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서예진 기자  대통령도 아닌 ‘영부인이 될 사람’에게 이만큼 관심을 가졌던 대선이 있었던가. 그러나 대통령 가족에 대한 검증은 시대정신이 된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의 의혹은 정치사에 연일 새로운 장면을 선사하고 있다.

지난 26일 김 씨가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이 있었다”고 밝혔다.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김 씨의 기자회견은 다른 점에서 화제 몰이를 했다. 사과문의 내용 때문이다. 

김 씨는 기자회견에서 “남편을 처음 만난 날 검사라고 하기에 무서운 사람인 줄만 알았다”, “몸이 약한 저를 걱정하며 밥은 먹었냐 전화를 잊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치고 후배들에게 마음껏 베풀 줄 아는 그런 남자” 등의 발언을 했다. 김 씨의 사과를 두고 민주당 뿐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신파 코미디’, ‘사과를 빙자한 러브스토리’, ‘사과 하랬더니 연애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국민의힘에 호의적이지만 반(反) 윤석열 성향인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도 ‘오늘 자 김건희 사과 요약’이라는 제목의 패러디 영상이 올라왔다. 해당 영상엔 김 씨가 ‘다정한 남편’을 묘사한 대목에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OST로 유명한 가수 신승훈의 ‘I believe’가 삽입돼 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I believe’는 견우(차태현 분)가 그녀(전지현 분)의 다음 남자친구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는 장면에 배경 음악으로 깔린다. 이 장면은 20년이 지나도 명장면으로 꼽히는데, 김 씨의 ‘다정한 남편’ 묘사가 이 장면과 흡사하다며 나온 패러디인 것이다. 네티즌들에게는 김 씨가 남편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자리로 보였다는 의미가 아닐까. 

김 씨는 남편과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 때문에 남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말아달라며 감성에 호소했다. 이는 동정론을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인이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이 있었다”고 밝혔다면, 입장만 밝히고 끝날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반 회사에서도 이력서를 허위로 기재할 경우 채용 취소 사유가 된다. 그러나 김 씨는 아내의 역할만 강조했을 뿐이다. 이쯤되면 ‘엽기적인 그녀’가 아니라 ‘엽기적인 사과’다. 

하지만 ‘공정’과 ‘상식’이 윤 후보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다. 김 씨가 ‘엽기적인 사과’만 던져놓고 선거판에서 사라진다면 윤 후보의 이미지 역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학력위조를 했던 신정아 씨는 전국민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니 김 씨가 남편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엽기적인 사과’가 아니라 ‘공정과 상식’에 맞는 행보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어째서 김 씨의 사과 이후 배경음악으로 ‘I believe’가 깔린 영상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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