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엄이랑 기자  최근 정치권에서 나온 한 발언이 화제가 됐다. 야권 유력 대선후보에게 “연기만 해달라”는 요청이 공개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를 처음 접했을 때는 단순 ‘분란의 씨앗’ 쯤으로 여겼다. 그러다 어떤 의문이 들었다. ‘연기가 쉬웠었나?’

과거 영화를 전공한 덕에 카메라 앞에 선 배우들의 고충을 피상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다. 그러다 직접 겪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극단에 들어가 연기 훈련을 받고 무대에 선 경험이 있다. 2년여의 시간을 보내며 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연기는 단순히 타고난 ‘끼’로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무대, 혹은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기 위해 운동선수와 같은 ‘훈련’을 거듭한다. 훈련을 거듭하는 이유 역시 운동선수와 같다. 신체적·정신적 상태가 좋지 않은 날 이른바 ‘신들린 연기’는 못할지언정, 이야기 속 상황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액팅(연기)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배우들은 준비하는 작품이 없어도 훈련을 한다. 평상시에도 배우에 걸맞는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명료한 발성을 위해 호흡훈련을 하고, 이완된 몸 상태를 유지하고자 각종 신체훈련을 거듭한다. 작품을 준비할 경우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하나의 움직임, 한마디의 대사를 최소 수백 차례 반복한다. 실수를 줄이는 한편, 맡은 배역을 ‘체화’하기 위한 필수과정이다.

액팅의 최종목표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유도해 소위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다. ‘카타르시스(감정의 정화·해소)’, ‘울림’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를 위해서 액팅 코치는 ‘내(나)’가 먼저 존재해야 함을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 느끼지 못한 감정을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 할 수 없으니, ‘나’로써 느낀 감정을 배역의 특성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나’가 부재하면 진실한 언행이 나올 수 없어 타인을 감동시킬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렇듯 잠시나마 연기를 배웠던 때를 떠올리니 “연기만 해달라”는 문장은 어딘가 한가히 느껴졌다. 스스로 느끼고 체화하지 못한 것을 그럴듯하게 꾸밀 수 없다. 꾸밀 수 있을지라도 그것은 말이 아닌 ‘소리’에 그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물론 “연기만 해달라”는 말은 단순한 비유적 표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다만 무대·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고 감동적인 연기를 펼치고자 이 순간에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배우들에게 저 문장은 어떻게 해석됐을까. 다수가 무심히 지나치진 않았으리라 여긴다.

향후 5년간 국가의 중대사를 다루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연기’를 보고 싶어하는 유권자가 있을까. 소위 ‘연기’를 할지언정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행보를 보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키워드

#연기 #액팅 #배우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