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접종률 OECD 회원국 최하위… 세계 평균에도 못 미쳐
백신 보유하고도 복잡한 행정 절차와 시스템 구축 실패로 더딘 접종
“대만 AZ 백신 제공은 보관 문제 해결과 우호 관계 구축 위한 결정”

일본 도쿄도 정부가 츠키지 수산시장에 마련한 코로나19 백신 임시 대량 접종소.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고도 복잡한 행정 절차로 인해 일본의 접종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AP·뉴시스
일본 도쿄도 정부가 츠키지 수산시장에 마련한 코로나19 백신 임시 대량 접종소.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고도 복잡한 행정 절차로 인해 일본의 접종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AP·뉴시스

시사위크=송대성 기자  지구촌 축제 ‘올림픽’을 눈앞에 둔 일본. 최근 자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감소세에 접어들어 개최 희망에 부풀었지만 기대했던 백신 접종이 거북이 걸음에 그치면서 올림픽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8일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30분 기준 일본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884명으로 파악됐다. 6,000명이 넘었던 지난달 15일 이후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을 발 빠르게 확보하며 주목을 받았던 움직임에 비하면 이는 분명 아쉬움이 남는 수치다. 

◇ 시스템 구축은 뒷전… 백신 확보에만 열 올린 일본

지난해 12월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1년 상반기부터 접종에 들어갈 백신 조달 계획을 발표했다. 아스트라제네카(AZ)와 화이자를 각각 1억2,000만 회분, 모더나를 5,000만 회분 등 2회 접종 시 1억4,500만명이 맞을 수 있는 백신 물량을 확보했다고 알렸다. 

당시만 하더라도 방역 선진국으로 불린 한국보다 백신 확보에 앞섰다면서 코로나19 종식 선언도 빠를 것이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러나 막상 접종이 시작되자 한국과 일본의 사정은 예상과 달리 반대로 흘러갔다. 

일본의 백신 접종률은 38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ourworldindata 홈페이지 캡처
일본의 백신 접종률은 38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ourworldindata 홈페이지 캡처

영국 옥스퍼드대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7일 기준 한국의 백신 접종률은 16.5%를 기록 중인 데 반해 일본은 10.9%에 그치고 있다. 이는 세계 평균(11.8%)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본의 거북이 접종의 가장 큰 원인은 ‘시스템 구축 부재’가 꼽힌다. IT 강국인 한국은 모바일을 통해 백신 접종 예약 및 변경이 가능하다. 또 잔여 백신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폐기 물량을 최소화함은 물론 노쇼에도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백신 접종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후생노동성 홈페이지에 개제된 접종 절차에 따르면 접종 대상자는 지자체로부터 우편으로 접종권을 받아 접종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나 장소를 홈페이지를 통해 검색해야 한다. 이어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 후 정해진 날에 접종을 진행한다. 접종 시에는 접종권과 함께 본인 확인 서류(마이넘버카드, 운전면허증 등)를 지참해야 한다. 

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에 게재된 코로나 백신 접종 절차. 통합 시스템을 운영하는 한국과 달리 복잡한 절차로 인해 국민들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 캡처
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에 게재된 코로나 백신 접종 절차. 통합 시스템을 운영하는 한국과 달리 복잡한 절차로 인해 국민들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적잖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의료기관에 접종에 관한 문의가 빗발치기 때문에 사실상 전화 예약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인터넷 예약 역시 통합 사이트를 운영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각 지자체가 별도의 사이트를 운영·사용하는데다 서버 부족으로 사이트가 마비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실정이다. 

또한 힘들게 전화 연결에 성공하더라도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개념의 마이넘버카드 보급률(약 25%)이 저조해 주민 대장과 대조해야 하는 절차에 시간을 또 소비하기 때문에 예약 확정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접종 예약 시스템의 심각한 오류를 인지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달 24일부터 대도시인 도쿄와 오사카에 대규모 접종센터를 운영할 것을 지시했다. 하루 도쿄 1만명, 오사카 5,000명을 접종할 수 있는 시설이다. 하지만 이미 지자체에서 1차 접종을 마친 국민도 접종센터 중복 예약이 되는 시스템 결함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주사기 확보도 실패… 선물 공세와 백신 외교에 집중

의료 현장에서도 일본 정부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후생노동성은 의료기관에 백신 접종에 필요한 주사기를 배포했는데, 기존에 사용하던 1㎖가 아닌 2㎖ 주사기를 제공해 의사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 민영방송사 TBS에 따르면 일본 치바현에서 백신 접종을 진행하고 있는 도타레 내과 도타레 신지 원장은 “처음 주사기를 받았을 때 이게 뭔가 했다”라며 “접종 시 실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현재 일본에서 접종되고 있는 화이자의 경우 1회에 접종 시 0.3㎖를 사용한다. 1㎖ 주사기는 0.1㎖ 단위로 눈금 표시가 되어 있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2㎖ 주사기 경우 1㎖ 주사기보다 눈금이 더욱 촘촘하게 붙어있고 숫자 또한 0.5㎖ 단위로 적혀있어 적정량을 맞추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일본 정부가 의료 현장에 기존에 사용하던 1㎖가 아닌 2㎖ 주사기를 배포해 의료인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AP·뉴시스
일본 정부가 의료 현장에 기존에 사용하던 1㎖가 아닌 2㎖ 주사기를 배포해 의료인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AP·뉴시스

때문에 도타레 원장은 “0.3㎖를 주사할 때 누구더라도 2㎖가 아닌 1㎖ 주사기를 택할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적정 용량을 맞추는 것과 더불어 1㎖ 주사기는 딱딱해 공기를 빼는 것 역시 쉽지 않아 백신 접종 시간이 더 걸려 접종률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TBS를 통해 의료계에 불편함을 초래해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1㎖ 주사기가 부족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해를 당부했다. 

백신 접종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접종률 향상과 백신 외교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1일 아사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미야기현의 시오가마시는 1, 2차 접종을 모두 마친 65세 이상 시민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수산가공품이나 식사권 등 3,000엔(한화 약 3만500원) 상당의 특산품을 준다고 밝혔다. 사토 코우키 시장은 정례 브리핑에서 “더 많은 사람이 백신 접종에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에 특산품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업체를 지원하는 목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올림픽 개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일본 정부는 백신 외교를 통해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대만에 AZ 백신 124만 회분을 무상 공급한 일본은 베트남에도 백신 제공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자국에서 접종 보류 중인 AZ 백신을 필요 국가에 제공하면서 국가 경쟁력을 올리고 올림픽 참가 독려를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이미 넉넉한 백신을 확보하고도 의료인력 부족과 복잡한 행정 절차로 접종이 더딘 상황에서 대외 활동으로 이를 만회할 기회를 만들려는 눈치다. 

보관에 대한 문제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현재 접종하지 않는 AZ 백신의 대량으로 보류하고 있어 보관 문제가 만만치 않다”라며 “대만에 백신을 제공하는 것은 보관에 대한 고민을 덜어내고 우호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함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일본에는 혼자 너무 앞서가는 것을 우려하는 문화가 옛날부터 있었다. 때문에 접종률이 높은 지자체에 낮은 지자체와 속도를 맞추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한국과 일본의 접종률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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