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현행 정당법은 만 18세 이상의 정당 가입만을 허용하고 있다. 선거권과 정당 활동 연령을 연결시킨 것이다. 최근 선관위가 만 16세 이상부터 정당 가입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개정의견을 내면서 정치권 안팎의 공방이 뜨겁다. /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정당법 22조는 당원의 자격에 대해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선거권이 있는 만 18세 이상에만 정당 가입의 문호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만 18세라는 규정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가까스로 법안이 통과되면서 가능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새어 나온다. 시민으로서 청소년 역시 정치에 자유롭게 참여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 가입 연령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오랜 논쟁거리였다. 지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선거권 연령 하향과 정당 가입 연령을 낮출 것을 권고했다. 국회에서도 응답했다. 19대 국회 강창일 당시 민주당 의원은 정당 발기인 및 당원 자격 연령을 만 17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하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이후에도 개정 움직임은 계속됐다. 지난 20대 국회에선 윤후덕(만 16세 이상)·박주민(만 15세 이상)·송옥주(연령 제한 폐지)·소병훈(연령 제한 폐지)·이재정(연령 제한 폐지)·표창원 의원(연령 제한 폐지) 등이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 개정안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다뤄지기도 했지만, 우려의 목소리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폐기됐다.

논의는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정당 가입 연령을 만 16세 이상으로 하향하자는 게 골자다. 선관위는 △정당 활동의 자유를 확대하고 △국민이 정치적 의사 형성에 효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행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단, 무분별한 당원 모집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미성년자의 경우 법정대리인의 동의서를 함께 제출하도록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민주주의를 직접 체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가입이 필요하다는 데 공통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뉴시스

◇ 향상된 교육 수준 고려해야

21대에서도 이같은 취지의 법안은 다수 발의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민주당 송옥주·장경태·이재정·박상혁 의원,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과 정의당 이은주 의원 발의안 등 총 6건이다.

향상된 교육 수준과 성숙된 정치·사회적 판단을 고려해서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점은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아울러 지난 국정농단 사태는 물론 최근 이대남·이대녀 논쟁, 4·7 재보걸 선거 과정 등을 통해 확인된 젊은 층의 정치 참여 욕구가 높아졌다는 점도 법안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까닭이다. 

다만, 구체적인 연령 기준에 대해선 달랐다. 송옥주·이재정·박상혁·강민정·이은주 의원은 연령 제한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당 가입의 연령을 법이 규정하는 것이 아닌 정당이 당헌·당규를 통해 자발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재정·박상혁·이은주 의원 안(案)에는 이같은 내용이 직접 명문화돼 있다.

송옥주 의원은 “실제로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법으로 정당 가입에 연령 제한을 두지 않는다”며 “각 정당이 자율적으로 가입 연령을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한을 두어도 만 14~16세 이상으로 하고 있어 국내 규정보다도 완화된 형태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장경태 의원은 만 16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하자는 입장이다. 무분별한 당원 가입 시 전 당원 투표 등에서 자녀의 투표권 남용 등 예측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인 셈이다. 만 16세라면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장 의원의 설명이다.

장 의원은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위해 만 16세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우리 사회가 만 16세 정도면 근로 동의를 얻어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라며 “노동의 권리도 주어지고, 의무교육도 중등교육 이상 완수하는데, 정당의 가입할 권리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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