 수행에 관해 자신들의 체험담을 포함해 정사(正史)뿐만이 아니라 책에서 접하기 힘든 야사(野史)들까지도 주고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매주 이 분들과 뒤풀이를 하다 보니 필자는 점차 선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게 되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좌선 수행을 철저히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라, 술을 딱 1잔씩만 마시고도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담소할 수 있다는 멋진 광경을 목격하고는, 이날 이후 필자는 점차 술자리에서 주량을 조금씩 줄여가다가 곧 거의 1잔만 마시는 음주 습관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수십 년 전 사업하던 친구를 만나 거절하기 힘든 상황에서 난생처음 얼떨결에 ‘폭탄주’를 한 잔 받아 마시고 무사히 귀가는 했으나 3일간 자리에 눕는 곤욕을 치르고는, 그후 그 어떤 자리에서도 거의 소주 한두 잔 마시는 정도로 절주(節酒)를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 정안 거사의 단주 사례

필자가 ‘음주(飮酒)의 멋진 쓰임’을 <시사위크>에 게재한 직후 참선 모임에서 음주 경험담을 곁들이며 이를 소개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있던 정안(正晏) 손병욱 거사(경상대 명예교수)께서 이 글 가운데 특히 ‘술이 입으로 들어가면 혀가 나온다’는 뜻의 ‘주입설출(酒入舌出)’이란 대목에서, 술만 마시면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해 아프게 와닿았다고 소감을 피력하셨습니다. 이때 필자가 지금 말씀하신 소감을 글로 정리할 것을 권해드렸는데, 지난 2019년 12월 19일 회갑 이후 6년째 실천해 오고 있는 단주(斷酒)에 관한 성찰글, ‘불음주계(不飮酒戒)를 수지(受持)하기까지’를 다음과 같이 보내주셨습니다.

“앞으로 21일 동안만 우선 금주하자. 그래도 꼭 마시고 싶으면 마시되, 일단 3주 동안만큼은 철저하게 금주해 보자! 이 결심으로 필자의 불음주계 수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지금껏 6년 넘게 지켜오고 있다. 그동안 계속 술자리 모임에 참석했지만 적당하게 핑계를 대면서 자의로는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가족들도 이제 필자의 불음주계를 확실하게 믿는다. 언제나 맑은 정신을 유지하니까, 이제 대상 경계에 걸리더라도 빨리 알아차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허송세월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울러 스스로를 신뢰하는 자신감(自信感)이 생겼다. 남 앞에 나서는 경우에도 떳떳하고 당당해졌다.

이제 남들이 필자한테 술을 권하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금생에 내가 받은 주량은 이미 다 채웠고, 따라서 더이상 마시면 그 업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다음 생에 새로 주량을 배당받아서 그때 마시겠다’고... 그러면 대개 웃고는 더이상 권하지 않는다.

필자가 스스로 평생토록 불음주계를 지킬 수 있겠다고 자신하는 것은 혹시라도 실수로 술을 입에 넣었을 경우 깜짝 놀라서 뱉어낸다는 사실이다. 마치 삼키면 죽기라도 하는 독약을 입에 넣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어휴! 큰일 날 뻔했다.’고 안도하는 자신을 보고 불음주계의 계체가 확실하게 형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도 실감나고, 모든 습관은 삼칠일 만에 형성된다는 말도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사실임이 분명하였다.”

필자의 견해로는 정안 거사께서 동양사상에 관해 학문적으로 연구를 해오시면서도 동시에 내면에 대한 성찰도 나름 치열하게 이어가셨기 때문에 술 한 방울조차 독액으로 여기며 단주에 성공하셨다고 여겨집니다. 참고로 정년 퇴직후 그는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온몸으로 참나를 철저히 체득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매우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인 간화선 수행의 길을 택하신 것 같습니다.

◇ 정안 사례가 희침의 단주로 이어지다

희침(希針) 거사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했으나, 여리고 예민한 성격,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욕심과 현실에서 괴리감 등으로 머릿속은 늘 잡스러운 생각으로 가득 차, 술을 자주 마셨고 마실수록 통제 불능의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고 합니다. 그러다 11년 전부터 참선 수행을 이어오고 있기는 하나 음주 습관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았음을 그가 간화선 입문과정을 마치고 2017년 12월 27일에 쓴 성찰글, ‘나에겐 이 길 이외는 다른 선택이 없다’의 핵심 요지를 통해 잘 엿볼 수 있습니다.

“어제도 한 잔 마시고 늦게 집에 돌아온 나는 아침에 변화된 나의 모습을 딸에게 확인하고 싶어 ‘요즘 나 어때? 좀 나아진 것 같지 않아?’하고 슬쩍 물어보았는데, ‘응. 나이가 들어서 힘이 없어 그런지 그냥 주무시던데요. 근데 여전히 한 성질 하시고 잘 삐지는 것을 보니 아직 초딩이냐 초딩?’이라는 날이 선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한 잔 술이 두 잔 되고 절제하지 못하는 좋지 않은 나의 술버릇은 정도를 벗어나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고 심약한 성격과 어울려 가족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더이상은 안 되겠다며 절실히 고민하다가 우연히 108배 절 수행이 좋다는 것을 듣고 절 수행을 하던 중에 우연히 <숫타니파타>라는 경전에서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오. 태어나면서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오.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오’라는 구절을 보고 나의 못나고 추한 이런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나의 앞날은 참으로 암담해질 것이 눈에 선해 보였습니다.

