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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의 문예노트] 코로나 시대 우리 모두가 성장하는 방법
[하도겸의 문예노트] 코로나 시대 우리 모두가 성장하는 방법
  • 하도겸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1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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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지금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자화상이다. 사람 한 분 한 분은 모두 인연이라는 관계망의 총체이며 그 일부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가 지금 좀 더 성장한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그만큼 성장한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재능이 있고 인품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다. 이 경우는 작은 어쩌면 좀 큰 틈이나 구멍이 있는 옹기그릇과 같다. 옹기가 더 커지고 더 두터워져도 틈을 막지 않는 한, 늘 물이 새어서 채워진 물의 총량은 별로 늘지 않는다. 다 메꾼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 꽉 채울 수 있게 된다. 관상학에서 말한 대로 드디어 어쩌면 결국 ‘꼴값’을 다할 수 있게 된다.

수행에서 스승이나 도반은 이런 일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늘 부족하지만, 제자나 선후배 동료의 틈을 메꿔주다 보면, 스스로를 보리행 또는 ‘호연지기’와 ‘홍익인간’의 정신을 함양하고 지행일치시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동차 수리를 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상대의 문제를 단박에 쉽게 고쳐야 스승이나 도반의 자격이 더 빛날 듯하다. 까닭에 그것을 제대로 못하는 지금, 늘 스스로의 탓으로 생각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나 보다.

누구에게나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다. 만나진 않았지만 그리던 사람이라고 하면 맞을까? 짚신도 제 짝이 있다. 전생으로부터의 인연인지 그런 사람과 만나게 되면 그 동안의 어떤 관계보다도 금방 친해진다. 그래서 숙연이라고도 하나보다. 어디서 본 것이 아니라 전생에서 봤나 보다. 아니 숙세에 걸쳐.

하지만 60년을 정점으로 익어가는 보이차처럼 사람들의 관계에도 함께 경험해야 할 세월의 무게가 있다. 이런 무게감에 대한 면죄부는 견문이 짧아서 아직 본적이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 짧은 시간의 만남이라는 한계는 늘 치열한 무게감으로 관계를 억누른다. 그런 무게감의 영향도 있는 것인지, 행복한 관계 역시 고통의 관계로 변질되는 순간이 늘 다가온다.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늘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기일회하는 것을 매뉴얼로 삼아 그 선을 지키는 일일 따름이다.

인간관계에서 가능한 한, 단절은 없어야 하고 만남 등의 간격을 늘림이 필요하다. 헤어지지 말고 만나는 간격을 늘리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중장기적으로 편한 친구로 또는 도반으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그런 관계’로 나아가도록 스스로가 애써야 한다. 만약 자기도 아는 ‘욕심’으로 상대를 버리거나, 나아가 그 ‘욕심’마저도 ‘남탓’으로 왜곡시키면 안 된다. 바로 그 순간 스스로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 속으로 자신을 밀어버리게 되며, 현실이 지옥이 되는 순간을 무지불식간에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진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 있는 고택인 여유당(與猶堂)의 모습이다. / 하도겸 칼럼니스트 제공
사진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 있는 고택인 여유당(與猶堂)의 모습이다. / 하도겸 칼럼니스트 제공

영어로 “How can I help you?”는 우리 불교의 보리행으로 나뿐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화한 질문이다. ‘나만 잘 살겠다’는 식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홍익인간 이념에 근접한 것으로 나와 남의 입장을 바꾸며 더욱 살갑게 서로 보살펴야 함을 일깨워준다.

소위 인생 보이차를 만나도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 세월과 날씨를 타면서 ‘차’의 맛은 조금씩 변한다. 무르익는 듯 하지만 가끔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도 한다. 후퇴했다고 해서 차품이 나빠진 것은 아니지만 모두들 “맛이 왜 이렇지?”라며 일희일비한다. 그리고는 남에게 선심쓰듯이 넘겨 버리기도 한다. 나누면 좋지만 버리는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인생도 그렇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쟁여두면 차 맛은 더 성숙한 맛으로 나를 맞이한다. 사람도 그렇다. 그래서, 차품이 인품이라고 할 수 있다.

늘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는 독불장군도 없고 천하장사도 없다. 한 두번 맛이 좀 이상하다고 해서 너무 유념할 필요도 없다.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하나의 관심이다. 상선(上善)이 약수(若水)인 샘이다. 시간처럼 흘러가는 세월을 인고의 시간이라고 하고 그 후에 지나간 시간이 ‘잃어버린 시간’이 아닌 ‘숙성의 시간’ 나아가 ‘행복의 싹을 틔우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선택은 늘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런 선택의 결과를 늘 겸허하게 인정하고 오늘은 힘들지만 또 다른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고통이 아닌 행복의 시간을 만들어나가야 할 숙명이 바로 우리네 인생에 있다. 결국 인연은 그냥 만나거나 남에게 일방적으로 바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잘 관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늘 그런 관계들을 성장시켜 나가는 것은 바로 나의 발전이 된다. 그래서 이타와 이기가 다르지 않는 접점이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이런 선마저 훌쩍 뛰어 넘어서 그냥 선한 마음으로 남에게 대한 배려하며 도움을 나누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성장하는 길인 듯하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다. 얼른 백신 맞고 소원했던 친구들과 차 한 잔 해야겠다. 모두의 성장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