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 DB그룹 회장은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 일대에 농지 틍 토지를 대거 보유 중이다. /권정두 기자, DB그룹 홈페이지
김남호 DB그룹 회장은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 일대에 농지 틍 토지를 대거 보유 중이다. /권정두 기자, DB그룹 홈페이지

시사위크|음성=권정두 기자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하는 데에 필요한 기반이며 농업과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한정된 귀중한 자원이므로 소중히 보전되어야 하고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농지에 관한 권리의 행사에는 필요한 제한과 의무가 따른다. 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이용되어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농지에 관한 기본 이념을 규정한 농지법 제3조의 내용이다. 이렇듯 농지는 단순한 ‘땅’을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의 농지 보유가 법에 의해 철저히 제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지법 제6조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물론 여러 예외규정이 있지만, 농지는 농사를 짓는 사람만 소유하는 것이 기본 대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가 아닌 투기 등의 목적으로 농지를 보유해 논란이 불거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가깝게는 LH사태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이에 각종 불법·편법·탈법적 농지 소유는 최근 사회적으로 상당히 민감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때 10대 그룹의 한자리를 차지했고, 중대 위기를 겪은 이후인 현재도 재계 30위권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DB그룹의 김남호 회장이 오랜 세월 농지를 소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김남호 회장 소유의 배 과수원. 정상적인 과수원과 달리 과수가 웃자란 모습이다. 인근에서 과수원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은 이 과수원이 농사를 전혀 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권정두 기자

◇ “영농활동 하고 있다”는 DB그룹… 인근 농민은 “그 사람이 농사 짓겠나”

김남호 회장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곡리 일대에서 농지와 임야 등 토지를 대거 매입했다. 이곳은 수레의산과 수리산이 위치한 곳으로, 시골마을 중에서도 민가조차 많지 않은 산골마을이다.

그의 이 같은 토지 보유는 당시에도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며 적잖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유학생 신분일 때 토지를 매입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영농활동 여부 및 토지 보유목적을 두고 커다란 물음표가 붙었다. 이에 대해 당시 DB그룹 측은 김남호 회장이 주기적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현재, <시사위크>가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통해 확인한 결과 김남호 회장은 여전히 차곡리 일대에 농지 등 토지를 보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DB그룹의 입장 역시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김남호 회장이 한 달에 1~2번 내려가 직접 농사를 짓고 있다고 밝혔다. 

DB그룹 측 해명대로라면 김남호 회장이 경영과 농사, 소위 ‘투잡’을 뛰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영을 챙기기에도 시간이 빠듯한 재계 회장으로선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김남호 회장은 불과 지난해 7월 성폭행 사건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부친의 공백을 메우며 회장에 취임한 상태다. 

김남호 회장 소유 과수원에 열매가 썩은 채 매달려 있다. /권정두 기자
김남호 회장 소유 과수원에 열매가 썩은 채 매달려 있다. /권정두 기자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살펴본 김남호 회장 소유 농지는 DB그룹 측 해명과 대립되는 측면이 적지 않았다.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찾은 차곡리는 날씨 때문인지 더욱 적막하게 느껴졌다. 가장 먼저 찾은 과수원은 도로변에서 임도를 따라 10여분 걸어 올라가니 등장했다. 나란히 심어진 나무들은 모습은 영락없는 과수원이었지만, 다소 이상한 점도 눈에 띄었다. 정상적인 과수원은 원활한 재배 및 수확을 위해 가지치기가 잘 돼있고, 파이프 등의 설비가 설치돼 있곤 한다. 그러나 이곳의 과수들은 가지들이 웃자라있는 모습이 뚜렷했다. 설비들도 제대로 설치돼있지 않은 모습이었고, 일부는 망가진 채 방치돼 있었다.

이곳의 실태는 인근에서 과수원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도 “김남호 회장이 무슨 농사를 짓겠느냐. 오랫동안 이곳에서 농사짓고 있지만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 가끔 용역인지 하는 인부들이 와서 풀만 깎고 가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거듭해서 김남호 회장의 과수원이 농사를 짓지 않고 있다고 강조한 그는 “약을 제대로 치지 않다 보니 인근의 우리 과수원이 피해를 입는 면도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이 일대에 김남호 회장 땅이 모두 마찬가지로 농사를 짓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김남호 회장 소유의 목장용지엔 폐가만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었다. /권정두 기자
목장용지와 맞닿은 농지는 진입 자체가 쉽지 않은 상태다. /권정두 기자

과수원이 있는 곳으로부터 다시 차로 3분여를 달리자 이번엔 김남호 회장 소유의 목장용지와 전, 답 등의 토지에 도착했다. 이곳엔 폐가가 방치된 상태였으며, 뒤편으로 있는 농지는 접근하기 위한 길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더욱 깊은 야산 속에 위치한 농지로 향했다. 이곳은 차로 진입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야 했다. 앞서 사람이 올라간 흔적을 아주 조금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는 얼마 전 벌초 및 성묘 차 묘지를 찾은 데 따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김남호 회장 소유의 농지는 너무 깊은 야산에 위치해 있어 끝내 직접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이번엔 도로변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농지를 찾았다. 이곳 역시 농사의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인근에서 작은 밭을 일구고 있는 한 주민은 “3~4년 전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왔는데, 김남호 회장은 본 적이 없다”며 “(김남호 회장 소유 농지) 그쪽엔 나무 몇 그루 심어놓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깊은 야산에 위치한 김남호 회장 소유 농지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도 폐건물이 눈길을 끈다. /권정두 기자

이처럼 현장에서 살펴본 김남호 회장 소유 농지는 DB그룹 측 설명과 달리 농사를 짓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물론 이것이 농지법 위반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농지 소유에 대한 여러 예외조항이 존재하는데다, 농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또한 김남호 회장은 2014년 농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돼 조사를 받았으나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아울러 DB그룹 측은 “의무경작 기간이 지나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김남호 회장 소유 농지는 수풀이 우거져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권정두 기자

하지만 김남호 회장의 농지 소유가 농지법의 가장 기본적인 취지와 원칙에 부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농지법은 농지가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관리돼야 하고,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이용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본 김남호 회장의 농지는 방치되고 있는 쪽에 가까웠다. 자연스레 그의 진짜 토지 보유 목적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한편, 이에 대해 DB그룹 측은 “농지법상 8년 이상 농업에 종사하면 토지소유가 농지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각종 과수나무 등을 경작하고 있다”며 농사를 짓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평소 나무 식재나 조경에 관심이 있던 김남호 회장이 근처의 레인보우 골프장(DB그룹 소유)을 자주 방문하던 상황에서 인근에 있던 해당 농지에 나무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매실, 배 등 과수나무를 심었다. 다만, 현재 식재된 과수나무가 토양과 맞지 않아서 일부 고사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품종을 심어서 과수단지를 조성할 것인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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