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오롱그룹 오너일가 4세 이규호 부사장이 합류한 코오롱글로벌이 1분기부터 실적 호조를 보였다.
지난해 코오롱그룹 오너일가 4세 이규호 부사장이 합류한 코오롱글로벌이 1분기부터 실적 호조를 보였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능력이 있다고 판단돼야 가능할 것.”

2018년 11월, “청년으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걷겠다”며 깜짝 은퇴를 선언한 이웅열 명예회장은 간담회에서 아들에 대한 승계 관련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당시 그는 “아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아들에게 하루를 일주일처럼 살라고 말했다. 무엇인가를 맡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승계는 없다는 선언이었다.

◇ 코오롱그룹 유력 후계자 이규호, ‘명분’이 필요한 이유

이후 3년의 세월이 흐른 가운데, 코오롱그룹의 오너일가 내 승계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집단 동일인에서도 코오롱그룹은 여전히 이웅열 명예회장이 이름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웅열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선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룹 지주사 코오롱의 지분 49.74%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그의 장남인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부사장은 코오롱 지분이 전무하다.

후계자로 지목되는 이규호 부사장은 1984년생으로 아직 30대다. 2012년 코오롱에 입사해 2018년 전무로 승진하는 등 초고속 승진 행보를 이어오다 지난해 말 부사장 직함까지 달았다. 그런 그가 진정한 후계자로서 본격적인 승계과정에 돌입하기 위해선 중요한 과제를 풀어야 한다. 바로 이웅열 회장이 언급한 ‘능력 입증’이다.

하지만 이규호 부사장이 그동안 걸어온 행보는 능력 입증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2019년 코오롱인더스트리로 이동해 FnC부문을 이끌었으나 직전연도 대비 매출이 줄고 영업이익은 절반 이상 감소하는 등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또한 이규호 부사장이 2018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오다 지난해 7월 물러난 계열사 리베토도 적자가 지속된 바 있다. 리베토는 공유주택 사업을 하는 계열사다.

이처럼 승계를 위한 명분이 필요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던 이규호 부사장은 지난해 연말 인사를 통해 승진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수입차 사업을 하는 코오롱글로벌 자동차부문을 맡은 것이다. 

이를 두고 손쉽고 안정적으로 성과를 쌓기 위한 이동이란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1987년부터 수입차 사업을 시작한 코오롱그룹의 기반이 이미 워낙 탄탄한데다, 수입차 시장 전반의 성장세도 뚜렷하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오롱글로벌은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위상이 굳건한 BMW·미니의 가장 오래된 파트너로 BMW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가장 크다. 또한 아우디와 볼보의 파트너였던 코오롱오토케어서비스를 지난해 인수했다. 아우디와 볼보 역시 최근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판매실적이 돋보이는 브랜드로 꼽힌다. 

특히 BMW와 아우디가 한동안 겪었던 어려움에서 벗어나 재기에 나서고, 볼보의 성장세가 더욱 뚜렷해진 시점이라는 점은 이규호 부사장의 이동을 둘러싼 뒷말을 부추겼다.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진 것이다.

◇ 실적 날개 단 코오롱글로벌… 관건은 ‘1위 탈환’

이러한 배경을 지닌 이규호 부사장의 자리 이동은 예상대로 출발부터 성공적인 모습이다. 코오롱글로벌 자동차부문은 올해 1분기 3,908억원의 매출액과 12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뚜렷한 실적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해 1분기 대비 각각 46.7%, 169.3% 증가한 수치다. 

코오롱글로벌 자동차부문의 실적 호조는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3.5%, 25% 증가한 BMW와 미니의 1분기 판매실적과 코오롱오토케어서비스 인수 효과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아우디와 볼보 역시 올해 1분기 판매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02.2%, 14.5% 증가했다. 

이로써 승계 명분이 필요한 이규호 부사장의 발걸음엔 마침내 파란불이 켜지게 됐다. 쉬운 길을 택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하지만, 그동안의 아쉬운 행보를 지우고 승계의 명분으로 제시할 성과를 확보할 가능성 높아.

다만, 이규호 부사장에겐 뜻 깊은 성과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도 주어지고 있다. 단순한 사업 순항을 넘어 수입차시장에서 코오롱그룹의 옛 위상과 자존심을 되찾는 것이다. 

코오롱그룹은 2014년까지 국내 수입차시장 1위 자리를 지켜왔으나 2015년 효성그룹에게 추월을 허용한 뒤 줄곧 2위에 머물러왔다. 이에 코오롱그룹은 수입차시장 1위 탈환을 기치로 내걸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수입차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사업을 코오롱글로벌로 일원화시킨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다.

만약 이규호 부사장이 코오롱그룹의 수입차시장 1위 탈환을 이끈다면, 여러 뒷말을 불식시키며 중요한 성과를 남기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효성그룹의 아성 또한 만만치 않다. 효성그룹은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핵심 파트너이자 토요타·렉서스·재규어·랜드로버·페라리·마세라티 등의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자랑한다. 

결국 이규호 부사장이 승계를 향한 ‘진짜 명분’을 쌓기 위해선 효성그룹이란 큰 산을 넘느냐가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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