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몇 달 전까지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을 했던 사람들이 임기도 끝나기 전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도 꽤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을 보면서 알묘조장(揠苗助長)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렸네.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고도 하고 그냥 조장이라고 하는데, 급하게 일을 서두르면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뜻일세. 『맹자(孟子)』 「공손추상(公孫丑上)」편에 있는 맹자와 제자 공손추의 대화에서 유래했지.

맹자는 공손추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 위해서는 의로운 일을 많이 해야 하지만 억지로 조장(助長)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네. 그러면서 송나라 농부가 했던 행동을 조장의 예로 들지. “송나라 사람 중에 곡식의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싹을 뽑아 올려준 자가 있었다. 그가 피로한 기색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족들에게 ‘오늘은 참 힘들었다. 내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했다. 그의 아들이 달려가서 보니 싹은 이미 시들어 버렸다.”맹자는 오랜 세월 행한 의(義)가 쌓여서 호연지기가 생겨나는 것이지 우연히 한번 행한 어떤 행위가 의에 부합되었다고 해서 호연지기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네. 오랜 시간 의로운 일을 많이 해야 호연지기를 가질 수 있다는 거야.

정치도 호연지기와 비슷한 것 아닐까? 정치야말로 사전준비 없이 서두르면 많은 국민들에게 무익할 뿐만 아니라 큰 해를 끼치는 괴물이 될 수도 있네.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 하지만 누구나 정치인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닐세. 지금 감옥에 있는 두 전임 대통령을 보게나. 그들도 선거에서 많은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던 사람들일세. 하지만 지금 그들은 불행하게도 자유의 몸이 아닐세. 되돌아보면, 그들도 송나라 농부의 벼처럼 조장되었던 거지. 그러니 정치인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그들이 정치에 발을 들어놓지 않았다면 그들의 말년이 그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걸세.

요즘 얼마 전까지 고관대작이었던 정치 초년생들의 행보가 가관일세.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할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정치를 하겠다고 했으면 왜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답이 없네. 그러면서 지금 준비 중이라는 말만 하고 있으니 송나라 농부를 떠올릴 수밖에. 아무런 준비 없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을 이끌겠다는 저들의 무모한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정치든 배움이든 마음만 앞선다고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는 건 아닐세. 세상사 뭐든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네. 지방자치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야. 주민들 가까이 살면서 보통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문제들을 찾아 해결하는 경험을 많이 쌓아야 더 큰 정치도 잘 할 수 있거든. 그런 과정 다 생략하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정치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대통령 해보겠다고 나왔으니 많은 국민들 눈에 불안하게 보일 수밖에. 정치 신인으로 대통령을 꿈꾸는 분들에게 정호승 시인의 <꽃을 보려면>을 들려주고 싶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꽃을 보려면 오랜 시간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꽃을 맞을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하네. 내가 먼저 산과 들에 나가 봄이 되어야 하고, 평생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칼도 버려야 하지. 네 마음이 먼저 따뜻해져야 꽃이 보인다는 걸세.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자신을 고관대작으로 만들어준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분노만 가득한 차가운 가슴으로는 꽃을 피울 수도 없고, 이미 핀 꽃도 볼 수 없네. 자신들 가슴을 먼저 따뜻하게 만드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게 송나라 농부의 조장 폐해를 미연에 방지하는 최선책 같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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