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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조우진, 변하지 않는 것
2021. 06. 21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조우진이 영화 ‘발신제한’(감독 김창주)으로 관객 앞에 선다. /CJ ENM
배우 조우진이 영화 ‘발신제한’(감독 김창주)으로 관객 앞에 선다.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주연배우로 등극했다거나 우뚝 섰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해왔던 대로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뿐이다.” 

무명에서 다작 배우로, 명품 조연에서 단독 주연까지. 배우 조우진은 달라진 입지에도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더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주어진 몫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의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조우진은 1999년 연극 ‘마지막 포옹’으로 데뷔한 뒤 연극 무대는 물론,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약했다. 다작 행보를 보이며 탄탄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던 그는 굵직한 캐릭터들을 소화하며 점차 자신의 영역을 확장했다. 강렬한 악역부터 코믹한 감초 연기까지, 어떤 캐릭터를 맡아도 완벽 소화하며 진가를 입증했다.  

그리고 이제 스크린 첫 단독 주연 자리까지 꿰차며 더 큰 존재감을 보여줄 예정이다. 영화 ‘발신제한’(감독 김창주)을 통해서다. 데뷔 후 22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그의 값진 결실이다. 

‘발신제한’은 은행센터장 성규(조우진 분)가 아이들을 등교시키던 출근길 아침, ‘차에서 내리는 순간 폭탄이 터진다’는 의문의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를 받으면서 위기에 빠지게 되는 도심 추격 스릴러. ‘더 테러 라이브’ ‘끝까지 간다’ 등에서 편집 감독으로 활약한 김창주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극 중 조우진은 은행센터장 성규를 연기했다. 의문의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를 받고 위기 빠지는 인물이다. 조우진은 평범한 가장의 모습부터 폭탄 테러 용의자, 살해 협박에 쫓기는 피해자의 얼굴까지 완벽하게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한정된 공간,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스크린을 압도하는 연기로 존재감을 뽐낸다. 

개봉에 앞서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조우진은 쏟아지는 호평에 “기쁜 만큼 부담도 크다”면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관객이 영화를 보고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다’ ‘즐거운 관람의 기회였다’고 말해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소박한 바람을 덧붙였다.  

‘발신제한’으로 다시 한 번 진가를 입증한 조우진. /CJ ENM
‘발신제한’으로 다시 한 번 진가를 입증한 조우진. /CJ ENM

-첫 단독 주연작이었는데, 공개 후 반응이 좋다. 개인의 만족도도 궁금한데. 
“많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좋은 말씀을 너무 많이 해주셔서 좌불안석 마음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영화가 잘 만들어져서 좋은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과정도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그 이후 과정이잖나. 개봉을 앞두고 좋은 말씀을 듣다 보니 기쁘기도 하면서 그만큼 부담감도 크다. 혹시 기대를 갖고 극장에 오셨다가 실망하면 어떡하나 호불호가 갈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선다. 지금은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크다. 객관적으로 영화를 보지 못했다. 냉정하게 영화도 평가하고 내 연기도 평가하고 그래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하구나 싶더라. 한두 번 정도 더 봐야 차분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심심한 대답이지만, 내 진심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속도감이 넘쳤다. 발 담그면 쑥 빨려가듯 기분 좋게 늪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그런 속도감과 타격감이 느껴지는 시나리오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빠른 시간에 농도 짙은 감정으로 이입이 됐다. 악행이든 선행이든 명분이 다 담겨 있다는 점에 있어서 모든 인물이 소중해 보였다. 모든 캐릭터가 살아 숨 쉬고 생동하는 느낌이라 인상 깊었다. 한편으론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겁도 났다.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농후한 시나리오였다.”

-김창주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베테랑 편집감독 출신이라는 점에 있어서 차별점이 있었나. 
“현장에서 화 한 번 안 낸다. 급박하고 긴장된 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차분하고 신사적으로 이끌어줬다. 그런 감독님의 분위기가 현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한마음 한뜻으로 끝까지 작업할 수 있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 안에는 분명히 야수성이 있었다. 여러 번 발견했다.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판단에 의해 장면을 만들어내고 연출해내는 모습을 봤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감독님이 야수의 이빨을 드러냈구나 싶었다. 고생을 많이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별점은 편집점을 항상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구체적인 디렉션이 들어왔다. 찰나에 필요한 감정을 체크해서 알려줬다. 사전 대본 리딩을 많이 해서 현장에서 조절하는 방향으로 갔다. 미리 정확하게 어떤 감정인지 이야기했다. 현장에 가서 맞다 안 맞다 상의가 들어가면 시간도 마음도 많이 썼을 텐데, 미리 세심하게 감정을 관찰해 얘기해줬다. 그래서 나는 그분만 믿고 따라가면 됐다.”

