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북한전문 저널리스트(북한학 박사)
이영종 북한전문 저널리스트(북한학 박사)

올 12월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무척 의미 있는 시점이다. 선대 수령이자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지 만 10년이 되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의 급작스런 사망(사인은 심근경색)은 27살 청년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을 북한 체제의 최고지도자로 등극시켰다. ’어린 나이에 제대로 통치할 수 있을까‘하는 세상의 우려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한·미 당국의 판단이 나올 정도로 바뀌었다.

집권 초기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핵과 미사일 드라이브는 거셌다. 4차례의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을 통해 핵 보유국 주장은 물론 ’미국 본토 타격‘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집권 이듬해 말에는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반역죄‘로 전격 처형하는 등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숙청과 처형을 단행했다.

평양 순안공항을 국제공항 수준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을 비롯해 뉴타운 수준의 개발과 고층 주상복합 및 아파트 건설 등으로 엘리트와 핵심층의 지지기반 확충에도 주력했다. ‘민생 챙기기’와 ’애민 정치‘를 부각시켜 주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힘쓰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2012년 4월 15일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언급한 대목은 기대를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전과 달라진 건 대외행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의 첫 북미 정상회담은 ’역사적인‘이란 수식어가 붙을 수밖에 없는 외교 이벤트였다. 비록 이듬해 2월 하노이 회담이 노딜에 그치면서 교착상황을 맞았지만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고 담판을 시도한 북한의 최고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는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대전환을 꾀하고 판문점과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3차례의 정상회담을 한 화해·협력의 기류가 작용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펜더믹은 순항하는 것 같던 김정은 체제에 메가톤급 도전 요소로 닥쳤다. 열악한 보건·의료 및 방역 실태는 외부로 통하는 육해공 루트를 모두 닫아걸게 만들었다. 자칫 체제의 존립을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 지난해 1월 이뤄진 차단조치는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최근 11월 29일자 보도에서 코로나19 새 변이종인 ’오미크론‘의 등장을 언급하면서 “세계적으로 또 다시 델타변이 비루스(바이러스)보다 전염력이 5배나 강한 새로운 종류의 변이 비루스가 발견되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며 긴장도를 높이는 모습을 드러냈다.

심각한 문제는 북중 간 교역이 막히거나 급감하면서 식량과 생필품 등의 조달이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2년 가까운 ‘셀프 제재‘로 북한 경제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온 장마당에 물건이 동나고, 방역조치로 인해 운영 시간도 제약을 받으면서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백신의 경우도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을 그냥 받아들이기 찜찜한데다 중국산 백신의 신뢰도 문제, 백신을 제대로 유통·접종 할 콜드체인 시스템 미비 등으로 사정이 여의치 않다.

북한 체제의 숨통을 트여줄 대북제재 해제 문제는 2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담판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 조 바이든 대통령 체제에서도 북핵 문제와 관련해 비핵화에 일정한 진전이 있기 전에는 제재를 풀기 어렵다는 입장을 미국은 확고히 하고 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최근 북한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영변 핵 단지에 부속건물이 새로 등장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이 핵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는 동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미국의 입장 변화를 이끌기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진퇴양난 국면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던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빨간불이 켜졌다. 내년 2월로 잡힌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중국이 판을 깔아주고 남북한과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나 고위 당국자가 만나 북한 문제와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 등을 논의할 좋은 계기로 꼽혔다. 하지만 11월 18일 바이든 대통령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문제를 언급하고 영국·호주 등이 동조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꼬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안팎에서 체제의 도전요소들이 스멀거리는 양상일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 동안의 집권 성과를 엘리트와 주민에게 알리고 체제결속을 통해 향후 집권 플랜을 짜야하는 시점이란 점에서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언했던 민생문제의 해결이 어려워진 상황이 부담이다. 세계식량계획(WFP)등 국제기구는 북한 주민의 40%인 1,100만 명이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내왔다.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던 김정은 위원장의 언급은 슬그머니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젊은 세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도 북한 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의 MZ세대에 해당하는 20~30대 청년층은 기성세대보다 자유분방함을 특징으로 한다. 북한의 청년 세대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요 등을 주축으로 한 서방문화에 빠져있다. 

같은 세대로서 이들의 생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외부문화에 침습되면 물먹은 담벼락처럼 허물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한류 문화를 시청한 경우 5~15년의 노동교화형, 유통이나 복제 등을 한 경우 무기~사형까지 가능케 하도록 했지만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11월 중순 백두산이 있는 양강도 삼지연시를 방문했다. 코로나19로 평양에 칩거하던 김정은 위원장의 올해 첫 지방 나들이다. 집권 10년을 앞두고 백두산을 찾은 그의 심경과 통치 10주년, 그리고 내년 신년사를 통해 내놓을 메시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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