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시계, 차키, 스마트 워치, 안경.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그런데 이같은 물건에 숨은 ‘또 다른 눈’이 나를 몰래 지켜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생활필수품으로 위장한 불법 촬영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불법 촬영 노출에 대한 공포감은 여름철 호러 영화에서 느끼는 그것보다 클 수 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이 이같은 피해를 입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에 대해 의심하기 어려워서다. 그러나 초소형 카메라(변형카메라)를 이용한 범죄 사례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생활 속 물건까지 의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국회는 초소형 카메라를 관리하는 법안을 내기에 이른다. 

불법촬영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카메라 등을 이용한 성범죄 사례가 늘어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변형카메라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이에 19대 국회 당시부터 변형카메라 관리법이 발의됐지만, 단 한 차례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불법촬영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카메라 등을 이용한 성범죄 사례가 늘어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변형카메라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이에 19대 국회 당시부터 변형카메라 관리법이 발의됐지만, 단 한 차례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최근 초소형 카메라(변형카메라)를 이용한 불법 촬영 범죄 사례가 연이어 등장하면서 이같은 제품의 판매·유통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초소형 카메라 판매 금지 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일명 몰카라고 불리는 불법촬영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안경, 볼펜, 액자, 시계, 생수통, 화재경보기 등 위장된 모습으로 우리 옆에 존재한다. 누구나 찍힐 수 있다”면서 “이런 초소형 카메라는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아무나 몰카 구매가 가능하고 찍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구매한 손님이 초소형 카메라를 범죄 목적으로 사용하면 끝이고 셀 수 없는 피해자들이 발생한다”며 “불법촬영은 재범률이 매우 높고 악질적인 범죄다. 첨단 기능이 발달할수록 인권침해, 사생활 침해 문제에 부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초소형 카메라 유통을 규제해 달라”고 했다. 

해당 청원은 21일 현재 마감된 상태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한 달 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답변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지난 18일 마감된 이 청원은 총 23만3,758명의 동의를 얻어 답변 요건을 갖췄다. 그러나 판매 ‘금지’ 법안은 제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국회에서는 ‘판매 이력 관리’를 통해 범죄를 예방하고자 하는 법이 발의됐다. 

◇ 2015년 첫 발의 이후 계속 ‘임기 만료 폐기’

경찰청이 제공한 ‘카메라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 현황’ 통계를 보면, 2011년에 1,332건 이었던 반면 2019년에 5,440건으로 급증했다. 10년 사이에 4배가 늘어났다.

일상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으로 위장한 변형카메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변형카메라를 판매하는 쇼핑몰에서는 ‘증거확보용으로 경찰, 소방관, 전문가를 위해 제조됐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그러나 주문 과정을 살펴보면, 누구든지 쉽게 구매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관련 피해사실이 수사기관에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차 안에 설치한 소형 카메라로 운전 강습을 받는 여성들의 신체를 촬영한 30대 남성 운전 강사가 구속된 사례, 발가락에 초소형 카메라를 끼우는 수법으로 음식점과 카페 등에서 불특정 다수 여성의 신체 일부를 불법 촬영한 40대 남성의 범죄가 언론에 알려진 바 있다. 실제로 알려진 것 외에도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변형카메라’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고, 6년 전 19대 국회에서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처음으로 ‘변형카메라 관리에 관한 법률안’(변형카메라 관리법)을 발의했다. 사생활을 침해하고 디지털 성범죄로 악용되는 변형카메라를 사전에 규제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17년 20대 국회에서도 장 의원은 ‘변형카메라 관리법’을 다시 발의했다. ‘장병완안’은 변형카메라를 허가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허가받을 수 있는 경우는 공익 목적이 명확하고 악용 우려가 없는 변형카메라에 국한된다. 또 이력정보시스템을 구축해 변형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했다.

2019년에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변형카메라 관리법’을 발의했다. ‘진선미안’은 허가제가 아니라 등록제로 규제 수준을 낮췄다. 변형카메라 현황 파악을 위한 이력정보 시스템 구축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장병완안’과 ‘진선미안’ 역시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웹하드 카르텔을 통한 불법 촬영물 유포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와 21대 국회에 걸쳐 '변형카메라 관리법'을 발의했다. /진선미 의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와 21대 국회에 걸쳐 '변형카메라 관리법'을 발의했다. /진선미 의원

◇ 진선미 법안, ‘등록제·이력정보 등록’이 골자

21대 국회 때도 이같은 법안은 발의됐다. 올해 3월 진 의원은 다시 한 번 ‘변형카메라 관리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에 회부됐지만, 더 이상의 논의는 진전되지 않은 상태다.

현행 법률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은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촬영 및 유포에 관한 사후적 처벌만을 규정하고 있다.

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변형카메라 등록제와 이력정보 시스템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아울러 취급·등록의 결격사유로 △미성년자 △금고이상 형 선고·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자 △성범죄자 등을 조건으로 달았다. 변형카메라를 취급·등록할 수 있는 이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부터 취급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진 의원은 “(변형카메라는) 갈수록 교묘해지고, 장비도 소형화돼 일반인들은 자신이 범죄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안타깝게도 불법촬영 범죄는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전혀 없고, 현재로서는 사후적 처벌만 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범죄의 특성상 사후적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크고,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가 절실하다”면서 “사후적 처벌만이 아니라, 애초에 불법촬영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싹을 자르기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공동발의에 참여한 남인순 민주당 의원 역시 “이른바 몰래카메라에 의한 범죄의 경우 영상물이 한번 유포되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유포된 영상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사후적 처벌만으로는 범죄 예방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범죄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이동통신단말장치(휴대폰) 등이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개인이 직접 변형카메라를 제작하거나 해외 직구로 구매하는 등의 문제점도 있다. 또한 카메라 기술이 자동차, 의료, 산업, 국방 등의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고, 새로운 융·복합 기기들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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