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성찰배경: 물론 개인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101세를 맞이했어도 여전히 올곧은 삶을 이어가고 계신 철학자 김형석(1920-현재) 연세대 명예교수께서 최근 대한민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하였다고 사료됩니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 현직 변호사가 곧바로 SNS에 단지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고 해서 김 교수를 겨냥해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 것”이라고 언급하며 활동 나이를 ‘80세’ 정도로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고 합니다. 그런데 100세 시대가 도래한 오늘날 본의 아니게 결과적으로 나이 든 분들 모두를 대상으로 삼은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사실 자유민주사회에서 견해가 다르면 누구나 이에 대해 얼마든지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따지며 비판을 할 수 있는데, 엉뚱하게 나이를 걸고 넘어지는 것은 실속이 없는 비난에 그칠 뿐이겠지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특수상대성 이론에서의 ‘시간늘림(time dilation)’ 현상을 곁들이며 나이의 한계, 특히 80세를 넘긴 이후에도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며 치열하게 사셨던 분들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공을 뛰어넘어 얼마나 진한 감동을 주고 있는지, 세 분 사례를 중심으로 함께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 시간 늘림 현상

실험적으로도 검증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간늘림 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좌표계 S에 대해 좌표계 S'이 V라는 속도를 가지고 상대운동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S‘에 있는 관측자가 S’ 안에서 어떤 사건이 ∆t'이라는 시간간격 동안 일어났다는 것을 측정했을 때 S에 있는 관측자는 시간간격 ∆t를 ∆t = ∆t' / [1 - (V/C)²]½로 측정하게 된다.”

따라서 위의 관계식에서 알 수 있듯이 비록 ∆t'이 매우 짧은 시간일지라도 S'이 S에 대해 빛속도 C에 가까운 속도로 상대운동을 한다면 분모가 점점 0에 가까워지면서 ∆t는 한없이 점점 길게 늘어날 것입니다.

실제로 입자물리학의 연구대상인 소립자의 경우 대개 평균수명이 매우 짧습니다. 보기를 들면 ‘파이중간자’의 경우 정지해 있는 좌표계 S'에서 측정한 수명이 약 10-8초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소립자가 발견될 때마다 상대운동하는 좌표계 S에서 평균수명을 늘려 그 입자의 특성을 밝혀왔습니다.

◇ 스티븐 와인버그 교수

지난 7월 23일 88세의 나이로 별세한 미국의 스티븐 와인버그(1933-2021) 교수는 1967년 전자기력과 약력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일환으로 게이지 대칭성을 갖는 약한전자기이론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소립자와 매개입자의 존재도 함께 예견하였습니다. 1974년 그의 예견대로 참쿼크(c)와 그 반입자가 결합된 새로운 ‘제이프사이 입자’가 관측되면서, 그는 셸던 리 글래쇼(1932-현재) 및 압두스 살람(1926-1996) 교수와 공동으로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후에도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며 연구를 이어갔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기초과학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틈날 때마다 일반인을 위한 강연과 언론 기고 및 저술 등을 통해 미국 역대 정부의 과학 정책에 대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덧붙여 필자는 그의 주옥같은 논문들을 디딤돌로 삼아 다음 단계인 표준모형과 큰통일이론에 관한 주제로 1983년 2월 박사학위를 무난히 취득하였으며, 그 후 연구동료들과 함께 블랙홀 분야로 연구영역을 넓혀가면서 꾸준히 국제적 수준의 연구를 이어오며 올해 2월 무사히 정년을 맞이한 것에 대해 이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와 그의 영면을 간절히 염원드립니다. 참고로 그는 연구동료였으며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연구를 포함해 뛰어난 연구업적을 쌓으며 한국인으로 노벨상에 가장 근접했던, 이휘소(1935-1977) 박사를 존경했다고 합니다.

◇ 그랜마 모지스 화가

본래 이름이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Anna Mary Robertson Moses, 1860-1961)인 이 할머니 화가는 일찍이 12살에 부자집 가정부로 들어가 날마다 농장일, 청소, 음식만들기, 바느질 등 고된 노동으로 정신없이 보내느라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같은 농장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 27세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10명의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중 5명은 가난 때문에 병으로 사망을 했고, 20년 만에 자신의 농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1927년(67세)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농장을 돌보고 버터와 감자 칩을 만들어 팔며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그러다 관절염 때문에 더 이상 농장일을 할 수 없게 된 76세 무렵 여동생이 그림을 그려 보라고 조언하자 어린 시절 좋아했던 그림그리기의 꿈이 되살아났다고 합니다.