국선도도 해보았고 절도 해보았지만 나는 마음을 수행하여 우선 머릿속에 난무하는 잡념을 제거하면 나의 습관을 보다 빨리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이 어느 날 불현듯 떠올라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선도회(禪道會)를 찾게 되었습니다. 올해로 선도회 입문하지 어느덧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술 취하면 개망나니처럼 행동하던 내가 그나마 초딩의 행동을 보이기까지 나는 아침, 저녁, 하계, 동계, 철야, 주말 수련에 가능한 참석했고 가부좌(跏趺坐)를 튼 다리를 마지막까지 풀지 않으려고 지금도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7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실(失)도 없고 득(得)도 없다는 좌선에서 나는 조금씩 변화하는 나 자신을 느꼈습니다. 회사에서 업무를 볼 때 집중력이 높아져 내 책상 앞에 와서 인기척을 해야 바라볼 때도 있었고 머릿속의 잡념이 많이 사라져 이제 너무 텅 비어 바보가 된 것 아니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민감하여 불을 켜 놓거나 작은 소리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던 내가 이젠 아랫배로 몇 차례 깊은 호흡을 하고 자는 편입니다. 그러자 이제는 가족들이 심했던 술주정도 사라졌고 그냥 잘 잔다고 말합니다. 또한 화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지고 자비심은 억지로라도 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선 수행을 이어오며 변하기는 했으나, 술만 마시면 비록 강도는 약해졌지만 예전 버릇이 나왔던 그가, 정안 거사의 단주 일화를 접하고 3일 후인 2019년 12월 22일부터 지금까지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최근 길벗들 앞에서 고백하였습니다. 참고로 만공월면(滿空月面, 1871-1946) 선사께서 “삼도(三道)를 갖추면, 즉 ‘스승[道師]과 도량[道場]과 길벗[道伴]’만 있으면 마음공부는 저절로 지어진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참선수행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다 정안 길벗과의 인연이 더해지면서 희침 거사께서 즉시 단주에 성공했다고 사료됩니다.

◇ 술지게미에 취한 놈

오늘날 선종(禪宗) 가운데 가장 번창한 임제종(臨濟宗)을 창종한 임제의현(臨濟義玄, -867) 선사의 스승인 황벽희운(黃檗希運, ?-850) 선사께서 제자들을 진짜 술도 아닌 술지게미나 먹고 술에 취한 척하는 놈들이라고 일갈하며, 허송세월하면서 떠돌아다니지 말고 제대로 수행할 것을 다그치면서, 오늘날까지도 우리 모두를 일깨우고 있는 멋진 일화가 <벽암록(碧巖錄)> 제11칙에 담겨있어 소개를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에 멋진 일화가 있다. 황벽 선사께서 대중에게 “그대들은 모두 ‘술지게미나 먹고 술에 취한 척하는 놈들[당주조한(噇酒糟漢)]’이다. 이와같이 행각하며 천하를 다닌다면 어느 곳에서 오늘의 나처럼 불법을 온몸으로 체득할 날이 오겠는가? 그대들은 당(唐) 나라에 올곧은 선사(禪師)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라고 설하셨다. 그때 한 승려가 앞으로 나와 “그러면 오늘날 당나라 곳곳에서 선원을 개설하고 대중을 이끌고 있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황벽 선사께서 “나는 선법(禪法)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고, 다만 바른 스승이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황벽 선사께서 ‘술지게미에 취한 놈’이라고 다그치며 제자 한 사람이라도 더 취생몽사(醉生夢死)에서 벗어나 ‘참나’를 온몸으로 체득한 후 함께 더불어 멋진 향상의 길을 걸어가게 하려고 애쓰셨는데, 만일 당시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올곧은 선사가 없다.’는 일갈(一喝)에 어떻게 응대하셨겠습니까?

끝으로 최근 한 의대생이 한강 변에서 야심한 밤까지 친구와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생을 마감한 사건에 적지 않은 분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바람직한 음주 습관을 지닐 수 있도록 우리 기성세대들 모두 날마다 일상 속에서 ‘참나’ 체득을 위해 치열하게 자기성찰의 삶을 이어가면서, 절주나 단주를 이해 차원이 아닌 온몸으로 솔선수범하며 젊은이들의 본보기가 되기를 간절히 염원 드려 봅니다. 덧붙여 우리의 건강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는 절주나 단주를 통해 절약된 돈은 먼 훗날이 아닌 지금 당장, 통찰과 나눔이 둘이 아닌 ‘통보불이洞布不二’의 삶을 이어가는데 든든한 밑천이 될 수 있겠지요.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전공분야: 입자이론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강대 물리학과장, 교무처장, 자연과학부 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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