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시계, 차키, 스마트 워치, 안경.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그런데 이같은 물건에 숨은 ‘또 다른 눈’이 나를 몰래 지켜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생활필수품으로 위장한 불법 촬영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불법 촬영 노출에 대한 공포감은 여름철 호러 영화에서 느끼는 그것보다 클 수 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이 이같은 피해를 입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에 대해 의심하기 어려워서다. 그러나 초소형 카메라(변형카메라)를 이용한 범죄 사례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생활 속 물건까지 의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국회는 초소형 카메라를 관리하는 법안을 내기에 이른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홍익대 미대 몰래카메라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성(性) 편파 수사'를 주장하는 여성단체 '불편한용기'의 불법 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 2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성차별 수사 중단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변형카메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법안은 이런 인식을 쫓아가지 못한 상황이다. 변형카메라 관리에 관한 법률안(변형카메라 관리법) 제정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모두 '범죄의 사전 예방'이라는 취지에는 동의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혜화역 시위'의 모습. 해당 집회는 홍익대 미대 몰래카메라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성(性) 편파 수사'를 주장하는 여성단체 '불편한용기'의 불법 촬영 편파 수사를 규탄하기 위해 개최됐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초소형 카메라(변형카메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지난달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초소형 카메라 판매 금지 해주십시오’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사실 이같은 청원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2020년에도 ‘몰카 구매와 판매를 금지시켜달라’, ‘소형카메라 판매를 금지해달라’, ‘초소형 카메라 판매를 규제해달라’, ‘초소형 카메라 판매를 허가제로 바꿔 달라’ 등의 글이 수십건 이상 올라왔다. 불법 촬영과 변형카메라가 악용되는 상황에 대한 세간의 경각심은 높아져 있지만, 제도가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셈이다. 

◇ “입법 공청회 개최 선행돼야”

‘변형카메라 관리에 관한 법률안’(변형카메라 관리법)에 대해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뿐 아니라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측에서까지도 법안 발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불법촬영 결과물은 결국 온라인에 유포되는 ‘디지털 성범죄’로 이어지는데, 이 경우 사후 처벌이 있더라도 유포된 영상은 삭제가 어려워 피해 복구가 어렵다. 이에 불법촬영을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게 법안의 취지였다. 그리고 예방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 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찬반 측이 모두 취지에는 공감해도, 법안 논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법안에서 ‘변형카메라’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법안’이라는 특성상 정의를 규정하더라도 그 이후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카메라 기술의 빠른 발전을 법안이 쫓아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안으로 변형카메라를 정의하더라도 법 테두리 밖의 변형카메라가 등장하면 이를 규제하기 위한 법안 개정이 필요한데, 법안 개정에 시간이 많이 걸린 것도 문제다. 조기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운 변형카메라가 등장할 경우) 법령에 현실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반영하기도 어려워 등록여부에 대한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결국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법안에 대한 심도 깊은, 예를 들자면 입법 공청회 같은 형식의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관계자는 “원래 제정법이나 전부개정의 경우 입법 공청회 개최를 필수로 규정한다”며 “해당 법안 역시 제정법이라 입법 공청회가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국회법 제58조 6항에 따르면, 상임위원회는 제정법률안과 전부개정법률안에 대해서는 공청회 또는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 하지만 상임위 의결로 이 과정을 생략할 수도 있다.

야당이 입법 공청회·청문회 개최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 상임위 차원에서 해당 과정을 생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실 관계자는 “해당 법안에서 규정하는 변형카메라의 정의가 모호한 만큼, 공청회는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광화문역 계단에 스마트 국민제보 앱 홍보 그림과 몰래 카메라의 적극적인 신고를 권하는 그림 등을 래핑한 '안전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관련 없음. 뉴시스>
서울 광화문역 계단에 스마트 국민제보 앱 홍보 그림과 몰래 카메라의 적극적인 신고를 권하는 그림 등을 래핑한 '안전계단'이 조성된 모습.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뉴시스

◇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 필요”

일각에서는 변형카메라 관리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불법 촬영’이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불법 촬영과 이에 파생되는 디지털 성범죄(유포)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해악을 끼치는 범죄라는 인식을 국민들 대다수가 공유할 경우, 이같은 법안 역시 논의에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입법정책보고서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삭제 지원을 중심으로 한 체계 정비 후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 홍보 등으로 업무를 확대·강화해야한다”고 밝혔다. 

조윤오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를 예방하려면 우선 불법 촬영물 유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식 계몽·캠페인, 데이트폭력이나 오프라인 상의 성범죄 전과가 있는 가해자(고위험군)를 대상으로 한 예방 활동이 필요하다”면서 “거시적 관점의 개선책이 더 많이 언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역시 “(디지털 성범죄는) 예방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 있도록 이 범죄 특징에 알맞은 예방교육이 필요하고, 피해자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들의 홍보를 통해 피해자가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라며 불법 촬영과 이를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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