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4·19혁명 정신이 5·16 군사 쿠데타로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1961년 9월에 김수영이 쓴 시 <먼 곳에서부터>일세. 어제 있었던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 때문에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떠올리며 위로도 할 겸 저 시를 선택했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는 마지막 연을 읽으니 정말 몸과 마음이 아프구먼. 난 두 가지 점에서 마음이 아프네. 말로는 자칭 좌파인 척 말하면서 이번에 좌파 후보들 중 한 명을 찍지 못하고 다른 후보를 찍은 게 부끄러워서 마음 아프고, 또 하나는 윤석열 당선자가 민주당의 정치적 음모 때문에 호남이 낙후 지역이 되었다고 말했던 그 호남이 내 고향이어서 더 아파. 호남지역을 발전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호남 지역민들을 민주당에 계속 의지하게 만들고 있다는 황당한 음모론을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말하는 세상이라니… 호남사람들을 바보로 보지 않고는 저런 말 할 수 없지.

이번 선거 결과 때문에 가장 아픈 사람은 누굴까? 간발의 차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걸세. 물론 그도 경쟁에서 패했으니 몸과 마음이 아프겠지. 하지만 그는 잘 싸웠네. 정권유지보다 정권교체론이 월등하게 높아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0.73%p(24만7천여 표) 차이로 석패한 것은 그가 그만큼 열심히 뛰었다는 증거야.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이른바 ‘대장동 사태’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는 아마 다음 선거에도 다시 등장할 수도 있을 걸세.

그러면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이 가장 아픈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윤석열 당선자일 걸세. 당선을 마냥 좋아하고만 있다면 그는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이 부족한 사람이야. 그가 선거 과정에서 했던 말과 행동을 보면, 선거가 끝난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많네. 그 중 하나가 미국의 대통령 중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평가를 받는 트럼프 따라 하기이야. 근거 없는 음모론, 막말과 거짓말, 가짜뉴스, 폭력적인 말과 행동, 젊은 남성과 여성의 갈라치기 등등 앞으로 그가 대통령으로 직무수행을 할 때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불필요한 말과 행동들이 많았어. 게다가 앞으로 힘든 국정 파트너가 될 더불어민주당을 “좌파 사회혁명 이론으로 무장된 운동권들의 이권 결탁 세력 ”이라는 색깔론으로 몰아붙였으니 당장 총리 인준부터 제대로 이루어질지 걱정이야.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데, 제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거든. 총리가 없으면 장관도 임명할 수 없네.

물론 선거는 후보자들 사이의 경쟁이고,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면 본인의 의도와는 다른 말과 행동을 할 수도 있네. 하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은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일세. 그래서 선거운동 기간에도 금도를 지키고, 표를 위해 국민들을 갈라치거나 서로 혐오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네. 이번 윤 당선자의 선거 전략 중 가장 비열하고 어리석었던 게 이른바 ‘이대남’을 통한 여성 혐오 조장이야. 경제력 10대 대국이라는 한국은 아직도 세계에서 구조적으로 남녀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들 중 하나일세. 믿어지지 않거든 OECD 국가들 중 남녀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가 어디이고, 유리천장 지수 순위가 가장 낮은 나라가 어디인지를 찾아보게나. 우리의 자랑스런 조국 한국일세. “구조적인 성차별이 없다”는 윤 당선자의 말이 거짓임을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윤 당선자가 풀어야 가장 어려운 숙제들 중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0.81명의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일일 걸세. 하지만 젊은 여성들을 배제하고 혐오했으니 그들이 차기 정부의 말을 믿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미고 애를 낳을까? 이번에 20대 여성들의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윤 당선자보다 2배 정도 높았네.

윤 당선자는 10일 ‘당선 인사’를 통해 국민이 자기를 부른 이유가 “이 나라의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이고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며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 하겠다”고 말했네. 하지만 그의 말이 정치인이면 누구나 하는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자신이 배제하고 무시하거나 막말을 퍼부었던, 그래서 마음을 크게 상하게 했던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할 걸세. 색깔론으로 공격했던 민주당에게도 마찬가지이고. 이번 대선에서 보수 언론들이 흔히 진보좌파라고 부르는 정당들의 총 득표율이 절반을 넘는 50.38%이라는 것도 무겁게 받아들여야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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