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 상 처방 거부 시 의료법 ‘진료거부 금지’ 저촉… 무조건적 처방 가능성
‘낙태 요청 거부’ 포함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 국회 통과 못해
낙태약, 시술보다 안전하다는 근거 없어… 허가절차 신중해야

경구용 임신중단약물 미프진. / 게티이미지뱅크
경구용 임신중단약물 미프진의 국내 도입을 두고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현대약품이 국내에 도입을 추진 중인 인공임신중절(낙태) 유도 약물 ‘미프지미소(해외 판매명: 미프진)’의 허가 절차에 대해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현행법상 낙태약 미프진 약물이 허가될 경우 산부인과 전문의는 환자의 처방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처방 및 복용방법도 마련되지 않아 오남용 우려가 큰 상황이다.

현대약품은 지난 3월 낙태약 미프진을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과 국내 판권 및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미프진의 품목허가를 신청하고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미프진이 허가될 시 낙태를 원하는 임산부가 산부인과 또는 약국 등에서 해당 약물의 처방을 요청할 시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국내 의료법 제15조에 따르면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임산부가 미프진 복용을 원하는 경우 무조건적인 처방이 이뤄져야 하는 문제점이 상존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와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각각 지난해 11월 18일과 12월 1일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의사가 산모의 낙태 시술 및 약물 처방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서정숙 의원은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에 ‘제14조의3 인공임신중절 요청의 거부’ 조항 신설을 제안했다. 해당 내용은 낙태보다 의사 개인의 신념을 더 중요시 여겨 의료법 제15조 진료거부에도 불구하고 낙태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제안 내용도 이와 동일하다.

하지만 정부와 서정숙 의원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은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러한 논란이 상존함에도 현대약품은 낙태약 미프진의 도입을 추진한 것이다.

서정숙 의원은 이와 관련해 지난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프진의 특성과 처방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자 나성훈 강원대 산부인과 교수 겸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를 참고인으로 요청해 질의를 진행했다.

나성훈 교수는 미프진 사용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나 교수는 처방 주의점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에 의해서 초음파 검사로 정상 임신(자궁 내 임신)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게 가장 제일 중요하고 그 이후에 복용을 해야 한다”며 “만약에 예를 들어서 자궁 외의 임신이 된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약을 복용하게 된다면 시기를 놓쳐서 (자궁 내) 파열이 일어나고, 과다 출혈로 인해 사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약물 낙태는 수술보다 출혈이나 통증이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수술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며 “치료하는 방법은 충분히 산부인과 의사와 산모와의 상담이 필요하리라 생각이 들고, (약물 낙태는 낙태를 원하는) 산모가 선택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지 어느 것이 월등하다(안전하다)는 것은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없다”고 우려했다.

또한 “독일이나 영국에서도 안전하게 병원에서 복용하도록 권유하고 그렇게 하고 있으며, 안전을 위해서도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고, 필요한 임상 연구나 이런 것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약품 측은 미프진의 국내 허가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가교임상 면제를 위해 캐나다의 미프진 허가 자료를 식약처에 제출한 상황이다. 가교임상이란 외국 약물이 국내에서도 동일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증용 임상시험의 일종이다. 가교임상을 진행할 경우, 약품의 허가 시일이 2∼3년 정도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현재 미프진은 해외 76개국에서 사용 중이다. 현대약품은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것을 강조해 국내에서 임상을 진행하지 않고 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시판일을 앞당기려는 모습이다.

서정숙 의원은 8일 이어진 복지위 국감에서 미프진 허가와 관련해 “낙태약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적인 선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서 의원은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로 인해 입법 공백이 지금 발생한 상태인데, 미프진을 허가한 후 복용을 병원 내에서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약사법 23조에 의하면 대통령령을 개정해야 하는데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며 “대통령령 개정을 위한 국무회의 논의와 보건복지부와의 협의, 전문가 집단의 의견 수렴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미프진의 도입은 약물 낙태라는 ‘새로운 의료체계를 도입’하는 것이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낙태에 관해서는 국회법 개정을 통해 낙태 결정 전 상담 절차, 의료인의 낙태 거부 또한 보장 그리고 산모의 보호 등과 같은 복잡한 쟁점들이 결정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강립 식약처장은 “안전에 대한 검증도 중요해 제출된 임상자료를 분석하고 WHO(세계보건기구) 가이드라인도 참고하겠다”며 “76개국에서 30년간 사용되고 있는 만큼 리얼월드데이터도 참고하고, 전문가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논의를 거치겠다”고 말했다.

이어 “복용방법에 있어서는 안전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지도 전문가 자문을 거쳐서 검토하는 한편, 가능하다면 입법적인 공백이나 여건을 마련하고 같이 진행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라며 “이러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식약처에서도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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