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미정 기자  3월 주주총회 시즌이 찾아왔다. 올해 주총을 앞두고 나타난 현상 중 하나로 ‘여풍(女風)’을 꼽을 수 있다. 기업들은 유독 여성 사외이사 영입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 기업 이사회는 그간 남성 위주로만 이사진을 꾸려오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비판을 고려할 때, 이사회 성별 다양화를 꾀하고 있는 기업들의 움직임은 분명 긍정적이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이 자발적인 변화라고 하기엔 개운치 않는 뒷맛을 남긴다.

올해 주요 기업들이 여성 사외이사 영입에 열을 올리는 가장 큰 배경엔 ‘자본시장법 개정’ 이슈가 있다. 오는 8월 시행되는 개정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법인은 이사회를 특정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다. 즉, 해당 상장법인은 최소한 1명 이상의 여성 사외이사를 확보해야 하는 셈이다.

해당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있는 만큼 다수의 기업들이 법 저촉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여성 사외이사 영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실천 의지를 다지고 관련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은 지배구조(G) 항목에서 주요 평가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결국 구색 맞추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비판적 시선이 나오는 배경엔 여전히 국내 기업들 내에 두터운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기업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 169개 중 주총 소집결의서를 제출한 120개 기업(지난 7일 기준)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 주총을 통해 신규 사내이사는 73명, 신규 사외이사는 104명이 각각 선임될 예정이다. 이 중 신규 사외이사(104명) 중 43.3%(45명)는 여성으로 나타났다. 다만 사내이사(73명) 중 여성 비중은 2.7%(2명)에 그쳤다.

사내이사는 회사에 적을 두고 사내의 의사 결정을 수행하는 이사다. 외부에서 영입돼 경영 견제 역할을 수행하는 사외이사와 달리, 회사 내부 경영에 깊게 관여한다. 통상 대표이사나 임원들이 사내이사에 오른다. 

여전히 국내 기업에서 여성의 사내이사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만큼 여성 리더층이 얕고 고위직 임원 승진이 적어서다. 한국은 기업 내 유리천장(여성이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여전히 두텁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 OECD 국가 중 10년째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유리천장 지수’는 남녀 고등교육 격차, 소득격차, 여성의 노동 참여율, 고위직 여성 비율, 육아비용, 남녀 육아휴직 현황을 토대로 한 자료다. 

물론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 인사에서 무조건 가산점을 줄 수는 없다. 이는 역차별의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보다는 체계적인 여성 리더의 육성 방안이 필요하다. 기업 내 성불평등 문화 및 근로체계를 개선하는 한편, 출산과 육아에 따른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 및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기업들 스스로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되돌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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