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들어서면서  디지털 사회의 ‘전자 금’이라고 불리는 ‘암호화폐’에 대한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섬에 따라 전 세계 금융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화폐 가치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의 원인을 제공한 러시아의 경우, 지난달 서방의 경제 제재 이후 자국 화폐인 루블 가치는 하루아침에 40%까지 폭락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디지털 사회의 ‘전자 금’이라고 불리는 ‘암호화폐’에 대한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올해 1월 4,100만원대까지 폭락했던 비트코인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으며, 28일 기준 5,600만원선까지 가격이 오른 상태다.

◇ 암호화폐, 러-우 전쟁에 가치 ‘UP’… 우크라이나 지원 모금에도 적극 활용 

IT 및 블록체인·암호화폐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암호화폐 가격 회복 추세뿐만 아니라 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침체됐던 암호화폐 시장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강력한 블록체인 기반의 보안을 통해 복제 혹은 해킹의 위협에서 안전한 암호화폐가 전쟁처럼 불안정한 상황에서 ‘안전한’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실제로 암호화폐는 전쟁이 발발해 혼란스러운 우크라이나에서 매우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이 발발한 지난달 26일 정부 공식 SNS계정을 통해 암호화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지갑 주소를 공개하고 자금 지원을 받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해당 발표 이후 기부금은 빠르게 모였는데, 2월 28일 기준 우크라이나 정부와 다른 비정부 기관(NGO)이 암호화폐로 모금한 금액은 2,300만달러(약 한화 28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에서는 암호화폐의 ‘탈중앙화(decentralized)’에 대한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가진 탈중앙화는  중앙 서버와 신뢰 기관이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암호화폐는 중앙 집권적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 불안정한 국가의 정부 상태나 국가 중심 은행 한두 곳의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 화폐인 셈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현재 개인 대 개인(P2P) 방식으로 운영되는 탈중앙화거래소(DEX) 유니스와프를 운영 중이다. DEX 유니스와프는 다른 암호화폐를 자동으로 비트코인·이더리움으로 바꿔서 기부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 장관은 이 솔루션을 SNS를 통해 홍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일종의 블록체인 기술 기반 협동조합이라 할 수 있는 탈중앙화 자율조직(DAO)인 ‘우크라이나 DAO’도 활발히 지원 모금 활동을 전개 중이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도 지난 16일 우크라이나 내에서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합법적인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암호화폐 거래 합법화 법안에 서명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은 25일 발표한 ‘ICT Brief’ 리포트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경제 불안이 확산하면서 실물화폐 가치에 대한 불안감은 높아졌다”며 “반면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는 여러 측면에서 활용도 증가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국내에서도 글로벌 시장 규제 동향을 살피는 동시에 미래 산업 육성이라는 장기적 안목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암호화폐 가치와 관련 규제 논의를 이어갈 필요하다”고 전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는 편리하고 안전한 기부금 활동의 매개체와 탈중앙화로써 암호화폐의 가능성을 보여준 무대였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 제재 회피 수단과 검은 돈 세탁이라는 암호화폐의 어두운 면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Pixabay

◇ 경제 제재 회피 등 악용 가능성도 보여… 안전조치 강화 등 필요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는 편리하고 안전한 기부금 활동의 매개체와 탈중앙화로써 암호화폐의 가능성을 보여준 무대였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 제재 회피 수단과 검은 돈 세탁이라는 암호화폐의 어두운 면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로 인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축출돼 달려 결제를 할 수 없게 된 러시아는 현재 암호화폐를 자금확보·외화유출 우회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역시 이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최대 시중은행인 ‘프리바트방크(PrivatBank)’는 법정화폐를 비트코인 매입을 일시 차단한 상태다. 러시아 정치인과 푸틴 측근 등 핵심 인물들의 자본 은닉처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27일 국제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에 모든 러시아인과 벨라루스인의 암호화폐 계정을 동결해달라고 요청했다. 러시아가 암호화폐로 국제사회 제재를 피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다만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경우 제재 대상에 대한 자금은 동결할 수 있으나 러시아 국민 등을 포함한 일반인들에 대한 거래 금지에 대해선 거부한 상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22일 국제결제은행(BIS)이 개최한 ‘BIS Innovation Summit 2022’에서 “최근 암호화폐로 들어가는 러시아 루블의 양이 증가하고 있다”며 “유럽과 미국의 규제 기관은 경제를 고립시키려는 시도로 러시아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으나 암호화폐로 세계 여러 나라가 러시아 등에 부과한 경제 제재를 회피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도 ‘ICT Brief’ 리포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 상황에서 암호화폐가 기부금 활동 매개체, 경제 제재회피 수단 등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시에 드러나며 존재감 발휘하고 있다”며 “이용자 보호, 자금세탁, 투기·도박 등 위험성을 해결하기 위한 전담인력 확보, 안전조치 강화 등 건전한 발전을 위한 정책적 노력과 제도 보안 병행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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