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2 18:34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정치, 누가 하는 게 좋을까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정치, 누가 하는 게 좋을까
  • 김재필 사회학 박사
  • 승인 2021.10.1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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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75-222) 전략가들의 책략을 편집해 놓은 책인 『전국책 戰國策 』에 전국시대의 전설적인 명의(名醫)인 편작(扁鵲)이 진(秦)나라 무(武)왕 앞에서 석침을 내던지는 이야기가 나오네. 그 전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네.

진나라 무왕은 뺨에 악성 종양이 생겨 고통이 심하자 당대의 명의인 편작에게 진료를 청하네. 꽤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진찰을 한 편작이 말하네. “종양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일 수술을 해드리겠습니다.”편작이 나가자 신하들이 왕의 주위에 모여 수술을 반대하네. 종양이 있는 위치가 귀 앞의 눈 밑이어서 제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눈이나 귀를 멀게 할 우려가 있다는 거였네. 다음날 편작이 오자 무왕은 신하들의 말을 전하고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네. 그 말을 들고 화가 난 편작이 침을 내던지면서 말하지. “임금님과 전문가인 내가 좋다고 한 일을 문외한들이 그르치고 있습니다.”

편작이 화가 날만하지 않는가? 임금님 옆에서 정치만 했던 신하들이 종양에 관해 아는 게 뭐가 있겠는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체면치레하느라 한 마디씩 거든 게 일을 망친 거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정치가가 전문가고, 병을 고치는 일은 의사가 전문가야. 나라를 다스리면서 병도 고치는 일은 아주 먼 옛날 무당들이나 했던 짓이지. 특히 요즘처럼 사회 각 부문이 고도로 세분화되고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다양화된 세상에서는 자기 전문 분야가 아니면 함부로 나서지 말아야 하네.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거든.

며칠 전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폐쇄 타당성 감사로 탈원전을 반대하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전폭적 지지를 받자 감사원장을 중도 사퇴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하여 대선출마를 선언했던 분이 2차 예비경선도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했더군.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켰다는 거센 비판을 무릅쓰고 참여한 야당의 예비경선에서 그는 왜 4강에도 들지 못했을까? ‘정치’는 누구나 하는 것으로 가볍게 보고 시작했기 때문이야. 급격한 산업화와 탈산업화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갖고 있는 신생‘선진국’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려고 나선 사람이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기자들의 현안 질문에 응답 못하고 쩔쩔매면서 “더 공부하겠다”, “준비된 답변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으니 지지율이 오르지 않을 수밖에. 한때 여론조사에서 2위를 차지해 야권의 ‘구원투수’로 주목받았던 분인데 백일도 버티지 못하고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고 말았어.

정치를 가볍게 보고 준비 없이 대선에 뛰어든 또 한 사람이 있네. 이 분은 대선 출마를 위해 검찰총장 직을 중도 사퇴했는데, 본인과 가족들의‘엑스파일’이 떠돌아다닐 정도로 복잡한 사연과 사건들이 많더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동양의 옛 기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네. 게다가 준비 없이 갑자기 정치에 뛰어들어서 그런지 ‘1일 1실언’이라는 놀림을 당할 정도로 상식에 어긋나는 말들을 자주 쏟아내고 있어. 그 중 하나만 옮기네. “인문학이란 건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며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면 그렇잖아도 천대를 받고 있는 인문학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네. 인문학에 대한 이런 생각이 그가 하는 많은 실언의 원인인 것도 같고.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정치’는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한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네. 일반 국민들도 고시에 합격한 판검사나 변호사, 고위 행정 관료 출신들이면 정치도 잘 할 것으로 믿고 있고. 그래서 고시 출신 국회의원들이 많지. 21대 국회의원들 중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출신이 62명으로 20%를 넘었네. 정말 고시 출신들이 정치를 잘 할까? 난 그렇게 믿지 않네. 이미 가질 것 다 가진 고시 출신 정치인들이 서민들의 이해관계를 정책결정에 제대로 반영할 리 없거든.

우리나라 정치가 아직도 다른 부문에 비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전문 정치인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네. 정치가 국민들의 삶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부터 정당이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기초의회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 국회의원도 하고 도지사도 했던 정치인들이 대통령도 되어야 하네. 보수언론이나 보수정당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라 미국에서 찾아보게. 감사원장이나 검찰총장 하다가 갑자기 대통령 된 사람이 있는가?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도 젊었을 때부터 정치적인 훈련이 필요한 자리이야. 편작(扁鵲)이 지금 우리 정치판을 보면, 문외한들이 나서서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일갈하면서 석침을 내던져버릴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