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조향·제동장치 및 부품 등 안전기준부적합, 매출액 2% 과징금 부과
차종별 매출액 2%, 과징금 상한액 50억원 또는 10억원 초과분은 감액
5년 전에는 매출액 0.1% 불과… 선진국 조(兆) 단위 과징금 부과와 대비

자동차보험료는 사고 발생 횟수와 사고 내용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다만 경미한 사고라도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 픽사베이
자동차 결함은 탑승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한국 정부는 결함 관련 과징금을 매출의 2%만 부과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상한선을 마련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 모습이다. / 픽사베이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자동차를 만들어 국내에 판매하는 차량 제조사는 자기인증시스템을 기반으로 자신들이 제조·판매한 차량의 안전성 및 시험성적서 등에 대해 보증을 한다. 그럼에도 일부 차량들에서는 경미한 결함부터 중대결함까지 나타나고 있다. 차량을 판매한 후 결함에 대해 인지하고 시정조치(리콜)를 시행하는 경우에는 과징금이 부과되기도 하는데, 이 과징금 수준이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경우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해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국내 시장에 판매한 차량에서 안전과 직결된 결함이 발견되는 경우, 정부가 해당 차량 제조사에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은 자동차관리법 및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등에 따라 차종별로 최대 50억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별표1의 3에 따라 △주행장치 △조향장치 △제동장치 △연료장치 및 전기·전자장치 △차체 및 차대 등 차량 주요 부분이 국내 자동차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는 경우에 적용된다.

과징금 산정 비율은 앞서 언급한 중대결함이 나타난 차량의 매출액 가운데 100분의 2에 해당한다. 그러나 중대결함이 있는 차량 매출액 2%가 50억원을 초과할 경우에는 초과분에 대해서는 감경을 해 최대 50억원을 부과한다.

주행 및 조향장치나 제동장치, 차체 및 차대 결함 등은 탑승자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중대결함이다. 그럼에도 과징금에 상한을 책정해둔 모습이다.

그 외 조종장치나 등화장치, 시야 확보 및 영상장치 등 차량의 구조 및 장치가 자동차 안전기준에 부적합하거나 안전 또는 성능상 문제를 초래할 경우에는 해당 자동차 매출액의 2%를 부과할 수 있으나, 이 역시 10억원으로 상한선이 마련돼 있다.

최근 이러한 사례로 과징금 10억원을 부과 받은 제조사 및 차종은 △BMW X5 x드라이브30d 등 14개 차종(6,136대) △혼다 오딧세이 등 2개 차종(3,748대, 3,083대) 등이 있다.

BMW X5를 비롯한 14개 BMW 차종은 자동차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제47조(그 밖의 등화의 제한)에 따라 과징금 10억원이 부과됐다. 혼다 오딧세이는 2018∼2020년식 모델에서 계기판 속도 미표기 오류가 나타나 과징금 10억원, 2019∼2020년식 모델에서 후진 개시 후 2초 내 표시되지 않는 사례가 발견되고, 후방카메라 영상이 화면에 표시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 각 10억원과 7억5,806만원 등 총 27억5,806만원이 부과됐다.

해당 사례 중 BMW X5는 1억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차량이며, BMW 차량 중 인기 모델인 3시리즈나 5시리즈 판매가격이 5,000만원∼8,000만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총 6,136대의 매출은 최소 3,000억원 이상이며, 평균 판매가격을 7,000만원으로 가정하면 4,300억원에 달한다. 해당 매출의 2%는 60억원∼86억원 수준이다. 그럼에도 과징금 상한선 덕에 10억원의 과징금에 그쳤다.

혼다 역시 마찬가지다. 혼다 오딧세이 2018년식 이후 모델은 국내에 5,700만원 수준에 판매가 됐는데, 계기판 속도 표기 오류 차량이 3,748대로 매출액은 2,100억원을 넘어선다. 이 매출액 기준 2%는 42억원을 넘어선다. 차량 가격의 10% 할인을 감안하더라도 매출액은 1,800억원 이상이며, 과징금 부과 기준인 매출액 2%는 37억원∼38억원 수준에 달한다. 그렇지만 혼다 오딧세이 역시 계기판 결함에 대해서는 과징금 상한 기준에 의해 10억원의 과징금만 부과 받았다.

이마저도 5년 전에는 과징금 부과 기준이 매출액의 1,000분의 1(0.1%)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으로 인상된 수준이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해 260억원의 벌금을 선고를 받았다. /뉴시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배출가스 조작과 관련해 지난해 260억원의 벌금을 선고 받았다. /뉴시스

과징금 부과 기준이 상향된 시점은 지난 2015년 전 세계 자동차 업계와 시장을 뒤흔든 디젤게이트 사태 이후다. 당시 한국 정부는 디젤게이트를 촉발시킨 폭스바겐그룹에 폭스바겐 및 아우디 15개 차종의 리콜명령과 함께 당시 기준에 따라 141억원의 과징금만을 부과했다. 지난해 1심 선고 공판에서는 260억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반면 미국 정부에서는 폭스바겐그룹을 상대로 최대 900억 달러(약 108조원) 규모의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으며, 최종적으로 43억 달러(약 5조원) 규모의 벌금을 부과했다. 독일 검찰은 폭스바겐에 10억 유로(약 1조3,000억원)의 벌금명령을 내렸고, 폭스바겐 측은 이를 수용했다. 국내 과징금 수준과 비교하면 상당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현재 국내법 상 자동차관리법을 위반해 차량을 판매한 경우 과징금 상한액을 지정하지 않은 항목은 결함을 은폐·축소 또는 거짓 공개, 결함을 인지하고도 시정하지 않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고의로 배출가스 성분을 조작하거나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도 시정하지 않는 경우가 포함된다. 이 경우 해당 차종 또는 해당 차량의 부품 매출액의 100분의 3(3%)을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결함 등에 대해서는 모두 과징금 상한선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도 디젤게이트 이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일부 도입해 과징금을 최대 5배까지 부과하고 있기는 하지만 과징금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업 측에 부담이 되는 선에서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안전과 직결되는 결함에 대해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부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친기업적인 정책이 많다고 볼 수 있어 과징금 기준을 높여 기업이 소비자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부담을 더 가중할 필요(과징금 부과 상한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국토교통부 측 관계자는 “과징금을 상향하는 것은 결국 규제를 강화하는 것인데, 이는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기준이 상향될 수 있다”며 “당장에는 기준이 낮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과징금 부과 체계를 마음대로 설정할 수는 없으며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디젤게이트 이후 환경부는 대기환경보전법을 대폭 강화해 자동차 인증 위반행위에 부과하는 과징금 요율을 매출액의 100분의 5(5%)로 높이고 과징금 상한액은 차종당 500억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자동차 인증 위반행위는 안전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국토부의 자동차관리법의 과징금 부과 기준과 비교하면 매출액 기준 부과 비율과 상한액이 상당히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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