‘발신제한’에서 성규를 연기한 조우진 스틸컷. /CJ ENM
‘발신제한’에서 성규를 연기한 조우진 스틸컷. /CJ ENM

-한정된 공간과 제한적인 상황에서 인물의 감정 변화를 담아냈어야 했다.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접근했나.  
“상황에 대한 인식, 거기에서 피어 나오는 생각과 감정을 세분화시켰다. 김창주 감독이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본능적인 감정은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순간, 찰나를 건지는 영화가 될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더 세심하고 더 면밀하게 세분화시켜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야 보는 분들도 찰나를 느끼면서 영화적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연배우로서가 아니라 성규라는 인물을 맡은 사람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표현하고자 했다. 사전 대본 리딩을 통해 최대한 많은 접점을 가지고 현장에 가고자 했다. 현장에서 나오는 호흡도 있지만, 미리 공유하다 보면 훨씬 더 많은 ‘케미’를 만날 수 있다. 감독과의 호흡,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저 기댔을 뿐이다. 그분들 덕에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상대 배우 즉 의문의 발신자와 직접 대면해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 통화만으로 긴장감을 자아냈어야 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나. 
“벽보고 이야기한다는 표현이 딱 맞지 않나 싶다. 오류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 소통을 시작하는 것이 엄청난 에너지와 집중력이 요구되더라. 연기를 하고 나면 늘 한숨이 나왔다. 감독과 사전에 약속한 것을 최대한 펼쳐내자는 마음으로 했는데, 맞나 싶었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닐 텐데 싶더라. 다른 배우가 같이 대사를 쳐준 장면도 있었지만, 물리적인 방해 때문에 혼자 얘기해야 하는 장면도 있었다. 상상력과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임해야 했다. 마블 영화처럼 블루스크린 앞에서 상상에 기대 연기하는 분들이 존경스럽더라. 그 정도로 어려웠던 작업이었다.” 

-직업적인 부분, 금융계 센터장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했나. 
“실제 금융계 센터장으로 일하고 계신 몇 분을 만났다. 어떤 분은 고속 승진해서 젊은 나이에 센터장이 됐고, 어떤 분은 50대였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취재를 통해 얻으려고 했다. 똑같이 할 순 없고, 결국 캐릭터로 메워야 한다는 생각인데, 직업적인 부분은 따라가 보고자 했다. 성규의 초반 캐릭터에 고속 승진한 분의 모습을 많이 투영시켰다. 나이에 비해 빨리 성공한 남자라는 설정으로 상상력을 더해 준비했다.”

‘발신제한’에서 부녀로 호흡을 맞춘 이재인(왼쪽)과 조우진. /CJ ENM
‘발신제한’에서 부녀로 호흡을 맞춘 이재인(왼쪽)과 조우진. /CJ ENM

-딸을 연기한 이재인과의 호흡은 어땠나. 부녀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촬영 전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이재인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에 만세를 불렀다. ‘사바하’도 잘 봤고, ‘봉오동 전투’도 함께 했다. ‘봉오동 전투’에서 마지막 헤어지는 장면에서 아무 말 없이 표정 만으로 표현하는 걸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배우가 내 딸 역할을 한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현장에서도 늘 놀라게 했다. 연기에 대한 탐구정신이 놀라웠다. 여유도 있었다. 촬영 전 이재인에게 선후배가 아니라 동등한 배우니까 편하게 얘길 나눴으면 좋겠다고 했고, 정말 그렇게 했다. 그 친구도 만족이라는 단어를 모르더라. 끊임없이 파고들고, 치밀하게 고민하고 연기하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내가 그 나이로 돌아간다면 이재인처럼 하지 못할 것 같다.” 

-실제 딸을 둔 아버지인데, 아버지로서의 경험이 성규를 연기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가족과 딸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현장에서 버틸 수 없었을 거다. 가족, 딸이 주는 행복감을 나도 까먹고 있었더라. 경험하지 않았다면 이런 작품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많은 영감을 가져다줬다. 똑같이 행복하고 사랑을 느끼더라도 가족과 나누는 건 다르다는 걸 ‘발신제한’을 통해 크게 깨달았다. 그래서 이 작품이 정말 고맙다. ‘가족을 꾸리길 잘 했구나, 딸을 낳길 잘했구나, 정말 소중한 순간을 맛봤고 맛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깨닫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다.” 

-충무로 대표 ‘열일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많은 작품을 소화하면서 고민은 없었나. 
“그만큼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나를 선택한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고 싶었다. ‘저 배우는 저 현장에 갔다 왔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 현장의 주인이 되는 감독이 ‘내 배우’라고 느낄 만큼 준비와 집중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했다.” 

꾸준한 행보를 예고한 조우진. /CJ ENM
꾸준한 행보를 예고한 조우진. /CJ ENM

-출연한 수많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자면. 
“‘발신제한’이 원픽이다.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도 아니고 잘했다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주연배우라는 롤도 상관없다. 헤어질 때 가장 슬프고 섭섭하고 놓기 힘들었던 현장이었다. 지금까지도 여운이 남아있고, 제작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발신제한’이 앞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감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해왔던 대로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이 작품을 통해 주연배우로 등극했다거나 우뚝 섰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선택지를 찾는다거나 이제 하고 싶은 걸 할 거란 생각은 전혀 없고, 갖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다. 해왔던 대로 열심히 해나갈 거다.”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봉하는 순간이 두렵고 긴장되지만, 소중한 기회인 것 같다. 어려운 시기에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감개무량하다. 많은 제작진의 노고가 담긴 작품이고, 수치로 보람을 느낄 수밖에 없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겠다는 것은 꿈도 못 꾸는 시국이라는 걸 잘 알기에, 되도록 많은 분들이 극장에 찾아와주셔서 관람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즐거운 관람의 기회였다고 말씀해 주시면 참 좋을 것 같다. 혼을 담아서 만들었다. 극장 관계자분들도 세심한 방역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심장을 마구 뒤흔드는 ‘발신제한’. 영화관에서 한껏 만끽하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