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당국이 코로나19 방역패스 적용 범위를 대형마트 등으로 확대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분실했거나 스마트폰 이용이 어려운 노인 및 저소득층 국민들의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직장인 A씨(29)는 신년을 맞아 친구들과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하기 위해 치킨집에 들렀다. 하지만 치킨집에 도착해서야 자신의 스마트폰을 친구의 집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휴일이라 연락 올 만한 곳도 없었기 때문에 A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A씨는 곧 이것이 매우 큰 실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모바일 방역패스’가 없이는 치킨집에 출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제 한 독자가 <시사위크>에 제보한 이야기다. 제보자 A씨에 따르면 결국 A씨와 친구들은 방역패스를 위해 1시간이 넘는 시간을 들여 스마트폰을 다시 가져왔다고 한다.

◇ “방역패스 때문에 스마트폰 없으면 아무데도 못가”… 노인·저소득 가구는 걱정 ‘태산’

앞서 소개한 제보 사례는 언뜻 보면 웃어넘길 수 있는 단순 ‘해프닝’ 정도로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방역 당국이 코로나19 방역패스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본다면, 앞으로 이런 불편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방역패스’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하거나 코로나19 음성을 확인했다는 증명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1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 방안 중 하나로 방역패스를 도입했으며, 전국 식당, 영화관, 독서실 등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선 방역패스를 지참해야 한다. 특히 오는 10일부터는 정부 방침에 따라 대형마트 역시 방역패스가 없이는 이용이 불가하다.

문제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백신패스의 거의 대부분이 스마트폰에서 사용되는 ‘모바일 방역패스’라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A씨의 사례처럼 만약 스마트폰을 분실하거나 배터리 방전 혹은 고장 등의 이유로 사용이 불가능할 경우엔 그 어떤 다중이용시설에도 출입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치 않은 노인층의 경우 방역패스 이용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 이상 성인의 사용률은 83%에 그쳤다./ 사진=뉴시스·픽사베이, 편집=박설민 기자

특히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치 않은 노인층이나 스마트폰을 구매할 여력이 부족한 저소득층들은 방역패스 이용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갤럽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성인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95%에 육박했으나, 60대 이상 성인의 사용률은 83%에 그쳤다. 특히 60대 이상 여성의 경우 스마트폰 사용률은 77%에 그쳐 생각보다 많은 고령층 국민들이 스마트폰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갤럽이 2021년 6월 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에게 현재 스마트폰 사용 여부를 물은 결과 95%가 '사용한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성인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2012년 1월 53%에서 그해 6월 60%, 2013년 2월 70%, 2014년 7월 80%, 2016년 하반기 90%를 돌파했고, 2017년부터 2020년까지는 93%로 거의 변함없었다.

서울 영등포에 거주하는 B씨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스마트폰이 예전엔 편리한 물건 정도였는데, 이제는 나를 나타내는 신분증이 돼버렸다”며 “집 근처 식당이나 마트의 경우 스마트폰을 두고 간 적도 많은데 이젠 방역패스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가지고 가게 됐다”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모바일 방역패스 사용이 불가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은 근처 보건소나 주민센터에서 방역패스를 발급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기자가 주민센터에 방문해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보여주자 몇 분 걸리지 않아 종이로 된 방역패스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박설민 기자

◇ 질병관리청 “방역패스는 신분증, 없으면 본인 책임”… 전문가들은 방역패스 강제에 ‘부정적’

이 같은 ‘모바일 방역패스’의 맹점에 대해 방역 본부 측은 ‘종이증명서’ 등의 대책을 이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모바일 방역패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 및 고령층 국민들은 근처 보건소나 주민센터에서 방역패스를 발급받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근처 주민센터를 방문해 종이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주민센터 직원의 설명에 따라 주민등록증 등 신분증을 제출하자 몇 분 걸리지 않아 종이로 된 방역패스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분실하거나 배터리가 방전된 상황에서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는 아직 명확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될 경우엔 다시 충전하면 되지 않겠냐”며 “스마트폰을 분실해 방역패스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출입 신분증을 잃어버려 시설에 입장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것은 본인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의학계 전문가들은 방역패스에 다소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백신 접종률이 이미 90%를 넘어선 현재, 방역패스로 대형마트 등 생활에 필수적인 시설 이용까지 제한하는 것은 불편함만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염호기 ‘코로나19 대책 전문위원회’ 위원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미 우리나라 국민의 90%가 백신을 맞았는데 방역패스가 실효성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며 “아직 남은 미접종자들의 백신 접종을 권고하는 게 방역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의료계 및 법조계 전문가들은 방역패스를 강제하는 것에 대해선 다소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미 백신 접종률 90%를 넘긴 상황에서 억지로 방역패스를 적용할 필요성이 적을 뿐만 아니라 위법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뉴시스

아울러 법조계에서는 방역패스를 강제하는 것이 위법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특히 청소년 방역패스의 경우 백신 접종을 사실상 강제해 청소년의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실제로 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는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대표 등 5명이 질병관리청장 및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특별방역대책 후속조치 처분 집행정지 신청 일부를 인용했다. 

서울행정법원은 “특별방역대책 후속조치 중 학원, 독서실, 스터디카페를 방역패스 의무적용 시설에 포함한 조치의 효력을 본안 사건 선고일까지 정지한다”며 “방역패스 의무 적용은 학습권과 교육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그리고 개인 신체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직간접적으로 침해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방역패스의 강제 적용에 대한 국민적 반발 및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면서 방역 당국 역시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5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접종 예외 등 불가피한 사유 등의 부분에서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며 “전문가들과 함께 방역패스 제도 개선방안을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보건복지부 등 정부 방역 당국에서 아직까지 방역패스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데 효과적인 대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는 만큼, 향후 방역패스 적용 범위에 대한 개선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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