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7 05:55
[정숭호의 늦은 수다] “공무원 아니고 곤무원이라니까!”
[정숭호의 늦은 수다] “공무원 아니고 곤무원이라니까!”
  • 정숭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2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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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세종청사를 중심으로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 뉴시스
세종시 아파트. 정부는 공무원 특공을 줄인다는 방침이나, 그걸로 무주택 서민들의 박탈감과 배신감이 달래질 것 같지는 않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 뉴시스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관평원)이 세종시에 유령청사를 짓고, 이를 빌미로 관평원 직원들이 세종시 아파트를 특공(공무원 대상 특별공급)으로 분양받은 사실이 탄로나 대한민국 일반 시민들을 경악시킨 이후 공무원들의 아리송한 세종시 아파트 특공분양이 잇달아 터져 나온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분양으로 ‘불로소득 중의 불로소득’을 챙긴 것 같은 공무원들이 대한민국 무주택 서민들의 분노를 더 불타오르게 하는 건 아닌지.

24일에는 올 2월 세종시에서 A, B 두 블록으로 분양된 산울동 소재 아파트가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껴얹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부동산원이 이날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2020∼2021년 세종시 특공 분양 자료’에 따르면 이 아파트 A블록 일반 공급 경쟁률은 221.4 대 1, B블록 일반 경쟁률은 134.9 대 1로 올해 1분기 전국에서 일반 분양된 아파트 중 두 번째로 경쟁률이 높았다. 특히 90.00㎡(약 27평) 아파트는 13가구 모집에 2만7298명이 몰려 경쟁률이 무려 2099.9 대 1이었다.

특공 경쟁률은 A블록이 5.8 대 1, B블록은 4.6 대 1에 지나지 않았다. 신청만 하면 당첨인, 경쟁률이 1 대 1인 아파트도 23가구나 되었다. 일반인은 운이 ‘억수로’ 좋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이 아파트는 세종시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에게는 약간만 힘줘 밀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거의 열려 있던 아파트였던 것이다. 일반 분양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치밀어 오른 화를 어떻게 참았을까, “세금 내서 먹여 살렸더니 집도 뺏기네 ….” 이런 생각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정말 대한민국은 공무원 천국이네”라는 말은 되뇌었을 것 같다.

정말 한국은 공무원 천국이다. 민간기업보다 처우가 못하다는 건 정말 ‘쌍팔년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다. 예전처럼 처우가 열악하다면 청년들이 머리를 싸매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는가? 공무원이야말로 한국의 일등 시민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더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한 번 짚어보자.

공무원의 보수와 근무환경이 민간기업 평균을 넘어선 지는 벌써 오래다. 또 불경기와 코로나19로 수많은 민간기업이 존망의 기로에 있는 것과는 달리 공무원 사회는 망할 걱정이 없다. 신분이 보장되니 능력 부족하고 일처리가 미흡해도 나가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기껏해야 한직으로 밀려나는 것일 텐데, 일 많아 심신 고달픈 것보다는 한가한 자리에서 시간을 때우는 게 몸과 마음에 더 좋다며 오히려 환영받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이 좋은 공무원을 그만둬도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장·차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1급으로 퇴직해도 웬만하면 공공기관의 ‘장(長)’ 자리 하나는 맡게 된다. 공사, 공단, 위원회, 은행, 조합, 연구원, 감독원, 협회, 연맹, 연합회, 조합중앙회 등등의 장 자리는 거의가 전직 1급 공무원을 위한 자리다. 수억 연봉에 판공비 업무추진비 정보비 따로 나오고 고급승용차에 기사와 비서까지 딸리는 이런 자리에 경쟁자가 있다면 정치권에서 내려오는 낙하산이 있을 뿐.

1급 승진에서 탈락, 2~3급에서 퇴직하면 ‘장’자리는 아니어도 ‘부(副)장’자리는 돌아온다. 부회장, 부사장, 부이사장, 부위원장, 부원장 …, 운 좋으면 ‘장’보다 힘이 세다는 ‘감사’도 할 수 있다. 거기도 온갖 명목 수당에 법인카드까지 나오는데 싫을 게 없다.

행시에 실패하고 7급이나 9급으로 시작하면 4급까지를 목표로 삼아도 된다. 실력 쌓고 운 좋으면 더 올라갈 수도 있겠으나, 형편이 안 풀려 4급으로 퇴직해도 전무, 상무, 이사 자리 하나는 맡을 수 있다. 장이나 부장들만큼은 아니지만 수당이나 ‘법카’, ‘업추비’, 판공비가 만만치 않다. 현직 때 못 배웠거나 눈치 보여 못다 친 골프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운 좋으면 연임하여 여태 누린 것 한 번 더 누리고, ‘대과 없이’ 임기 마치면 목돈으로 받은 퇴직금에 연금까지 두둑하니 코로나 풀리면 한 번은 늙은 아내와, 한 번은 친구들과 최소한 1년에 두 번씩은 골프여행을 겸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아, 공무원! 대한민국 공무원은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아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살기에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이 정부에서 10만 명이 늘었다는 공무원. 그들을 먹여 살리고, 그들에게 집을 ‘특공’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60이 넘도록 무주택자로 있다가 마침내 청약 가산점수 채워 생애 처음으로 아파트를 분양받고 너무 좋아 싱글벙글하던 친구 동생 얼굴이 떠오른다. 집값을 내려주겠다는 이 정부의 약속만 믿고 있다가 전세에서 월세로, 서울 변두리에서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는 젊은 가장의 한숨소리도 들린다.

‘公務員’을 공무원이 아니라 ‘곤무원’이라고만 읽는 친구도 생각난다. 그는 공무원이 국민을 괴롭히고, 곤란하게 한다며 ‘困무원’이라고 읽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