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과 OST 모두 흥행에 성공한 영화 '겨울왕국'. /뉴시스
내용과 OST 모두 흥행에 성공한 영화 '겨울왕국'. /뉴시스

시사위크=송대성 기자  영화는 초기 흥행이 전체적인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관객들의 호기심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제목을 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상 영화 홍보의 시작도 제목인 셈이다.

잘 지은 영화 제목은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자리한다. 그러나 반대로 좋은 작품성을 지닌 영화인데도 어울리지 않는 제목으로 아쉬움을 남긴 작품들도 존재한다. 

제목을 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특히 외화의 경우 원제를 직역해 사용할지, 아니면 국내 정서 혹은 영화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제목을 정할지 등을 고민하는 과정을 거친다. 

‘제목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작품의 생명이 담긴 제목. 원제를 지키고, 설명하고, 뒤집은 제목들이 불러온 효과는 어땠을까.

◇ 흥행으로 이어진 ‘초월 번역’

수많은 외화 가운데 영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국내 정서에 맞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어 일부러 전혀 새로운 느낌의 제목 옷을 입고 개봉해 흥행으로 이어진 작품들이 다수 있다. 

이 가운데 남녀노소 모두에 사랑을 받으며 1~2탄 모두 천만 관객을 동원해 엄청난 흥행몰이를 했던 ‘겨울왕국’이 대표적이다. 

겨울왕국의 원제는 ‘Frozen’인데 이를 직역하면 ‘얼어붙은’, ‘냉동된’ 정도다. 하지만 그대로 사용한다면 영화 내용을 가늠하기 어렵고 타켓층 설정 역시 설정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디즈니 코리아는 마법으로 얼어붙은 왕국을 표현한 지금의 제목으로 정했고 이는 흥행이라는 결과물로 돌아왔다.

밤이 되면 박물관 전시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담긴 2006년 개봉작 ‘박물관이 살아있다’ 역시 잘 지은 제목으로 꼽힌다. 

이 영화의 원제는 ‘Night At The Museum’으로 직역하면 ‘박물관의 밤’이다. 하지만 영화 내용처럼 전시물이 움직이는 것을 강조하고 생동감이 느껴질 수 있게 번역해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지금의 제목이 탄생하게 됐다. 

러브 스토리 명작으로 평가받는 ‘사랑과 영혼’도 원제 그대로 국내에 개봉했다면 자칫 외면당했을지 모른다. 

이 영화의 원제는 ‘Ghost’로 만약 직역해서 개봉됐다면 ‘유령’, ‘귀신’이란 제목으로 관객들을 맞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됐지만 사랑했던 연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내용을 함축적으로 풀어낸 ‘사랑과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거듭났고 아직까지도 많이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남았다. 

한국인들의 정서를 고려해 하루를 앞당긴 영화 제목도 있다. 바로 지구 종말을 다룬 영화 ‘투모로우’다. 

투모로우의 원제는 ‘The day After Tomorrow’다. 이는 내일모레라는 뜻이지만 한국에서는 내일을 뜻하는 투모로우로 개봉했다. 제목을 이처럼 바꾼 이유는 한국인은 지구 종말이 내일모레 온다하면 별로 급박하게 느끼지 않기 때문에 이보다 빠른 내일, 투모로우로 정하게 됐다.

대표적인 제목 오역 사례로 꼽히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왼쪽)와 '가을의 전설'. /포스터 캡처
대표적인 제목 오역 사례로 꼽히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왼쪽)와 '가을의 전설'. /포스터 캡처

◇ 오역이 매력이 된 영화

원제의 밋밋함을 지워내고 영화 내용도 파악할 수 있는 제목이 있는 반면 온전히 잘못된 오역으로 지금의 제목이 된 영화도 존재한다.

영화 제목의 오역 사례 살펴볼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은 1990년작 ‘죽은 시인의 사회’(원제 ‘Dead Poets Society’)다. 

번역 전문가인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도 지난 2017년 12월 국제저명학술지 ‘저널 바벨’에 기고한 ‘외국영화의 한국어 제목 오역’이라는 논문을 통해 ‘Society’는 사회라는 뜻이 아닌 클럽 또는 동아리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작고한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연구하는 동아리 모임이라는 의미로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닌 ‘죽은 시인의 클럽’ 혹은 ‘죽은 시인의 동아리’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전했다. 

브레드 피트와 앤서니 홉킨스가 주연으로 나선 ‘가을의 전설’도 동음이의어로 인한 대표적인 오역 사례다. 원제 ‘Legends of the Fall’에서 'Fall'은 가을이 아닌 추락 또는 몰락을 의미한다. 

원작 소설 자작 짐 해리슨도 ‘Fall’이 가을이 아닌 추락을 의미한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가을의 전설’이 아닌 추락 또는 몰락의 전설로 번역됐어야 했다. 하지만 오역에도 불구하고 이미 해당 제목으로 유명해진 터라 국내에서는 오히려 오역 덕을 본 케이스로 남았다. 

◇ 영화 제목은 어떻게 정해질까?

노력을 기울여 지은 제목이라 하더라도 작품이 흥행하지 않는다면 잘 지은 제목이라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렇기에 배급사에서도 흥행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제목을 작명하기 위해 많은 요소를 검토하고 또 고민을 거듭한다. 

한 영화 수입·배급사 관계자는 “외화 수입 시 작품 내용의 현지 반응을 살펴보는 것은 물론 국내 개봉 시 원제로 갈 것인지 아니면 바꿀 것인지도 많이 고심한다”라며 “국내 정서와 동떨어진 원제들이 있어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의역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논문에서도 트렌디한 제목은 영화 흥행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한다. 지난 2014년 한국상품학회가 발행한 ‘제목의 패턴이 영화 흥행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제품을 소비하기 전에는 그 효용가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경험재의 성격을 가진 영화는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며 “잠재적 관람객은 해당 영화가 유행하고 있는 제목의 패턴을 따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그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영화의 제목 글자 수를 통해 영화의 분위기가 트렌디하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큰 비용 부담 없이 영화를 홍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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