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북한전문 저널리스트(북한학 박사)
이영종 북한전문 저널리스트(북한학 박사)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희망의 2022년 새해를 맞는다. 코로나19의 집요한 공세에다 사회를 뒤흔든 크고 작은 사건들로 그동안 많이 어수선했다. 눈빛을 마주한 대면접촉이나 소통이 사라지거나 위축되면서 몸과 마음은 지쳤다. 그나마 우리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한 많은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야를 조금 넓혀 휴전선 너머 북한 땅을 살펴보자. 코로나의 파장은 퍽퍽한 삶을 살아온 북녘 동포들의 일상에도 번졌다. 가뜩이나 열악하고 부실한 보건·의료 시스템이 민생을 덮치고 북한 당국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뚫리면 끝장‘이라는 비장함 때문이었을까. 코로나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지난 2020년 1월, 북한은 외부로 향하는 문을 모두 닫아걸었다. 벌써 2년 동안 강력한 봉쇄조치가 이어지다 보니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가뜩이나 주민 40%인 1,100만명이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린다는 국제기구의 보고서가 잇따르던 상황에 코로나 사태까지 더해졌으니 설상가상이다. 중국으로부터 유입돼야 할 식량과 생필품 등이 끊겼고, 북중 변경지역을 통한 밀무역마저 중단됐다.

무엇보다 코로나 백신이나 진단키트, 방역 기자재 등의 제공으로부터 완전하게 소외된 점이 안타깝다. 물론 북한은 현재까지도 ’확진자=0명‘이라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지만 지구상의 거의 유일한 청정국이란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국제적인 백신 공급망인 코벡스(COVAX)의 잇단 지원 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수용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백신을 운반·보관할 콜드체인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기술적 이유 때문이란 관측도 있고, 반입 과정에서 코로나가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안 받는 건지 못 받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느 경우이던 코로나 공포에 숨죽이고 있을 북한 동포들에게 보탬이 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남북 간의 신뢰라도 두터운 상황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선수단 참가와 그해 4월과 5월 잇단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9월 평양 정상회담까지 치닫던 시절을 떠올리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센토사에서의 첫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가능성을 높이는 듯했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 대화도 파국에 가까운 상황이 이어져 왔다. 

이런 현실을 가장 눈물겹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북녘에 두고 온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어 애태우는 실향민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장기간 중단상태를 맞으면서 북한 땅의 부모 형제를 만날 수 있을까하는 실향민들의 실낱같은 희망도 사려져간다. 연말연시와 설 명절 때 그리움이 더하는 것도 그렇지만, 북녘의 겨울나기가 얼마나 고단할지 짐작하는 이산가족들의 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금강산에서 남북 각 100명씩 만나던 상봉행사는 지난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차례 열린 이후 기약이 없다. 2000년 6.15 공동선언으로 1차 상봉이 이뤄진 뒤 21차례 이산가족 만남이 이뤄지는데 그쳤으니 1년에 한차례 정도 상봉행사를 한 셈이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뒤로한 채 대한민국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 빠져들고 있다. 어느 쪽이든 만족스런 후보가 없다는 ‘인물 고갈론’부터 도덕성이나 흠결을 파고드는 이전투구까지 벌어지면서 사활을 건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아쉽고 우려되는 건 대선에 나선 후보들 가운데 제대로 된 통일비전이나 경색된 남북관계를 돌파할 정책을 제시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챙기고 살펴야 할 현안은 방대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과 노동 및 고용, 청년 문제와 기회 균등을 비롯한 민감하고 민생과 직결되는 이슈가 우선순위로 꼽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헌법 66조 3항이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적어도 대선 후보로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리더십과 비전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기 위해선 나름대로의 통일정책이나 남북 통합의 청사진을 국민과 유권자 앞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코로나 등 코앞에 닥친 현안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한반도 정세는 미묘한 기류에 휘말리며 출렁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띠고 있고, 주변국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맞춰 이합집산을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이란 가치를 내세워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자신의 3연임을 굳히기 위해 힘을 대외적으로 투사하며 그동안 키워온 근육을 과시하려 들고 있다.

이런 정세 속에서 내년 3월 대선을 거쳐 5월 취임할 차기 대한민국 대통령은 중차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공산이 크다. 코로나 사태가 불러올 대내외적 변화에 대처하면서 한반도와 주변 정세의 격랑에 맞서야 하고, 안으로는 경제와 민생 등을 챙겨야 하는 그야말로 복합방정식을 푸는 수준의 어려움을 치러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12월 17일로 집권 10년을 넘긴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큰 고민거리로 다가올 게 분명하다. 핵과 미사일을 거머쥐고 북미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대미협상을 벌였던 북한은 하노이 회담 노딜 이후 절치부심해왔다. 코로나와 대북제재, 경제난 등 3중고로 인해 엘리트와 주민의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도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부담이다. 어떤 식으로든 2022년 새해에는 생존전략 차원의 돌파구를 마련하려 나설 것이고, 첫 단추는 남북관계에 있어 모종의 책략과 변동을 시도하는 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은 이런 정세변화의 흐름을 간파하고 한반도의 미래비전을 예견하는 대통령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지금 당장 통일에 대한 철학과 정책 역량을 갖추기 쉽지 않겠지만 남은 대선 기간에라도 꾸준한 관심과 노력으로 한발씩 앞으로 나갔으면 한다. 전문가·학자의 조언 뿐 아니라 후보 스스로 탈북민을 만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설날에는 고령의 실향민을 만나 눈물을 닦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민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통일에 대한 견해와 정책, 비전을 밝혔으면 한다. 

어쩌면 그런 발걸음이 자신의 임기 중에 ’통일대통령‘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 파노라마의 시작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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