1938년(78세) 뉴욕의 미술품 수집가 루이스 칼도어를 만난 인연으로 다음 해인 1939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무명의 미국 화가들’ 전시회에 그녀의 그림 3점이 선을 보였습니다. 이어 1940년(80세) 오토 칼리르의 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 전시회인 ‘농장의 아내가 그린 것’이 열렸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파리의 국립 근대미술관, 모스코바의 푸시킨 미술관 등 15회 이상의 국제 전시회에 초청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100세 이후에도 그림을 25점이나 그리는 등, 1961년 뉴욕에서 101살의 나이로 세상 떠날 때까지 1,600점에 달하는 정감 넘치는 풍경화들을 남겼습니다. 참고로 당시 존 에프 케네디(1917-1963) 대통령도 그녀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녀는 삶 속에서 온몸으로 체득한 다수의 명언을 남겼는데, 늦깎이 화가답게 노익장을 격려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명언은 초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 우리 모두 깊이 새길만 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늘 ‘너무 늦었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시작하기 좋은 때입니다.”

◇ 조주종심 선사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는 스승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 선사를 입적하실 때까지 극진히 모시다가, 60세 때 ‘세 살 어린이라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울 것이요, 백살 노인이라도 가르칠 것이 있으면 가르쳐 주겠노라!’라고 선언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80세까지 중국 천하를 주유하며 구도 행각을 한 다음, 조주 관음원(觀音院)에 머물면서 120세까지 장수하며 참문하는 제자들을 일깨웠습니다. 그에 대한 멋진 일화들을 담은 <조주록(趙州錄)>은 지금도 선가(禪家)의 수행필독서로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한편 필자의 견해로는 <조주록>의 맨 처음에 수록되어 있으며, 또한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 선사가 엮은 <무문관(無門關)> 제19칙 ‘평상시도(平常是道)’에, 무문의 평창과 게송이 추가되며 완결된 형태로 수록된 이 공안(公案)은 조주 선사로 하여금 120세까지 진솔한 삶을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사료되어 소개를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칙(本則): 남전 선사께 조주가 여쭈었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남전 선사께서 대답하였다. “평상심(平常心)이 도이니라.” 조주가 다시 여쭈었다. “일상생활이 모두 도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향해 닦아 나아가야겠습니까?” 남전 선사께서 말하였다. “향하고자 하면 곧 어긋나느니라.” 조주가 다시 여쭈었다. “무언가를 향하여 닦지 않는다면 어떻게 도를 알겠습니까?” 남전 선사가 말하였다. “도는 아는 데에도 속하지 않고, 모르는 데에도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망령된 깨달음이며, 모른다는 것은 ‘멍한 상태[無記]’이니라. 그러니 참으로 향함 없는 도를 온몸으로 체득했다면, 참 본성은 텅빈 허공과 같이 탁 트여 막힘이 없으니, 어찌 시비를 따지겠는가!” 조주가 이 말에 크게 깨달았다.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 봄에는 백화가 만발하고 가을에는 달빛 밝으며/ 여름에는 바람 시원하고 겨울에는 흰 눈 내리네./ 만약 사소한 일조차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면/ 바로 이것이 인간세계의 ‘좋은 시절[好時節]’이니라.

만일 금괴를 포함해 고가의 귀중품을 소유한 경우, 아무리 첨단도난방지 시스템을 갖춘 금고에 보관을 하더라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때문에 늘 도난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어떤 것에도 마음 두지 않는다면 더이상 사소한 일조차 집착할 일이 없게 될 것이고, 이럴 경우 평상심이 흔들릴 일은 결코 없겠지요.

한편 ‘고불(古佛)’이라는 별칭까지 붙으며 중국 천하에 칭송이 자자했던 조주 선사께서 철저히 자신을 뭉개버리는, <조주록>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다음과 같은 일화는 각계각층을 선도하는 지도자 모두 깊이 새겨야할 대목이겠지요. “어느 때 한 승려가 조주 선사의 초상화[眞影]를 그려 바쳤다. 그러자 선사께서 ‘만일 나를 닮았으면 나를 때려죽일 것이요, 닮지 않았다면 이를 즉시 불살라 없앨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추측하자면 돌아가실 무렵 그림 그리는 제자가 가능한 실물에 가깝게 스승의 모습을 남겨 늘 곁에 두고 추모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일 누구나 조주 선사처럼 자신에 대한 우상화를 철저히 경계했던 이런 태도를 온몸으로 체화한다면, 결코 스스로를 과시하며 드러낼 일도 감출 부끄러운 일도 없이 날마다 자신만의 멋진 일상을 이어갈 수 있겠지요.

끝으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물질계에서 시간늘림 현상이 가능하듯이 정신계에서도 평상심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하고자 하는 일에 철저히 몰입할 수 있기에,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하루하루를 보다 길게 활용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이번 추석 연휴 기간동안 ‘평상심시도’를 깊이 성찰하고 평상심 회복과 유지에 온몸을 던져, ‘80세’를 기준으로 이를 넘는 것이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하는 이원적 분별심은 철저히 내던져버리고, 길든 짧든 관계 없이 남은 생애 동안 인연 닿는 길벗들과 함께 정(情)을 돈독히 나누며 날마다 좋은 시절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 드려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입자이론물리 전공)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한편 1975년 선도회 초대 지도법사였던 종달 선사 문하로 입문했으며, 1987년 스승이 제시한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0년 종달 선사 입적 이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또한 1991년과 1997년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께 두 차례 입실점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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